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지난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했을 때 많은 이들이 헷갈려 했습니다. ‘이거 웃자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대통령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거든요. 물론 많은 이가 박장대소했지만 어쩐지 웃음의 뒤끝은 걸쩍지근했습니다. 차라리 “도덕적으로 완벽” “조그만 허점도 남겨서는”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씩 웃거나 눈이라도 한번 찡끗하셨더라면 최효종의 반어법 개그에 꿀리지 않는 유머감각에 이미지 개선 좀 됐을 것도 같은데요.
물론 한국 정치인들이 주는 웃음, 총량으로만 따지면 말재주와 유머감각 있는 서구 정치인보다 적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위의 대통령 발언이나 최근 강용석 의원이 벌인 좌충우돌처럼 웃기기는 하는데 웃고 나면 영 개운치 않은 웃음이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esc는 20년 만에 찾아오는 선거의 해를 맞아 ‘재미당’을 창당하기로 했습니다. 말 그대로 재미를 주는 당입니다. 물론 웃자고 이름 붙인 당입니다. 여기에 개그맨 전유성씨를 비롯해 재미당 당수로 추대해도 손색없을 인물들과 창당 발기인을 자처하는 많은 독자분들이 갖가지 공약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당장 적용하긴 힘들겠지만 현실 정치의 혁신도 낡은 관습과 고정관념의 타파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수많은 후보들이 폭포수 같은 공약을 쏟아낼 올해, 진심으로 유머감각 있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허탈한 웃음이 아니라 세련된 웃음, 상대방의 치졸한 공격까지 여유있는 유머로 받아낼 수 있는 정치인을 기대합니다. 그저 웃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진짜 유머감각은 자신을 타자화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것은 회의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고, 자신에게만 매몰되는 사람은 “나는 도덕적으로 완벽해”라는 황당무계한 선언으로 실소를 줄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신뢰를 줄 수 없으니까요.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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