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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서리 이긴 놈의 맛

등록 2012-02-09 16:31

섬초. 사진 박미향
섬초. 사진 박미향
[매거진 esc] 야(野)한 밥상
“야한 밥상이라고, 매일 카사노바 밥상이라도 만들겠다는 거야?” 한 선배가 물었다. 아니 무슨 말씀을! “문패를 잘 보세요.” 괄호 안에는 한자 ‘野’(들 야)자가 걸려 있다. 들에서 나는 식재료들로 향긋한 밥상을 차리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고난도의 기술로 조리한 음식도 식재료 본연의 맛이 죽어 있다면 감동은 덜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미식계의 관심은 제철 식재료다. ‘산펠레그리노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2년 연속 1위로 선정된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도 친환경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로 유명하다.

첫 회의 주인공은 시금치다. 시금치 하면 ‘뽀빠이’다. 만화에서 주인공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고 힘을 얻어 악당을 물리치지만 시금치는 저칼로리 음식이다.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한 채소지만 굴 같은 ‘정력제’는 아니다. 만화 덕에 1930년대 미국 시금치 소비량은 약 30%나 증가했다고 한다. 김밥 재료로 빠지지 않는 시금치는 우리도 사랑하는 식재료였다.

요즘 하우스에서 재배한 시금치보다 ‘섬초’, ‘포항초’, ‘남해초’ 등의 이름을 단 노지재배 시금치가 인기다. 섬초는 전남 신안군 비금면에서 재배하는 시금치 브랜드다. 포항초는 경북 포항, 남해초는 경남 남해 등에서 생산하는 시금치다. 일반 시금치보다 줄기가 납작하게 벌어진다. 땅에 딱 붙어 자란다. 짠 바닷바람과 눈서리를 견딘 강한 놈들이다. 맛은? 일반 시금치보다 더 달다. 일반 시금치는 이빨로 질겅질겅 오래 씹어야 미약한 단맛의 흔적을 겨우 알아낸다. 이것들은 무는 순간 마시멜로처럼 가벼운, 단맛이 확 혀에 닿는다. 어색한 첫사랑의 달콤함이 아니라 푹 익은 사랑의 안온한 단맛이다.


이 단맛을 칭찬해 줄 친구로 새조개를 골랐다. 멸치, 다시마, 버섯 등을 넣어 끓인 물이 팔팔 소리칠 때 섬초를 넣는다. 재빨리 새조개도 던진다. 몇 초 후 새조개는 녹색 이불 보따리에 둘둘 말린 것처럼 섬초 사이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곧장 입안으로 들어온다. 실룩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시금치의 단맛이 쫄깃한 새조개와 만나 ‘큰 웃음’을 선물한다. 이런 감촉이 없다. 육포처럼 쭉쭉 찢기는 시금치 질감, 미끈거리는 새조개의 살집. 새조개는 지금이 제철이다. 덜 익으면 비리고 너무 익으면 질기다.

시금치 샤브샤브라고 해야 하나, 새조개 샤브샤브라고 해야 하나, 고민되는 조합이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시금치는 담백한 새조개를 만나 그 단맛을 더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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