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발바닥 훈장 얻은 임종업 기자의 화천 평화마라톤대회 하프 완주기
[매거진 esc]
상처투성이 발바닥 훈장 얻은 임종업 기자의 화천 평화마라톤대회 하프 완주기
6년 만에 뛰는 마라톤
10㎞ 종목 반환점에서
돌아가? 말아? 20㎞. 시속 80㎞ 승용차로 15분 거리다. 맨몸이면 사정이 다르다. 1㎞를 5분에 달린다 치면 1시간40분, 6분으로 치면 2시간 거리다. 지난 13일 화천 평화마라톤대회 하프에 참가한 것은 20㎞ 거리를 몸의 시간으로 환산해보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몸의 상태, 즉 그동안의 삶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결과는 2시간27분42초40. 참가자 223명 가운데 거의 꼴찌다. 마라톤 출발은 화천공설운동장 오전 9시. 그러자면 서울 응암역에서 새벽 5시30분에 떠나는 대회장행 버스를 타야 한다. 4시 반에 일어나 장을 비우고 새 연료를 넣었다. 버스는 6시가 다 돼서 출현. 운전사가 새벽 1시에 들어와 깜박 잠이 들었다고 했다. 경로를 숙지하지 않은 기사는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등 화천행 내내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운동장 도착 시간은 아침 8시40분. 몸풀기도 부족한데 등번호와 기록칩을 받고 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맡겨야 했다. 드디어 출발선. 군부대 밴드의 연주도, 유지들의 격려사도 귓등으로 흘러갔다. 의지와 무관하게 분위기는 고조되고 시계는 9시를 막 넘었다. 아드레날린이 솟으며 온몸이 팽팽해졌다. 동시에 엄습하는 불안감. “참가자는 본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여 대회에 참가하시기 바랍니다. … 참가자는 반드시 본인이 의료기관을 통해 무리없이 달릴 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안내 책자에 실린 문구다. 지난 밤 3시간 반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연애가 한창인 딸이 새벽 1시까지 남친과 문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불을 환하게 켜놓았던 것. 무엇보다도 몸이 준비되지 않았다. 직전 토요일 한 달여 만에 난지도공원 한바퀴 5.6㎞를 돌아주었을 뿐이다. 평일은 바쁘고 토, 일요일도 바쁘다. 마라톤을 뛰어본 것은 5~6년 전 강변도로를 왕복하는 풀코스가 마지막이다. 펑~ 폭죽 신호와 함께 운동화 바닥의 마찰력을 이용한 두 다리의 앞뒤 왕복운동이 시작됐다. 발소리가 비닐하우스를 두들기는 우박과 흡사했다. 화천대교를 건너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읍 강변도로를 지날 때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은 죽죽 벌어졌다. 배머리교를 건너 화천읍내를 바라보며 디귿자로 회귀해 인공폭포쯤에서 트림이 나왔다. 새벽에 먹은 비빔밥이 소화되는 소리. 그때까지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5분36초~5분21초~5분17초~5분23초~5분28초~5분36초~5분55초. 1㎞ 단위로 설치된 안내 팻말을 만날 때마다 확인한 주파시간대다. 내 몸이 기억하는, 시간으로 환산한 1㎞의 거리는 5분17~55초인 셈이다. 10㎞ 종목 참가자들의 반환점인 미륵바위에 가까워지면서 표가 나기 시작했다. 불현듯 하프 참가가 후회됐다. 10㎞ 반환점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뒤이어 출발한 10㎞ 선두주자들이 하프와 뒤섞여 나 하나쯤 방향을 바꾼대도 표가 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염치가 강했다. 자못 냉정하게 반환점을 외면했지만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내 몸은 7~8㎞용으로 굳어 있었다. 1㎞의 거리가 점점 낯선 지경으로 접어들었다.
새끼발톱 빠지고
허벅지 다 쓸려
기록도 체면도 날려버렸네 밥의 힘은 연속트림으로 소멸됐다. 이제는 몸 곳곳에 축적된 지방을 태울 차례. 조금씩 지방의 지분을 늘려온 근육과 뱃살이 자산을 내놓을 수 없다며 아우성쳤다. 8㎞ 6분14초, 9~10㎞ 13분10초. 구만교쯤에 이르러 1㎞ 거리가 줄줄 늘어났다. 구만교는 강 건너 화천수력발전소를 잇는 다리. 설계는 해방 전에 일제가 하고, 교각은 해방 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놓고, 휴전이 되어 화천지역이 휴전선 이남에 편입되면서 남한이 상판을 얹어 완성했다는 다리다. 격동기 한국 현대사가 철골과 시멘트로 구현된 구조물이다. 손에 든 핸드폰이 부담스러웠다. 스톱워치 기능을 써 주파기록을 측정하려고 1㎞ 구간마다 작동을 시켰던 것. 5분마다 앞뒤로 흔들던 팔동작을 멈추고 버튼을 누르는 게 몹시 귀찮았다. 무엇보다도 좌우 손의 미세한 무게 차이가 몹시 불편했다. 도우미한테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찾을까? 몇 그램이라도 덜어내면 날 듯싶었고 그러려는 유혹도 무게가 있다면 그조차 떨쳐내고 싶었다. 10㎞를 지나면서 반을 넘겼다는 안도감.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1시간 가까이 아스팔트와 접촉해온 발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딛는 발과 정지하려는 러닝화 틈에서 코너로 몰려 짜부라진 양쪽 새끼발가락이 비명을 질렀다. 서로 스치며 마모된 양쪽 넓적다리 안쪽 피부가 쓰려왔다. 11㎞ 10분28초. 꺼먹다리를 지나 드디어 반환점. 이제 진짜 꺾어서 돌아가는 곳이다. 1/2. 아이는 초등학교 때 분수를 몰랐다. 사과를 쪼개놓고 반쪽이 1/2이라고 설명해도 과일을 바꾸면 도루묵이었다. 분수끼리의 덧셈·뺄셈과 곱셈·나눗셈은 언감생심. 분수를 사이에 두고 아이와 언성을 높이던 내가 다 늦게 분수를 체득하고 있었다. 1/2이 이렇게 절실한 개념이었단 말인가. 정작 분수를 배워야 할 사람은 나였다. 똑같은 1/2이 시간의 앞뒤로 놓이면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첫 1/2과 나머지 1/2은 결코 같은 게 아니다. 꺼먹다리와 구만교를 되짚으면서 두 교량의 나이가 70살임을 깨달았다. 꺼먹다리는 관상용으로 물러나고 구만교는 이웃한 새 다리 대붕교한테 대부분의 짐을 넘긴 채 18t, 2.5m 이하의 길손만 골라 받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내구연한이 4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 없이 하프를 덥석 물다니…. 아무래도 무리였다. 둔중한 내 발자국 소리가 짜증스러워졌다. 스톱워치 체크를 중단하고 녹음으로 대신했다.(나중에 들어보니 술 취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판독할 수 없었다.) 기록은 뭐하며 체면은 무슨 얼어죽을…. 걷자. 쉬엄쉬엄. 뒷사람들이 발걸음도 가볍게, 축지법을 쓰듯이, 농담을 해가며, 나를 앞질러 잘도 나아갔다. 자기최면도 잠시.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내 앞의 노정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생각. 새삼 몸서리쳤다. 남은 거리 4㎞. 다시 뛰었다. 후기: 일주일 뒤인 19일. 개인적으로 화천에 다시 가서 설욕하겠다는 것을 아내가 말렸다. 발바닥 물집이 아직 아물지 않았고, 빠져나간 새끼발가락의 발톱 자리가 여물지 않았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화천평화마라톤 사무국
10㎞ 종목 반환점에서
돌아가? 말아? 20㎞. 시속 80㎞ 승용차로 15분 거리다. 맨몸이면 사정이 다르다. 1㎞를 5분에 달린다 치면 1시간40분, 6분으로 치면 2시간 거리다. 지난 13일 화천 평화마라톤대회 하프에 참가한 것은 20㎞ 거리를 몸의 시간으로 환산해보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몸의 상태, 즉 그동안의 삶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결과는 2시간27분42초40. 참가자 223명 가운데 거의 꼴찌다. 마라톤 출발은 화천공설운동장 오전 9시. 그러자면 서울 응암역에서 새벽 5시30분에 떠나는 대회장행 버스를 타야 한다. 4시 반에 일어나 장을 비우고 새 연료를 넣었다. 버스는 6시가 다 돼서 출현. 운전사가 새벽 1시에 들어와 깜박 잠이 들었다고 했다. 경로를 숙지하지 않은 기사는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등 화천행 내내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운동장 도착 시간은 아침 8시40분. 몸풀기도 부족한데 등번호와 기록칩을 받고 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맡겨야 했다. 드디어 출발선. 군부대 밴드의 연주도, 유지들의 격려사도 귓등으로 흘러갔다. 의지와 무관하게 분위기는 고조되고 시계는 9시를 막 넘었다. 아드레날린이 솟으며 온몸이 팽팽해졌다. 동시에 엄습하는 불안감. “참가자는 본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여 대회에 참가하시기 바랍니다. … 참가자는 반드시 본인이 의료기관을 통해 무리없이 달릴 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안내 책자에 실린 문구다. 지난 밤 3시간 반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연애가 한창인 딸이 새벽 1시까지 남친과 문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불을 환하게 켜놓았던 것. 무엇보다도 몸이 준비되지 않았다. 직전 토요일 한 달여 만에 난지도공원 한바퀴 5.6㎞를 돌아주었을 뿐이다. 평일은 바쁘고 토, 일요일도 바쁘다. 마라톤을 뛰어본 것은 5~6년 전 강변도로를 왕복하는 풀코스가 마지막이다. 펑~ 폭죽 신호와 함께 운동화 바닥의 마찰력을 이용한 두 다리의 앞뒤 왕복운동이 시작됐다. 발소리가 비닐하우스를 두들기는 우박과 흡사했다. 화천대교를 건너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읍 강변도로를 지날 때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은 죽죽 벌어졌다. 배머리교를 건너 화천읍내를 바라보며 디귿자로 회귀해 인공폭포쯤에서 트림이 나왔다. 새벽에 먹은 비빔밥이 소화되는 소리. 그때까지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5분36초~5분21초~5분17초~5분23초~5분28초~5분36초~5분55초. 1㎞ 단위로 설치된 안내 팻말을 만날 때마다 확인한 주파시간대다. 내 몸이 기억하는, 시간으로 환산한 1㎞의 거리는 5분17~55초인 셈이다. 10㎞ 종목 참가자들의 반환점인 미륵바위에 가까워지면서 표가 나기 시작했다. 불현듯 하프 참가가 후회됐다. 10㎞ 반환점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뒤이어 출발한 10㎞ 선두주자들이 하프와 뒤섞여 나 하나쯤 방향을 바꾼대도 표가 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염치가 강했다. 자못 냉정하게 반환점을 외면했지만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내 몸은 7~8㎞용으로 굳어 있었다. 1㎞의 거리가 점점 낯선 지경으로 접어들었다.
13일 열린 화천 평화마라톤대회.
허벅지 다 쓸려
기록도 체면도 날려버렸네 밥의 힘은 연속트림으로 소멸됐다. 이제는 몸 곳곳에 축적된 지방을 태울 차례. 조금씩 지방의 지분을 늘려온 근육과 뱃살이 자산을 내놓을 수 없다며 아우성쳤다. 8㎞ 6분14초, 9~10㎞ 13분10초. 구만교쯤에 이르러 1㎞ 거리가 줄줄 늘어났다. 구만교는 강 건너 화천수력발전소를 잇는 다리. 설계는 해방 전에 일제가 하고, 교각은 해방 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놓고, 휴전이 되어 화천지역이 휴전선 이남에 편입되면서 남한이 상판을 얹어 완성했다는 다리다. 격동기 한국 현대사가 철골과 시멘트로 구현된 구조물이다. 손에 든 핸드폰이 부담스러웠다. 스톱워치 기능을 써 주파기록을 측정하려고 1㎞ 구간마다 작동을 시켰던 것. 5분마다 앞뒤로 흔들던 팔동작을 멈추고 버튼을 누르는 게 몹시 귀찮았다. 무엇보다도 좌우 손의 미세한 무게 차이가 몹시 불편했다. 도우미한테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찾을까? 몇 그램이라도 덜어내면 날 듯싶었고 그러려는 유혹도 무게가 있다면 그조차 떨쳐내고 싶었다. 10㎞를 지나면서 반을 넘겼다는 안도감.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1시간 가까이 아스팔트와 접촉해온 발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딛는 발과 정지하려는 러닝화 틈에서 코너로 몰려 짜부라진 양쪽 새끼발가락이 비명을 질렀다. 서로 스치며 마모된 양쪽 넓적다리 안쪽 피부가 쓰려왔다. 11㎞ 10분28초. 꺼먹다리를 지나 드디어 반환점. 이제 진짜 꺾어서 돌아가는 곳이다. 1/2. 아이는 초등학교 때 분수를 몰랐다. 사과를 쪼개놓고 반쪽이 1/2이라고 설명해도 과일을 바꾸면 도루묵이었다. 분수끼리의 덧셈·뺄셈과 곱셈·나눗셈은 언감생심. 분수를 사이에 두고 아이와 언성을 높이던 내가 다 늦게 분수를 체득하고 있었다. 1/2이 이렇게 절실한 개념이었단 말인가. 정작 분수를 배워야 할 사람은 나였다. 똑같은 1/2이 시간의 앞뒤로 놓이면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첫 1/2과 나머지 1/2은 결코 같은 게 아니다. 꺼먹다리와 구만교를 되짚으면서 두 교량의 나이가 70살임을 깨달았다. 꺼먹다리는 관상용으로 물러나고 구만교는 이웃한 새 다리 대붕교한테 대부분의 짐을 넘긴 채 18t, 2.5m 이하의 길손만 골라 받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내구연한이 4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 없이 하프를 덥석 물다니…. 아무래도 무리였다. 둔중한 내 발자국 소리가 짜증스러워졌다. 스톱워치 체크를 중단하고 녹음으로 대신했다.(나중에 들어보니 술 취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판독할 수 없었다.) 기록은 뭐하며 체면은 무슨 얼어죽을…. 걷자. 쉬엄쉬엄. 뒷사람들이 발걸음도 가볍게, 축지법을 쓰듯이, 농담을 해가며, 나를 앞질러 잘도 나아갔다. 자기최면도 잠시.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내 앞의 노정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생각. 새삼 몸서리쳤다. 남은 거리 4㎞. 다시 뛰었다. 후기: 일주일 뒤인 19일. 개인적으로 화천에 다시 가서 설욕하겠다는 것을 아내가 말렸다. 발바닥 물집이 아직 아물지 않았고, 빠져나간 새끼발가락의 발톱 자리가 여물지 않았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화천평화마라톤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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