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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가 정답!

등록 2012-02-22 17:54

[매거진 esc] 야(野)한 밥상
송곳니를 꽉 박아 결을 잘근잘근 찢는다. 윗니와 아랫니가 서서히 움직여 톱니바퀴처럼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한다. 찢어진 조각은 더 잘게 부서진다. 빳빳하게 날을 세운 혀가 그것에 닿는다. 단맛을 ‘뜨겁게’ 느낀다. 탁한 연기가 뿌옇게 올라가는 고깃집에서 만난 양배추의 소멸 과정이다. 모월 모일 모시, 여의도의 한우구이 식당에서 어쩌자고 양배추만 먹은 것일까! ‘이 죽일 놈의 (양배추의) 단맛’이라니! 양배추는 다른 채소보다 당분이 많다. 천천히 씹을수록 더 휘감아 치는 단맛은 부엌의 칼잡이들에게는 최고의 양념이다.

그런고로 양배추는 전세계 요리사들이 사랑한 식재료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 이런 맛, 저런 맛으로 변신한 요리들이 많다. 몇 해 전 프랑스 보졸레 지방을 취재차 간 적이 있다. ‘나 잡아가쇼’ 자세로 널브러진 사워크라우트(sauerkraut)를 만났다. 사워크라우트는 우리네 김치와 비슷하다.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이다. 신맛, 단맛 등이 복잡하게 얽힌 사워크라우트는 눈 찢어진 동양인의 혀를 사로잡았다. 그곳은 우리네로 치면 경북의 청도쯤 되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독일의 전통 음식인 사워크라우트가 프랑스 시골마을에도 진출한 현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여름에 양배추겉절이를 만들어 먹었다. 양배추는 재배기술이 발달해서 사계절 모두 먹을 수 있지만 수확을 많이 하는 여름이 진짜 맛있다. 갓 버무린 양배추겉절이는 계절의 기운을 담뿍 담고 있다.

서양요리교본을 뒤지다 보면 꼬마양배추볶음도 발견한다. 데친 양배추를 버터에 볶기만 하면 된다. 후추와 소금이 간을 맞추기 위해 나설 뿐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양배추수프, 양배추말이초밥, 양배추쌈, 양배추피클 등 많다.

현미밥을 천일염과 참기름을 아주 조금 뿌리고 작은 주먹밥으로 만든 다음 그 위에 데친 양배추를 올려 먹으면 자연 그대로의 맛이 내 안에 들어온다.

이때 양배추의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도 포기하기 싫으면 고민에 휩싸인다. 단맛도 살리면서 식감도 유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데치는 시간을 조절해봤다. 30초, 1분, 1분30초, 2분, 2분30초. 데치는 시간을 늘릴수록 단맛이 옅어지긴 하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 밥 위에 올려 하나씩 맛을 본다. 선택! 30초!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기쁨에 볼이 상기된다. 소담하게 식탁에 차렸다. 가족이 한마디 한다. “다 같은 맛인데!” 가족의 투정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30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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