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살아남아 줘서 고마워.”
연이은 어린 생명들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더욱 신산한 세밑에 곁에 있는 누군가라도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가 콕 집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올 한 해 티브이는 서바이벌의 한 해였습니다. 어느 채널에서나 매주 한명이, 또는 여러명이 고배의 긴 한숨을 내쉬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안도인지 기쁨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청자들은 티브이를 보면서 자체적인 생존자 리스트를 만들었고, 다음날 학교에, 직장에 모이면 왜 그 후보가 떨어졌을까, 그 참가자는 왜 살아남은 거야, 격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011년을 뒤흔들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흥행 요인 분석은 이미 넘쳐나고 있으니 굳이 여기서 숟가락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겠지요. 한가지 확실한 건 그 치열한 경쟁의 무대에서 일찍 내려와야 했던 이들도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또다른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참가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3면에 소개한 김혜랑과 윤빛나라, 브로큰 발렌타인 역시 최고의 음악인을 꿈꾸는 현재진행형의 참가자들이라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겠지요. ‘광탈’(광속 탈락)이라는 쑥스러운 별명을 얻었지만 ‘나는 가수다’에 참가했던 조규찬이 여전히 빛나는 실력의 가수인 것처럼 말입니다.
대학입시에서 낙방했거나,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거나, 오래 사귄 연인에게서 차였거나, 올해도 많은 사람이 인생의 몇번째 라운드에서는 서바이벌에 실패했을 겁니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음 라운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끊임없는 서바이벌의 연속이라는 게 피곤하고 힘들지만 이번 라운드에 탈락해도 만회할 수 있는 다음 라운드가 남아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래서 는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 ‘시위자’에 견줄 만한 올해의 인물을 뽑았습니다. 올해의 인물은 아프고 고단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살아남아서 웃을 희망을 가진 여러분입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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