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서른살을 앞두고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라는 책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세 쪽 읽다 말아서 무슨 내용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서른살이 되면 많은 게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서른살이 되면 결혼도 하고, 석사 정도의 고학력 타이틀도 획득하고, ‘그래 이게 바로 내 길이야’라고 주먹을 불끈 쥘 미래가 보일 거라는 기대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서른살 때 바뀐 건 오로지 나이뿐이었지요.
이에 비하면 마흔살은 덤덤한 마음으로 맞았습니다. 계획했거나 희망했던 일들이 이뤄져서도 아니고 삶이 안정궤도에 올라서도 아닙니다. 마흔이 돼도, 쉰, 환갑이 지나도 여전히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안정할 것이며 나 자신도 엄청나게 인격적으로 성숙한다거나 나이에 걸맞은 품위를 갖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을 뿐입니다.
요즘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직장인들의 ‘핫 플레이스’ 중에 ‘밤과 음악 사이’라는 술집이 있습니다. 1980~90년대 한국대중음악을 크게 틀어주는 이곳에서 듀스나 현진영, 노이즈 등 90년대 댄스음악이 흘러나오면 넥타이를 매고 고급 슈트를 입은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그 시절 유행했던 춤을 군무처럼 흔들어대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는 과장, 차장 명함을 판 ‘꼰대’가 되고 있어도 그때 그 시절의 불타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웅변하는 것이죠.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6면)에서 필자는 30대의 삶도 20대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귀띔해줍니다. 삼십대인 그녀는 마흔 이후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묻습니다. 물론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생기거나 어깨를 누르는 짐들이 추가되지만 여전히 놀고 싶고, 듀스의 음악이 나오면 무대로 뛰쳐나가고 싶습니다. 그게 뭐 나쁜가요? 사십대들이여, 올해는 좀더 솔직하게 철없는 마음을 커밍아웃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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