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영씨와 대련하고 있는 기자.
[esc 매거진] 커버스토리
운동 제로 20년차
박미향 기자
브라질리안 주짓수 도전 잘생긴 남자 사범과
야릇한 자세
신경쓸 틈도 없이 고꾸라져
수련장 들어선 지
15분 만에 땀범벅 두툼한 도복을 입었다. 묵직하다. 허리띠를 둘둘 묶자 옆에 있는 한 수련생이 나서서 친절하게 묶는 법을 가르쳐준다. 지난 7일 브라질리안 주짓수(Brazilian jiu-jitsu. 브라질 유술) 체육관인 ‘존프랭클 주짓수 압구정 아카데미’를 찾았다.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그날따라 열 명의 수련생 중에 여성은 기자 혼자였다. 좀 쑥스럽다. 몸 풀기가 시작됐다. “먼저 뛰세요.” 김동균(29) 사범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자, 구르기 하세요.” 기자의 운동신경은 최하위권이다. 한 번 구르자 머리가 띵하다. 직선으로 똑바로 굴러야 하는데 몸은 저 혼자 굴러 사선 방향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다. 옆으로 뛰기, 뒤로 뛰기 등을 하자 얼굴에 벌써 땀이 흥건하다. 태릉선수촌 선수가 된 것 같다. 팔과 다리를 든 채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여 바닥을 걷는 몸 풀기는, 뱃살 두툼한 기자의 몸뚱어리가 감당하기는 너무 높은 단계다. ‘아! 뱃살 확실하게 빠지겠는데!’ 약 15분이 지나자 장맛비처럼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러닝머신 위의 1시간과 맞먹는다. ‘다이어트 된다는 게 이런 거군!’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이건 거대한 시작에 불과했다.
수련생들과 인사를 주고받자 김 사범이 기술을 가르쳐준다. 마치 거미처럼 양팔과 다리를 정교하게 휘둘러 제압하는 기술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을 노려봐도 도통 감이 안 온다. 세상사, 모든 일은 ‘감이 있는 자’와 ‘감이 없는 자’의 승부가 아니던가! 기자는 감이 없다. 쌍을 맞춰주고 대련을 지시한 사범은 “오늘 처음이니 기초 방어기술을 알려 드리지요”라고 한다. ‘옳다구나! 주짓수는 여성이 남성을 제압할 수 있는 호신무술이라고 했지.’ 사범이 눕는다. “제 몸에 올라타세요.” 아니, 왜 이러세요;;; 핑크빛 영화에서나 출몰하는 자세다. 살짝 부끄럽기도 전에 그가 날렵하게 나를 옆으로 넘겨버린다. 1초도 안 걸린다.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배우면. 누워보십시오.” 기자가 눕자 김 사범이 배 위로 다리를 벌려 올라탔다. ‘좀 묘한 자세인데!’ 살짝 부끄럼이 또 발동한다. 김 사범은 키 180㎝, 몸무게 76㎏인 덩치 좋은 남자다. 더구나 그는 잘생겼다. “빠져나와야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도망갈지를 먼저 정합니다.” 그는 담담하다.
그가 알려준 방법은 이렇다. 오른쪽으로 도망가기로 정하면, 기자가 왼손으로 그의 오른팔 도복을 잡는다. 다른 손은 그 위 소매 부분을 붙잡는다. 오른쪽 발을 몸 쪽으로 당겨 그의 왼쪽 발의 바깥에 둔다. 자물쇠 같은 역할이다. 손들을 당기는 동시에 힘차게 허리를 올리면 그의 머리와 가슴이 기자의 얼굴 위로 쓰러진다. 그는 자동으로 왼손으로 땅을 짚는다. 그때 침착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어 넘기면 된다. ‘마운트’(mount) 기술이다. 머리로는 쉽다. 몸이 안 따른다. 한 번, 두 번 연습이 이어진다. 그의 도복을 훅 당기자 그의 탄탄한 근육이 눈앞에 보인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틈이 없다. 넘겨야 한다. 드디어 그를 오른쪽으로 패대기친다. “상대방의 힘과 자세를 역이용하는 게 주짓수입니다. 틀만 제대로 갖추면 상대방이 마음대로 못합니다. 지렛대 원리죠.”
이상한 일이다. 기술을 연마할수록 그가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 대련할 상대, 넘어뜨려 빠져나와야 할 상대로만 보인다. “힘으로 넘기려 하지 마세요. 기술을 쓰세요.” 삑! 첫 번째 대련시간이 끝난다. 길어야 5~6분이다. 다른 수련생들도 얼굴이 뻘겋다. “손힘이 아주 세요. 소질 있으신데요.”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 대련할 수련생을 정해준다. 박재현(24)씨는 주짓수를 한 지 4년 차다. 172㎝, 71㎏의 단단해 보이는 남자다. 박씨가 기자의 몸 위에서 압박한다. 배운 기술을 쓰려고 하자 그가 양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피한다. ‘잡기만 해봐라!’ 공식대로만 움직이려고 하니 쉽지 않다. 상대도 나름대로 방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박씨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고 포착해야 한다. 오른쪽 팔을 붙잡으려고 하자 그가 팔을 뒤로 멀리 뺀다. 기자는 바로 놀고 있던 그의 왼쪽 팔을 붙잡고 당겨 넘긴다. 그가 봐준 게 맞지만 기분이 좋다. “상대도 가만있지는 않아요. 살펴야죠.”
세 번째 대련 상대는 김성래(41)씨였다. 172㎝, 57㎏. 상대했던 두 남자에 비해 가볍다. 오만한 생각이 든다. ‘이 사람 정도야!’ 그는 주짓수를 한 지 이제 8개월째라고 했다. 그가 배 위에 올라타자 훨씬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쉽게 넘긴다. 사실 그도 역시 봐준 게 맞다. “넘길 때 오른쪽 어깨선을 따라 넘기는 게 좋아요.” 완전 초급인 나는 수련생들의 애물단지다. “반대로 할까요. 이번에는 못 넘기게 해보세요.” 왠지 쉬울 거 같았다. 그의 배 위로 올라탔다. 양다리에 꽉 힘을 줬다.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그의 몸무게는 나보다 적었다. ‘어라 어라!’ 몇 초 안 걸려 체육관 바닥에 기자는 쓰러졌다. 그는 기술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김씨와 기자는 같이 웃었다. 친구가 된 듯했다.
이수용(43) 관장이 웃으면서 “폐 끼치지 마시고 이리 오세요”라고 부른다. 처음 오는 여성 수련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초초급 호신술을 보여준다. “제 손이 얼굴이나 머리에 닿으면 지는 겁니다.” 기자는 누운 상태다. ‘어어!’ 1초도 안 돼 진다. 답은 다리에 있었다. 누운 상태에서 기자의 다리를 관장의 골반 아래, 허벅지 맨 위에 대고 단단하게 뻗치자 그의 팔이 닿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에서 남자를 완전히 이기기는 쉽지 않지만 이런 기술을 쓰면 도망갈 시간을 벌죠.” 신기했다.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했다. 마치 구체관절인형처럼 온몸이 척척 움직여 힘겨운 상황을 역전시키는 게 재미있다.
지난 9일 체육관을 또 찾았다. 주짓수는 한 번 맛보면 또 찾게 되는 에그타르트처럼 달콤하다. 이번에 배운 기술은 조금 더 복잡했다. 사이드마운트(side mount)는 양팔로 상대의 머리와 겨드랑이를 껴안고 양다리를 이용해 빠져나와 상대의 옆을 점유하는 기술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대련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대련상대인 송진영(31)씨는 친절했다. 직장인인 그는 주짓수를 한 지 5년 차다. 기자가 그의 몸 위에서 기술을 못해 헤맬 때 자세하게 알려준다. “왼쪽 손으로 제 골반을 누르고, 왼쪽 다리로 제 허벅지를 압박하세요.” 그날 마지막 대련 상대는 중학교 3학년인 남시우, 남학생이었다. 키 165㎝, 몸무게 62㎏. 기자와 거의 비슷한 신체 조건이다. 더구나 중학생! 남군은 1년 반 정도 수련했다. 김 사범은 “봐주지 말기다” 소리를 한다. ‘나도 원하는 바!’ 마운트 기술을 잊었나 싶어 걱정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라, 이 녀석 진짜 센데!’ 세 번째에야 겨우 넘겼다. “처음치고는 잘하시네요.” 봐준 게 아니냐고 닦달하자 남군은 아니란다. 학교에 키 크고 힘센 일진들과 싸움을 한 적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군은 “무도인은 싸움을 안 하죠. 하지만 그 아이들이 두렵거나 하지는 않아요”라고 말한다. 동공이 빛난다.
송씨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됐다. “힘을 너무 쓰셨어요. 그것만 신경쓰다 보니 정작 기술을 써야 하는 걸 놓치는 거예요.”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를 기자도 저질렀다. 다양한 체격의 남성과 대련했다. 위험한 상황에는 도망이 최고의 기술이겠지만 침착한 마음은 충분히 들 것 같았다. 한 시간 반이 넘어 수업이 끝나자 온몸이 기분 좋은 뻐근함에 젖는다. 일상에서 전혀 안 쓰는 근육까지 총동원됐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 <한겨레21>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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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균 사범이 ′마운트′를 지도하고 있다.
기자가 ′마운트′기술로 맞겨루기상대인 송진영씨를 넘기려고 하고 있다.
평일 저녁 퇴근 후 주짓수를 배우는 여성들./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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