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인간 반전
기자에서 이탈리아 요리사로 전업해 글쓰기·요리 병행하는 박찬일 셰프
기자에서 이탈리아 요리사로 전업해 글쓰기·요리 병행하는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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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실패한 사람 같다
내 마음 너무 몰라주네” “100살까지 사는 시대
한 직업으로 20년 산다면
인생 삼모작도 준비해야” 그는 요즘 홍대앞에서 젊은이들의 입맛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소스의 맛에 익숙하다. 화려한 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홍대 주변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그도 대충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요리 대신 자연의 맛을 살린 요리를 고집한다. 요리 스승인 시칠리아 주방장 주세페 바로네의 요리철학을 가슴 깊이 새기며 요리를 내온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요리를 만든다.” 이런 요리철학을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혀’의 속성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제일 늦게 성장을 시작하는 기관이 혀다. 혀는 몸의 성장이 끝난 후 비로소 성장이 시작된다. 그래서 젊을 때는 대부분 화려한 맛을 좋아하다가 나이가 들면 점점 재료 본연의 맛을 찾게 된다. 이것이 대중성과 요리에 대한 내 고집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다.” 그는 최대한 절제하는 요리를 좋아하고, 최대한 치장하지 않는 글을 선호한다. 요리하지 않는 요리사, 부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칼럼니스트다. “겨자 잎이나 쌀을 오래 씹으면 어느 순간 본연의 맛이 나온다. 그 맛이 좋다. 혹은 친구가 캔 바지락에 엄마가 담근 된장을 맑게 풀어낸 요리 같은 것.” 그의 요리와 글은 바로 이런 맛이다. 억지로 치장하지 않고, 함부로 뽐내려 하지 않는다. “첫번째 직장인 <주부생활> 편집장에게 배운 거다. 법정 스님 최초 인터뷰 같은 걸 척척 해내신 분이었는데, 취재도 잘하셨고, 글도 정말 잘 썼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데 가슴을 치는 글을 쓰셨다. 그분이 늘 강조하던 말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 절대 거만하지 말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그는 글 쓰는 첫 순간에 최고의 스승을 만났고, 요리를 하는 첫 순간에 또 최고의 스승을 만난 것처럼 말했다. 그의 인생에는 왜 이토록 큰 행운이 따라다니는 것일까 궁금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사실 이건 행운이 아니라 ‘재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그는 남의 인생에서 배울 점을 잘 찾아내고, 이를 자기 것으로 담백하게 소화해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능을 더 추가한다면, 그건 바로 농담의 재능이다. 겉모습은 중후한 아저씨 같은데, 말이나 글, 심지어는 요리에조차 남을 배시시 웃게 만드는 매력을 숨겨 놓는다. 스스로 자학개그라고 말하는 이 웃음 코드는 그의 중후한 외모와 묘하게 배치된다. 반전은 외모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반전 유전자를 타고난 박찬일 셰프는 인생 이모작으로 모자라 삼모작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평생 한가지 일로 먹고살 자신이 없으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좋다. 인생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면서 살아야 한다. 요즘 세대는 별일 없으면 100살까지 사는 세대다. 한 직업으로 2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도 할 수만 있다면 인생 삼모작에 도전하고 싶은 눈치다. 글과 요리 말고 또 무엇에 관심이 있냐고 물으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돌변한 그가 되묻는다. “나도 빨리 찾고 싶다. 어디 재미있는 일 없나?”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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