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독자사연 사랑은 맛을 타고
대학 때부터 짝사랑하던 3살 연하의 동아리 후배 남자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배가 후배 남자에게 흑심을 품는다는 게 낯 뜨거운 시절이었다. 우린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후배나 나나 오랫동안 애인이 없었다.
나는 종종 술을 마시자는 핑계로 후배를 불러냈고, 후배는 눈치도 없이 동기들을 끌고 나와 공짜 술을 마셔댔다. 옆구리가 지독히도 시리던 어느 겨울날, 나는 큰마음을 먹고 후배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디데이를 잡고 미장원에 들러서 머리도 만졌다. 먼저 분위기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영화가 끝나고, 후배에게 “영화 재밌었어?”라고 물었다. 후배는 “누나, 미안해. 내가 계속 방귀 뀌어서”라는 멘트를 날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벙싯벙싯 웃으면서. 머리가 하얘지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날을 잘못 잡았구나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마음을 가다듬고 예약해놓은 우아한 이탈리아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봉골레파스타와 토마토해물파스타, 카프레세(카프리식) 샐러드와 음료를 골랐다. 부디 이 순결한 파스타집의 인테리어와 감미로운 파스타의 쫄깃한 맛이 우리에게도 감미로운 한때를 만들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거룩한 내 마음을 상상조차 못 한 후배는 “맛있겠다”며 샐러드를 향해 포크의 융단폭격을 날리더니 그때부터 화장실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자신의 배변 상태에 대해서 상세히 묘사하면서 병원에 가야 하는지 진지한 상담까지 요청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앞에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방귀와 응가 이야기를 해대는 이런 아이에게 대체 고백을 해서 뭐하나 싶었다.
고백은커녕 파스타도 제대로 다 먹지 못하고 자리를 마쳐야 했다. 후배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안녕’을 외치며 씽 달려갔고, 나는 허탈한 마음에 2시간 넘게 집까지 걸어왔다.
그래서 우리 둘은 어떻게 됐느냐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린 둘 다 계속 애인이 없었고, 그렇게 옆구리가 시린 몇 번의 겨울을 보내고서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후배, 그러니까 내 남편의 방귀는 그날 특별히 잘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원래 ‘방귀대장 뿡뿡이’도 울고 갈 방귀대장이었다. 지금도 그날의 구린 파스타의 맛은 잊지 못한다.
김은주/인천광역시 서구 불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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