[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
출발하기 전에 이 ‘오래된 미래’의 느낌 팍팍 나는 도시 이름을 중얼중얼 되새겨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이스탄불’ 이후 여행자를 매혹시키는 어감의 도시 이름은 처음 만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루앙프라방 여행을 엄청나게 기대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어요. 이십대 시절에는 부지런히도 여행을 다니고 1년에 한두번의 여행을 위해 남은 시간들을 참아낸다는 생각도 했는데 3~4년 전부터 갑자기 여행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렇게도 매혹적인 이름의 이스탄불에 도착했는데도 ‘이게 블루모스크구나’ ‘사진에서 본 거랑 똑같군’ 정도의, 반려식물 말려죽일 정도로 건조하기 짝이 없는 감탄사가 전부였지요.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가 늙었구나, 여행의 설렘 따위 이제 졸업해버렸구나, 인정하게 됐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문처럼 외고 간 루앙프라방에서 잃었던 설렘과 벅찬 행복감을 한톨도 남김없이 돌려받았습니다. 게이트1만 있는 루앙프라방 공항에 도착한 순간, 나도 모르게 ‘아~’라는 신음소리가 나왔고 흙먼지 폴폴 날리는 황톳길을 달리면서, 누런 메콩강의 곁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게스트하우스의 방문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어느 리조트 광고에서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바로 이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년 휴가는 무조건 루앙프라방으로라고 떠들고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시려면 정말로 서둘러야 합니다. 작고 귀여운 루앙프라방 공항 옆에는 대규모의 땅 정리가 시작됐습니다. 늘어나는 여행자를 맞기 위해 신공항을 짓고 있는 것이죠. 큰 공항이 문을 열면 그에 걸맞은 대형 프랜차이즈 리조트들도 입성을 준비하겠지요. 그러고 나면 지금 루앙프라방이 발산하는 매력도 줄어들 것이고요. 그 전에 루앙프라방을 느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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