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아찔해서 더 황홀해라

등록 2012-09-12 14:45수정 2012-09-12 17:24

2693m 높이의 하프돔은 암벽등반을 할 줄 모르는 등반객도 도전할 수 있도록 케이블이 설치돼 있지만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어 종종 추락사고가 나는 아찔한 코스다.
2693m 높이의 하프돔은 암벽등반을 할 줄 모르는 등반객도 도전할 수 있도록 케이블이 설치돼 있지만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어 종종 추락사고가 나는 아찔한 코스다.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상징물 하프돔 등정기
2693m 높이 마지막 100m
쇠줄타고 직벽 올라
전세계에서 온 등반객 줄이어

5시간 반 걸려 정상 오르니
너른 고원 펼쳐진 장관
등정 성공 훈장으로 통해

“걱정할 거 없어. 보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아.” 하프돔 정상으로부터 드리운 120m 길이의 쇠줄(케이블) 아래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네는 이가 있다. 줄을 잡고 웃으며 내려오는 독일인 얀시다. 얀시는 “여기 봐. 12살 내 아들과 아내도 장비 없이 거뜬히 갔다 오잖아. 문제없을 거야”라고 격려를 건넨다. 그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 뒤이어 내려오는 단단한 체구의 젊은이는 암벽등반용 안전띠(하니스)를 허리와 허벅지에 단단히 둘러멘 채 등산용 고리(카라비너)를 쇠줄에 걸고 한 피치 한 피치 조심조심 하강한다.

새벽길을 나서 5시간 고된 산행 끝에 하프돔 정상이 코앞에 나타났지만, 진짜가 남았다. 직벽에 가까운 하프돔 마지막 구간을 케이블에 의지해 100m 넘게 올라가야 한다. 등반객들은 쇠줄을 붙잡기 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에너지바 등 영양분을 섭취하고 지친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준다.

하프돔은 주발을 절반으로 잘라낸 모양의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다. 요세미티 밸리에 돌올하게 솟은 2693m의 하프돔은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상징이다. 일반인의 범접을 허용할 것 같지 않은 장엄한 거벽이지만, 뒤쪽으로는 정상 아래까지 접근할 수 있는 작은 봉우리(서브돔)가 닿아 있고 케이블이 설치된 덕에 암벽등반 경험 없는 이도 장비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지난 8월27일 하프돔 도전에 나섰다. 전날 요세미티공원 커리빌리지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아침 6시에 출발했다. 버널폭포와 네바다폭포를 지나는 미스트 트레일을 선택했다. 미스트 트레일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로 등산로가 물안개에 뒤덮이고 늘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곳이지만, 8월말엔 수량이 줄어 폭포 줄기가 약했다.

하프돔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루트인 케이블은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꼬여 있다. 1919년 시에라클럽이 케이블을 설치한 이래 등산객의 하프돔 등정은 가능해졌지만, 잦은 추락사고에도 안전시설 보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위험한 도전을 선택한 이의 책임일 뿐, 추락 방지용 시설로 자연을 훼손할 이유가 없다는 미국식 사고다.

기둥과 케이블, 나무막대도 고정된 설치물이 아니다. 케이블은 5월말부터 10월초까지 약 5개월간 설치됐다가 철거된다. 근래에는 요세미티공원의 보전을 위해 하프돔 케이블 전면철거가 검토되었다. 성수기엔 하루 1000명 넘는 사람들이 하프돔에 오르려는 통에 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하프돔과 등산로가 훼손된다는 우려에서다. 전세계 산악인들을 애태우게 한 이 정책은 등정 허가가 좀더 까다로워지는 정도로 타협이 이뤄졌다. 공원 쪽은 지난해까지 주말과 휴일에만 하프돔 등반 허가제를 적용해오다가 올해부터 평일도 허가제로 전환했다. 하루 400명까지만 등정 허가를 내준다.
요세미티 밸리에 우뚝 선 하프돔. 남서쪽에서 보는 매끈한 봉우리와 달리 북동쪽으로 가면 케이블과 서브돔을 통해 정상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 수차례 추락으로 사망사고가 난 이유로, 올해부터 하루 400명만 등반을 허가한다.
요세미티 밸리에 우뚝 선 하프돔. 남서쪽에서 보는 매끈한 봉우리와 달리 북동쪽으로 가면 케이블과 서브돔을 통해 정상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 수차례 추락으로 사망사고가 난 이유로, 올해부터 하루 400명만 등반을 허가한다.
왼쪽으로 내민 바위가 하프돔 정상 인증 사진을 찍는 바이저 바위다. 하프돔에 서면 발 아래 요세미티 밸리 계곡과 엘캐피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내민 바위가 하프돔 정상 인증 사진을 찍는 바이저 바위다. 하프돔에 서면 발 아래 요세미티 밸리 계곡과 엘캐피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수기 때 인파가 몰려 1시간 동안 암벽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는 공포스러운 등반기도 있지만, 허가제는 도전자를 줄여 쇠줄에 매달린 채 심장이 쫄깃해지는 시간도 단축시켜줬다. 25분 걸려 올라갔다. 케이블을 붙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팔 힘이 부쳐왔다. ‘앞으로 올라가야 할 길이 까마득한데…’ 심신이 불안해졌다. 휴식 없이 몇 구간을 빠르게 오른 탓이다. 팔 힘을 아끼면서 최대한 다리 힘을 사용하고, 몇걸음마다 기둥과 나무막대에 의지해 휴식하는 요령을 금세 터득했다.

1.2m 간격의 두 가닥 쇠줄은 약 2m 간격의 쇠기둥에 지탱되고 쇠기둥 밑동엔 나무막대가 걸쳐 있다. 사실 두 가닥의 쇠줄만을 이용해 하프돔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쇠기둥과 나무막대에 의지해 쉬면서 2m 구간씩 60번을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렵다는 생각에 급하게 오르려다가는 팔 힘을 너무 빨리 소진하게 된다. 안전장치 없이 2600m 암벽에 매달린 상황에서 팔 힘이 빠지면 공포에 젖게 된다. 체력이 요구되긴 하지만 안전수칙을 지키면 보기만큼 위험한 등반은 아니다. 가장 큰 위험은 비와 낙뢰다. 구름이 끼거나 몸 상태가 약간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 간혹 쇠줄을 잡고 오르다가 다리에 쥐가 나거나 엄습한 두려움 때문에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날 함께 오른 수십명은 모두 안전하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케이블을 타고 오르는 하프돔 정상. 하프돔 정상에 서면 요세미티 계곡의 전경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케이블을 타고 오르는 하프돔 정상. 하프돔 정상에 서면 요세미티 계곡의 전경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2199m 높이의 전망대인 글레이셔 포인트에서 바라본 하프돔과 요세미티 밸리. 돔을 반쪽으로 잘라낸 모양이라서 하프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2199m 높이의 전망대인 글레이셔 포인트에서 바라본 하프돔과 요세미티 밸리. 돔을 반쪽으로 잘라낸 모양이라서 하프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상은 뜻밖의 풍광이었다. 요세미티 밸리를 호령하는 하프돔 봉우리는 아래에선 짐작하지 못할 넓은 고원을 이고 있었다. 정상에선 마침내 해냈다는 감격과 다시 내려갈 생각으로 머릿속에 여유가 없지만 잠시만 눈을 돌리면 으뜸가는 전망을 누릴 수 있다. 요세미티의 또다른 상징이자 암벽 등반인들에게 꿈과 전설인 엘캐피턴도 내려다보인다. 동북쪽으로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3000m 이상 고산지대인 ‘하이 시에라’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정상에 오른 이들은 도시락을 먹거나 누워서 잠을 청한다. 새벽에 출발해 기력을 소진한 탓이다. 하프돔 정상엔 누구나 인증사진을 찍는, 계곡 쪽으로 불쑥 내민 바위가 있다.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한 젊은 여성은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말하더니, 두 팔을 벌린 채 두 다리로 힘차게 바위 위를 박차고 뛰어올라 허공에서 자세를 취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짜릿할 정도다.

내려갈 때도 정상을 보면서 뒤로 하강해야 한다. 하산길은 5시간이 걸렸다. 체력이 떨어진데다, 고소 증세로 두통이 생겨 생각보다 힘들었다. 출발지점인 요세미티 밸리는 해발 1230m, 짧은 시간에 고도를 1463m 올린 산행이 고소증을 가져왔다. 공원 쪽이 왕복 10~12시간이 걸린다고 안내한 ‘최고난도’ 하이킹코스 22.5㎞는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내 인생 가장 아찔했던 산행이었다.

요세미티 일대에서 하프돔 등정은 일종의 훈장으로 통한다. 하프돔을 등정한 이튿날엔 차량을 이용해 글레이셔 포인트를 가보면 전날 등산의 감흥을 이어갈 수 있다. 하프돔 맞은편 2199m 높이의 전망대인 글레이셔 포인트는 요세미티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고, 하프돔을 어디에서보다 웅장하게 보이게 하는 곳이다. 글레이셔 포인트에서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절벽 덩어리를 보며 갖은 감탄사를 쏟아내는 이들에게 “난 어제 저 하프돔을 올라갔다 왔다”고 했더니, 상대의 눈빛이 두 종류로 반응했다. “거짓말이네. 저렇게 매끈한 봉우리를 어떻게 오른다는 말인가?” “정말이냐, 대단하다, 부럽다!”

등반 이튿날 요세미티공원에서 등산로를 안내해주는 70대 자원봉사자에게 뽐내듯 하프돔 등정을 말했다. 그는 “축하한다. 하루에 두번 올라갔다 온 사람도 있다”며 “다음엔 3027m 높이의 클라우즈 레스트에 올라가서 하프돔을 굽어보는 게 어때”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더 높은 곳을 가리켰다.

요세미티(미국 캘리포니아)/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교통사고 낸 정준길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박근혜 관련 공익재단 4곳 재벌계열사처럼 운영”
깜짝 ‘출마예고’ 안철수, 문재인 지지율 역전탓?
10대 소녀들을 접대부로…‘나쁜 어른들’ 적발
‘아이폰5’ 삼성-애플 대결구도 바꾸나
‘조희팔 죽었다’던 경찰은 죽을판
[화보] 베니스의 별 ‘피에타’의 주인공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