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요리
고향 논산시 강경을 배경으로 소설 <소금> 연재중인 박범신 작가와 함께 간 강경젓갈시장
고향 논산시 강경을 배경으로 소설 <소금> 연재중인 박범신 작가와 함께 간 강경젓갈시장
“어머니는 황석어젓과 조기젓은
꼭 직접 담그셨어요
둘째 누나는 함지박을 이고
젓갈장사를 한동안 했지요” 정오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고속열차였다면 달걀판에 꽉꽉 찬 달걀처럼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많았을 게다. 평일 논산행 새마을 기차는 빈집이다. 누런 들녘을 지나 도착한 논산역에는 소설가 박범신 선생이 철길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지난 12일 최재봉 문학담당기자와 함께 논산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났다. 그는 9월부터 한겨레신문에 소설 <소금>을 연재하고 있다. 소설은 그가 지난해 11월 서울살이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 고향 논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글에는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물씬 풍긴다. ‘봄에 담그는 젓갈로는 조기젓, 밴댕이젓, 꼴뚜기젓이 으뜸이고, 초여름엔 조개젓, 황석어젓, 한여름엔 오징어젓이 제철이며, 가을에는 맛깔나는 젓갈로는 대구모젓, 어리굴젓이 제일이다.’ 논산시는 ‘강경발효젓갈축제’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젓갈 산지다. 올해도 젓갈축제가 열린다. 21일까지다. 그와 매끈하고 물컹한 고향의 맛에 푹 빠졌다. “늦은 점심부터 먹으러 가자고.” 작가는 그의 단골집으로 안내를 한다.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덕이네식당’(041-745-3020)에는 복찜, 아구찜, 아구탕, 복탕 등이 있다. “복탕 주문하면 됩니다.” 얼큰하고 푸짐한 복매운탕이 나온다. 금강하구에 자리잡은 강경은 예전에 육로와 수로가 이어지는 내륙항으로 유명했다. 배는 육지 생산물을 싣고 충청도와 전라도, 인천항까지 갔다고 한다. 그중에는 소금도 있었다. ‘강아지도 생조기를 먹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생선도 풍족한 동네였다. 생선염장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 젓갈의 시작이다. 강경은 1911년 호남선 개통 등 철도가 발달하면서 서서히 퇴락해갔다. 1930년대에 강경시장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면서 활발한 조업도 없어졌다. 이제는 대표적인 염장식품인 젓갈만 남았다.
젓갈은 생선의 살이나 알, 창자 등을 소금에 절이고 숙성시키는 발효식품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젓갈의 종류도 참 많다. 생선을 통째로 절이는 새우젓, 멸치젓, 조기젓 등과 내장을 활용한 창난젓(명태의 창자로 담근 젓), 갈치속젓(갈치의 내장 활용), 해삼창자젓, 전복내장젓과 명란젓(명태의 알로 담근 젓)처럼 알을 재료로 한 젓 등이 있다.
배를 두둑하게 채우자 작가는 옥녀봉으로 발길을 돌린다. 옥녀봉에서는 강경젓갈축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옥녀봉 아래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선기철소금’집의 모델인 쇠락한 빈집이 있다. 작가는 최재봉 기자에게 빈집에 대해 털어놓는다. “원래 부안염전을 찾아갔어요. 주인공 살 집을 염전 옆에 두고 싶었지요. (이곳의) 낡고 쓸쓸한 경광이 마음에 들어 상상 속에서 집을 개조했습니다.”
“젓갈이 나를 키웠지요
젓갈은 음식이 아니라 문화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강경읍 염천리와 태평리에 있는 젓갈가게로 향했다. 강경읍에만 모두 136개 젓갈가게가 있다. ‘형제상회’에는 오젓(음력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갈), 육젓(6월 새우로 만든 젓갈), 추젓(9~10월 가을철 새우가 재료인 젓갈) 등이 짜고 단 아우성을 지른다. 작가는 육젓을 콕 찍어 맛본다. “이제 나도 좋은 젓갈을 한번에 알아볼 수 있네요.” 물컹하고 시커먼 황석어젓도 큰 통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머니는 황석어젓과 조기젓은 꼭 직접 담그셨어요.”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둘째 누나가 함지박을 이고 젓갈장사를 한동안 했어요. 고등학생 때 강경역에 가면 함지박을 인 장사꾼이 100명을 넘었어요. 생선 냄새 풍기면서 열차 타고 인근 지역에 팔러 가는 거죠.”
‘형제상회’ 주인 박청수씨는 소금에 절인 원재료를 신안, 목포, 강화 등지에서 가져온다고 말한다.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란다. 이렇게 산지에서 직접 가져온 신선한 재료를 현대적인 시설에서 3개월 이상 발효시킨다. 박씨가 그 현장인 저온 창고로 안내한다. 창고에는 젓갈 통 수백개가 차곡하게 줄지어 서 있다. 소매가 긴 셔츠에 매서운 찬 바람이 스며든다. 몇 분도 안 돼 으슬으슬 한기가 찾아온다. “10~15도에서 저장해요. 1년 넘는 것도 있어요.” 새우젓은 새우의 신선도가 맛을 결정하지만 발효 정도가 질을 좌우한다. 그런 이유로 강경의 젓갈가게들은 자체 저장발효시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함열젓갈상회’ 주인 최순덕씨는 저장창고의 온도는 10도, 발효실 온도는 0도~영하 1도에 맞춰둔다. 집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젓갈 1㎏당 가격은 약 1만~5만원이다. 급속하게 젓갈가게들이 늘어난 때는 1970년대 초부터라고 한다.
이곳 강경 젓갈가게의 매력은 한가지가 더 있다. 오징어젓, 어리굴젓, 명란젓, 청어알젓, 창난젓, 낙지젓, 가리비젓, 토하젓, 꼴뚜기젓 등 다양한 젓갈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이끈 ‘달봉가든’(041-745-3070)에는 이들 13가지 젓갈로 구성된 젓갈백반이 있다. 모두 붉은빛이지만 그 농도는 젓갈마다 다르다.
“젓갈이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어요. 젓갈은 음식이 아니라 문화죠. 민족의 얼이 깃든 것입니다.” 그의 젓갈에 대한 마지막 평이다.
논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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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직접 담그셨어요
둘째 누나는 함지박을 이고
젓갈장사를 한동안 했지요” 정오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고속열차였다면 달걀판에 꽉꽉 찬 달걀처럼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많았을 게다. 평일 논산행 새마을 기차는 빈집이다. 누런 들녘을 지나 도착한 논산역에는 소설가 박범신 선생이 철길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지난 12일 최재봉 문학담당기자와 함께 논산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났다. 그는 9월부터 한겨레신문에 소설 <소금>을 연재하고 있다. 소설은 그가 지난해 11월 서울살이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 고향 논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글에는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물씬 풍긴다. ‘봄에 담그는 젓갈로는 조기젓, 밴댕이젓, 꼴뚜기젓이 으뜸이고, 초여름엔 조개젓, 황석어젓, 한여름엔 오징어젓이 제철이며, 가을에는 맛깔나는 젓갈로는 대구모젓, 어리굴젓이 제일이다.’ 논산시는 ‘강경발효젓갈축제’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젓갈 산지다. 올해도 젓갈축제가 열린다. 21일까지다. 그와 매끈하고 물컹한 고향의 맛에 푹 빠졌다. “늦은 점심부터 먹으러 가자고.” 작가는 그의 단골집으로 안내를 한다.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덕이네식당’(041-745-3020)에는 복찜, 아구찜, 아구탕, 복탕 등이 있다. “복탕 주문하면 됩니다.” 얼큰하고 푸짐한 복매운탕이 나온다. 금강하구에 자리잡은 강경은 예전에 육로와 수로가 이어지는 내륙항으로 유명했다. 배는 육지 생산물을 싣고 충청도와 전라도, 인천항까지 갔다고 한다. 그중에는 소금도 있었다. ‘강아지도 생조기를 먹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생선도 풍족한 동네였다. 생선염장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 젓갈의 시작이다. 강경은 1911년 호남선 개통 등 철도가 발달하면서 서서히 퇴락해갔다. 1930년대에 강경시장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면서 활발한 조업도 없어졌다. 이제는 대표적인 염장식품인 젓갈만 남았다.
박범신(오른쪽) 작가와 최재봉 기자. 옥녀봉 아래 빈집을 찾았다.
젓갈은 음식이 아니라 문화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강경읍 염천리와 태평리에 있는 젓갈가게로 향했다. 강경읍에만 모두 136개 젓갈가게가 있다. ‘형제상회’에는 오젓(음력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갈), 육젓(6월 새우로 만든 젓갈), 추젓(9~10월 가을철 새우가 재료인 젓갈) 등이 짜고 단 아우성을 지른다. 작가는 육젓을 콕 찍어 맛본다. “이제 나도 좋은 젓갈을 한번에 알아볼 수 있네요.” 물컹하고 시커먼 황석어젓도 큰 통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머니는 황석어젓과 조기젓은 꼭 직접 담그셨어요.”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둘째 누나가 함지박을 이고 젓갈장사를 한동안 했어요. 고등학생 때 강경역에 가면 함지박을 인 장사꾼이 100명을 넘었어요. 생선 냄새 풍기면서 열차 타고 인근 지역에 팔러 가는 거죠.”
‘형제상회’ 저온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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