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esc] esc를 누르며
달리기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둘 있습니다.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 어린 시절 무라카미가 달리기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좀 이상했습니다. 예술가와 달리기라니 어울리지 않잖아? 밤새도록 재떨이를 수북이 채우면서 원고를 쓰거나 술을 마시고 낮에는 검은 커튼을 드리운 채 잠을 자거나 유령처럼 어슬렁거리는 게 딱 작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비흡연에 매일매일 규칙적인 달리기를 한다니, 아니나 다를까 무라카미의 얼굴은 제 느낌에는 섬세한 작가라기보다는 성과 좋은 영업맨처럼 보였습니다.
무라카미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달리기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것처럼 김연수 작가도 얼마 전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자신이 달리기광임을 아낌없이 드러냈지요.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달리기를 끝낼 때마다 어마어마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건 단지 계획대로 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무라카미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했지요. “달리기, 특히 마라톤을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인생 자체의 색깔이 다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뭔가 인간 존재에 깊숙이 와닿는 것이 있다.”
마라톤 완주는커녕 달리기라면 지금 생각해도 괴로움이 몰아치는 체력장 오래달리기 연습만 떠오르는 저는 두 작가가 말한 그 기쁨과 통찰을 이해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이번 커버스토리 사진의, 달리는 발밑에 깔린 들풀들을 보니 불끈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평지 4㎞도 못 뛰는 제가 산을 달릴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이 가을 물들기 시작한 산에 천천히 걸어서라도 한번 올라야겠습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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