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제가 다닌 여고 앞에는 작은 떡볶이집이 있었습니다. 손마디마다 주름이 논두렁처럼 깊게 파인 할머니는 인심이 좋았습니다. 주머니 탈탈 털어도 십원 한 장 안 나올 때는 침만 삼켰습니다. 할머니는 애처로웠는지 떡볶이 한 접시를 뚝딱 내주셨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현악 4중주였습니다.
할머니의 백열등은 늦은 시간까지 깜박거렸습니다. 고개를 나무 책상에 코 박고 졸다, 멍들다 끝낸 야자(야간자율학습) 뒤에는 작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탱탱하고, 쫄깃하고, 입술을 빨갛게 물들이는 달콤한 매운맛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음표에 열광하는 록 가수처럼 중독이 되어갔습니다. 다크 서클이 발바닥까지 늘어지고 마야문명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세상이 어두울 때면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의 문은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저는 시장에서 밀가루 떡볶이떡 한 덩이와 빨간 고추장을 샀습니다. 일요일 오후 프라이팬을 들었습니다. 멸치로 우린 물을 부었습니다. 고추장을 풀었습니다. 떡을 넣었습니다. 설탕도 쳤지요. 맛이요? 엉망이었습니다. 양념통을 뒤져 물엿도 넣고, 후추도 치고, 양파와 파도 넣었지만 밍밍한 맛은 그대로였습니다. 동물원 원숭이가 아니고서는 입을 댈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절실했습니다. 며칠 뒤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돌아오셨습니다. “촌 동네” 고향에 다녀오셨습니다.
작년에 학교를 찾았습니다. 할머니의 떡볶이는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요즘 100m마다 발에 걸리는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쌀가공협회는 2008년 당시 1조원에 이르는 떡볶이 시장이 2013년에는 1조6000억원으로 성장할 거라 추정했습니다. 떡볶이 마니아들은 느는데 할머니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esc〉가 설을 앞두고 전국 떡볶이집 투어에 나섰습니다. 할머니를 찾아 나선 여행이었습니다. 춘천 찍고, 대전 휘돌아 광주로 향했습니다. “니 내 모르나, 대구 사람 아닝게베.” 대구에서 마약떡볶이 할머니도 만났습니다. 출렁거리는 부산 해운대에서 두꺼운 가래떡 맛도 봤습니다. 서울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강행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빨간 떡볶이를 주무르는 할매와 할배들은 건재했습니다. 프랜차이즈에 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설에는 하루 먼저 고향을 찾아 어린 시절 나를 지켜준 떡볶이를 맛보고 가면 어떨까요!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광주광역시 ‘무진장 떡볶이’. 떡볶이를 먹고 나서 볶아먹는 밥도 일품이다.
마약떡볶이라는 별명이 붙은 ‘윤옥연 할매 떡볶이’.
오징어튀김 등을 상추에 싸먹는 상추튀김. 전라도 광주에서는 떡볶이와 같이 먹는 음식. 광주 ‘형제분식’.
춘천 ‘꽃돼지분식’. 떡볶이는 초등학생의 영원한 친구.
강원도 춘천 ‘꽃돼지분식’.
<겨울 연가>의 촬영지였던 춘천 ‘명동 명물 떡볶이’. 바삭한 튀김은 떡볶이와 잘 어울린다.
부산 ‘다리집’의 굵은 가래떡 떡볶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