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미씨가 키우고 있는 블랙클로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반려식물 키우기로 위로와 행복을 얻는 사람들…“화초와 함께 자존감도 자랐죠”
반려식물 키우기로 위로와 행복을 얻는 사람들…“화초와 함께 자존감도 자랐죠”
초록색 식물을 기르고 화사한 빛깔의 꽃들을 피워내면서 얻은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랬다. 그저 놓아둔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도 ‘고맙다’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따뜻한 체온을 갖고 있는 반려동물이 아닌데도,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을 얻는다 했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마음을 터놓을 이 드물어진다. 외로운 곁자리를 채워준 반려식물과의 ‘사랑 이야기’를 엿듣는 것만으로 낮게 깔린 겨울 구름이 무색해질 만큼, 그 마음 해사해진다!
초록이들과의 대화에 스트레스는 싹
“뭐랄까… 뭉클했어요. 학교 뒷마당에 깨진 화분과 죽어가는 화초 무더기 사이에 버려진 그 아이를 교무실에 데려가 꽃을 피웠을 때요. 기어이 꽃을 피워주고, 살아주더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인연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아이와 저의 인연이 있었던 것이죠.” 10여년 전 화초 키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했다. 춘천의 한 중학교에서 사회 선생님을 하고 있는 성금미(44)씨의 이야기다. 그 인연으로 성씨는 화초 사랑에 푹 빠져버렸다. 지금 그의 베란다와 집안에 있는 화분만 500여개란다. 식물계의 파워블로거 중 한 명으로, 실제로 화초를 키우면서 터득한 노하우 등을 모아 <산타벨라의 쉽게 화초 키우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요즘 세상, 서로들 너무 바쁘고 또 주변엔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매일매일 열패감을 느끼고 또 느끼죠. 그런데, 이 아이들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아주 중요한, 위대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요.” 성씨가 제일로 꼽는 화초 키우기의 효과, ‘자존감 높이기’이다. 고마운 아이들을 향해 성씨는 아침나절 인사를 건네고, 쓰다듬어 주고, 어느새 성씨보다 키가 훌쩍 자란 아이에게는 다가가 “고맙다”며 끌어안는다.
이야기 도중, 갑자기 식물과 통하는 ‘식물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에 담아둔 스트레스도 화초와 대화하며 푼다는 성씨 때문이다. “남편, 자녀, 부모, 형제자매들도 취미와 기호가 다르니 이해 못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 친한 친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화초와 대화하면서 풀어요. 속이 다 풀리죠! 마치 외국에서 많이 한다는 심리상담을 마친 느낌이랄까요? 시원하게 아이들에게 물 주고, 잎 닦아주고 하면 말이죠. 이런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죠. 그게 행복하고.”
햇빛이 가장 밝은 낮 12시, 우리 윈도팜이 제일 예뻐요! “바질은 향이 좀 이상해서 싫어요.” 좋아하는 식물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던 장영재(8)군, 싫어하는 식물밖에 꼽지 못하겠단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던 아이는 자기 책상 위에도 수경재배하는 녀석이 있다고 냉큼 데리고 나왔다. ‘우리집 식물공장 만들기’(cafe.naver.com/vegshop)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장민호(40)씨네 가족의 거실 풍경이다. 11일 장씨네 집을 들어서는 순간, 공기 중에 촉촉한 습기와 여러 향기가 섞여 느껴졌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바깥 창과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창에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창 가득 ‘윈도팜’(window farm)이 자리잡았다. 윈도팜은 플라스틱 페트병이나 음료잔을 재활용해 수경재배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바깥 창에는 허브가, 거실 창에는 다육식물(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 위의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커튼처럼 길게 늘어뜨린 윈도팜을 바라보자니, 한겨울 날씨가 무색하게 싱그러움이 물씬 풍겼다.
집안 곳곳을 봐도 가습기는 없다. 가습기 살균제 여파인가? “아이가 태어난 뒤 가습기를 쓴 일이 없어요. 아이가 비염 증상도 있는 것 같았는데, 가습기는 곰팡이 같은 게 걱정되더라고요.” 장씨의 아내, 조성희(37)씨의 설명이다. 애초, 가습기 살균제 걱정은 하지 않는 집안이었던 게다. 윈도팜은 수경재배여서, 실내 습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하고 있었던 것. 그뿐만 아니다. 베란다 한쪽에는 수경재배기에 치커리, 상추, 토마토 등을 기르고 있었다. 진짜 ‘텃밭’이다. 구름 깔린 날씨라 햇빛이 아쉽다며 장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영재가 불쑥 끼어든다. “12시에 햇빛이 들 때 정말 예쁜데!”란다.
좌절의 나날, 초록이가 날 보듬어줬어요
정현수(가명·31·여)씨에게 식물들, 초록이들은 ‘은인’과도 같다. 그는 지금 중학생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이다. 애초 꿈이 학원 강사였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나 3년 내리,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 낙방했다. 지방에서 학교를 나와 서울로 올라온 지도 4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딴생각을 하고, 요령이라도 피웠다면 억울하지는 않았다. “노량진 학원가와 숙대 앞 하숙집만을 시계추처럼 다녔죠. 1년만 딱 눈감고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좌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상처도 깊어만 갔다. 공부를 같이 하는 사람들 서너명을 빼고는 친구도 만나기 어려웠다. “세 번 연속 떨어지고 나니, 속상하다며 집에 내려갈 용기도 없었어요. 그래서 콕 처박혀 있었죠.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하고 말았어요. 그 당시에는 그게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통로로 여겨졌거든요.”
그랬던 그에게 손 내민 건 초록이였다. 하숙집으로 들어서다가 마주친 1000원짜리 화초. 비닐에 가까운 얇은 화분에 자리잡고 있던 아이에게 느낀 건, 안쓰러움. “아마도, 그 초록이에게서 본 건 ‘나’였지 않나 싶어요. 잘 살라고 응원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걸 그 아이에게 쏟았죠.” 2평 남짓 하숙방에 간신히 든 햇빛과 주인의 보살핌을 양분 삼아 그 아이는 잘 자라줬다. 정씨가 키운 초록이는 아이비. 다행히 반음지에서도 튼튼하게 자라주는 아이였다.
학원 강사가 된 그는 이제 하나둘 늘어난 초록이들과 함께 둥지를 틀 햇빛 잘 드는 방을 구하려 한다. 학원 책상 위에도 무럭무럭 자라는 반려 초록이들이 줄줄이란다. “성공도 중요하지만, 마음 꽉 찬 행복감도 중요하다 깨달았어요. 초록이들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 스스로를 다독여줄 여유도 생겼고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어두웠던 얼굴은 그의 2년째 동거 식물 아이비 옆에서 빛나는 듯했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집안 거실 창에 드리운 윈도팜 앞에서 웃고 있는 장영재(8)군.
햇빛이 가장 밝은 낮 12시, 우리 윈도팜이 제일 예뻐요! “바질은 향이 좀 이상해서 싫어요.” 좋아하는 식물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던 장영재(8)군, 싫어하는 식물밖에 꼽지 못하겠단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던 아이는 자기 책상 위에도 수경재배하는 녀석이 있다고 냉큼 데리고 나왔다. ‘우리집 식물공장 만들기’(cafe.naver.com/vegshop)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장민호(40)씨네 가족의 거실 풍경이다. 11일 장씨네 집을 들어서는 순간, 공기 중에 촉촉한 습기와 여러 향기가 섞여 느껴졌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바깥 창과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창에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창 가득 ‘윈도팜’(window farm)이 자리잡았다. 윈도팜은 플라스틱 페트병이나 음료잔을 재활용해 수경재배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바깥 창에는 허브가, 거실 창에는 다육식물(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 위의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커튼처럼 길게 늘어뜨린 윈도팜을 바라보자니, 한겨울 날씨가 무색하게 싱그러움이 물씬 풍겼다.
어디서든 잘 자라는 아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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