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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꼰대’ 식별 매뉴얼은?

등록 2013-01-16 18:00

이대리 제공
이대리 제공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직장에는 ‘매뉴얼’이 많다. 조직이라는 것은 특정인의 들고남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맡은 바 업무를 설명하는 매뉴얼을 항상 준비해 둔다. 명문화된 매뉴얼들은 규정, 직무기술서, 활용법, 편람 등의 이름으로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비치된다.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둔 비공개 매뉴얼들도 있다. 25년 전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앞서 탐독하던 야영지 생존법 부류의 책이 진화한 것 같은 나만의 아부 비법이나 절대 들키지 않는 사내 연애에 관한 노하우, 배우자 몰래 알량한 비자금을 축적하는 법 등 관심사에 따라 정리된 매뉴얼들은 제각각이다. 젊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한권쯤 갖고 있는 것은 <꼰대 식별 매뉴얼>이 아닐까?

구매팀 ㄱ대리의 꼰대 식별 매뉴얼은 전화 예절에 관한 것이다. 값나가는 각종 자재와 건축공사를 관리하는 부서 특성상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많고, 내·외부 고위 관계자들의 청탁도 수시로 감내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기본 잣대로 자연스레 내면화한 규정인 것. 팀장이 부재중이던 어느 날, 전화를 당겨 받은 ㄱ대리는 “ㄴ팀장 없어요? 어디 갔어요? 언제쯤 들어와요?”라는 자기 용무 3종 세트만 다짜고짜 발사하는 중년 남성의 비매너에 최신형 보일러처럼 여러 번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ㄱ대리는 과학수사 근성을 발휘해 발신번호를 추적했고, 그 남성이 회사 전직 고위임원의 친지이며 대량 납품건을 성사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ㄴ팀장에게 전화한 것을 알아냈다. 이후 그 중년 남성의 회사는 납품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ㄱ대리가 담당하는 파트에서는 전혀 실적을 올릴 수 없었다. ㄱ대리가 입찰조건을 미리 받아내 그것보다 살짝 낮은 금액으로 경쟁 업체들이 진입할 수 있게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를 꿰차고 있는 한 그분의 전화 예절을 고쳐놓고 싶었지만 인맥으로 사업을 하는 버릇이 뿌리 깊어서인지 5년이 지나도록 그 ‘꼰대’는 자기의 실수를 거듭한다”고 ㄱ대리는 말했다.

대관업무 담당자인 ㄷ대리는 유력 인사들과의 술자리가 잦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는 어쭙잖은 건배사를 즐기는 사람을 경계하게 됐다.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는 의미의 ‘오.바.마’,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뜻의 ‘성.행.위’ 같은 말을 취중에 내뱉고 낄낄대는 인물들은 십중팔구 구설수에 올라 향후 업무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ㄷ대리는 전한다.

영업팀 ㄹ대리는 “구호나 슬로건은 그 사람의 콤플렉스”라는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의 말을 절대 신봉한다. “늦었는데 어서들 퇴근해”라는 상사치고 칼퇴근에 눈총 안 주는 상사 못 만나봤으며 “회사 비용 절감!”을 외치면서 자신이 쓰는 법인카드에 단단한 원칙을 가진 사람 못 봤다는 게 주된 이유다.

되돌아보면 우리 중 대다수는 언제까지나 젊고 예의바르며 합리적일 것이라 스스로 생각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흐르는 세월에 순응하며 스스로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닮아가는 건 아닐까? “젊어도 정신적으로 늙고 꼰대질이나 하려는 사람에게 청년이란 말을 쓸 수 없다”는 낸시 랭의 발언이 찬물 세수처럼 몽롱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준다.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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