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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독서의 오묘한 즐거움

등록 2012-10-31 20:56수정 2012-11-02 11:45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청취를 통한 독서 지향하는 교육방송 ‘책읽는 라디오’ ‘책읽는 택시’의 실험
라디오에서 청독이라는 무모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교육방송(EBS) 에프엠의 ‘책읽는 라디오’가 그것. 지상파를, 그것도 채널을 통째로 내놓아 하루 11시간씩 책을 읽어준다. 방송 쪽에서는 낭독이지만 청취자한테는 ‘듣는 독서’인 청독인 셈이다. 눈으로 읽는 묵독이 대세인 현대에 파격도 이런 파격이 없다. 올해 3월부터 시작해 벌써 여덟달째다.

<교육방송>(EBS) 보이는 라디오 ‘고전읽기’.
<교육방송>(EBS) 보이는 라디오 ‘고전읽기’.
3월부터 시작한
EBS ‘책읽는 라디오’
하루 11시간 시·수필·소설 낭독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취합니다. 그 통에 라디오는 청취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죠. 공중파로서 공익 실현에 기여해야 하는 이비에스 라디오는 고민이 커졌어요. 돌파구를 모색하다가 이야기로 감동을 전하자고 의견을 모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라디오가 이미 청취자 사연 등 일상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책입니다. 책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은가요. 다른 방송사처럼 한두개를 책에 할애해서는 차별화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브랜드 자체를 책읽는 라디오로 만들었지요. 감성매체인 라디오와 시간·이야기가 중첩된 책이 궁합이 잘 맞을 거라고 봤습니다.” 김준범 제작부장의 말이다.

아침 10시 ‘어른을 위한 동화’를 시작으로 1시간 간격으로 밤 11시까지 시, 수필, 단편소설, 고전, 베스트셀러, 영미문학 등을 소개하고 사이사이 명사 또는 독자가 읽어주는 한권의 책, 극화한 라디오문학관, 책을 소개하는 북카페 등을 끼워넣었다. 김성진 등 아나운서 외에 배우 강성연·채국희, 성우 최지환, 가수 이지훈·이승렬, 저술가 구본형, 개그우먼 이희구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진행자 또는 낭독자로 참여하고 있다. 일반인 3명을 내레이터로 채용해 풋풋함을 더했다.

단편소설을 읽어주는 채국희씨는 “평소 소리내어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방송사에서 연락이 와 냉큼 진행을 맡았다”며 “혼자서 하는 자폐적인 책읽기보다 재능을 나누고 함께 즐길 수 있어 보람있다”고 말했다.

택시 50대도 참여해 서울 시내를 누빈다. 송파구에 있는 삼광교통㈜ 택시 50대인데, 주황색 바탕에 ‘책읽는 택시’라고 표시돼 있어 단박에 눈에 띈다. 택시에는 여러 권의 책을 갖추고 이비에스 방송을 틀어줘 승객들이 자연스레 책을 귀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택시 안에 부착된 정보무늬(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택시에서 내린 뒤에도 방송을 이어 들을 수 있다. 방송이 없는 새벽에는 방송을 녹음한 시디를 틀어준다. 효과가 좋으면 전국 도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피디 등 내부에서 재미없어했다.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노하우 없이 시작했기 때문. 김 부장은 자신이 들어봐도 한두개 빼고는 몰입이 안 되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책이 처음부터 친해지겠느냐, 시간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이제는 피디도 익숙해지고 오피니언 리더들도 재밌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외국어 위주였을 때 이비에스는 청취율이 1.5~2.0%에 머물렀다. 책으로 바꾼 직후 1.3%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1.5%를 넘어섰다. 전에는 정체상태였는데, 현재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설명이다.

“청독은 활자 하나하나가
살아있어
청각은 감성적이어서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죠”

낭독 대상이 되는 책은 사람들이 한번쯤 읽었거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는 것들이다. 전혀 생소한 것보다 스토리라인을 아는 것이 몰입도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김유정, 최서해, 강경애, 김동인, 이효석, 이광수, 박태원 등의 한국 근현대 소설, <아버지>(김정현), <덕혜옹주>(권비영), <인형의 집>(입센), <오 헨리 단편집>(오 헨리) 등 스테디셀러가 방송을 탔다. 연재소설에서는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황석영 ‘여울물 소리’ 등 정식 출판 이전의 작품들도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역사소설 <연개소문>에 이어 <초한지>를 낭독하는 성우 최지환씨는 드라마처럼 재밌게 읽다 보니 청취자보다 자신이 더 빠져들더라고 말했다. 방송사 쪽은 청취자들이 청독에 익숙하게 만드는 게 우선 목표이며, 그게 어느 정도 정착되면 역사, 철학 등 인문서적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청독이 괜찮은 독서방법일까. 성우이자 탤런트인 최낙천씨는 이렇게 말했다.

“청독은 묘한 맛이 있어요. 묵독이 밥 먹을 때 한입에 가득 넣고 우물우물하다 삼키는 것이라면 낭독 내지 청독은 밥을 한알한알 씹어서 먹은 것 같은 느낌이죠. 묵독이 빠르기는 하지만 활자가 박제된 반면 청독은 활자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고나 할까요. 시각이 이성적이어서 상상력을 제한하지만 청각은 감성적이어서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죠.”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의 감성이 뛰어난 것은 현실과 직접 소통하기 때문인데, 청독은 문자에 익숙해 감성이 퇴화한 성인한테 감각의 조화를 회복시켜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읽기는 망막에서 바뀐 전기신호가 측두엽의 위쪽인 두정엽으로 들어가는 반면 듣기는 후두엽으로 들어가 ‘이해’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책읽는 라디오에 대해 “명분과 의미는 있지만 실제 영향력이나 사회적 역할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며 “기왕 하려면 접근성이 높은 텔레비전에서 그런 노력을 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BS반디’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인터넷 또는 휴대폰으로도 ‘책읽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http://home.ebs.co.kr/bandi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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