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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은 어떻게 종교가 되었는가

등록 2013-05-22 19:48수정 2013-05-23 15:45

최지현 제공
최지현 제공
[매거진 esc]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
세상에는 아무리 얘기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이 있다. 예를 들어 1920년 인도에서 발견된 늑대소녀는 한 과학자가 조작한 쇼였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사실로 인식된다. 이미 진실로 각인된 뒤라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화장품의 진실도 마찬가지다. 매스미디어와 기업이 조작된 정보를 퍼뜨리면 그것이 대중에게 각인된다. 각인된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식이 되고 신념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화장품은 외모를 다루는 예민한 산업이기에 여자들의 불안감만 잘 건드리면 신념을 넘어 종교로 만들 수도 있다.

“이중세안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말은 화장품교의 대표적 교리이다. 필자도 이 교리에 푹 빠져 산 세월이 20대 중반부터 무려 십수년이다. 그러다가 미국과 유럽의 여자들은 간단한 세수만으로 화장을 지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경악을 했지만, 막상 세수만으로 화장을 지워보니 깨끗이 지워졌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하나둘 화장품교의 교리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피부 결을 정돈해준다는 토너는 얼굴을 물로 적시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고, 낮 전용 로션과 밤 전용 크림은 유분의 함량 외에는 다를 것이 없었다. 아이크림의 성분이 여느 크림들과 똑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외선차단제를 낮 전용 모이스처라이저로 인식하는 일은 필자에게도 아주 힘들었다. 세수를 끝낸 맨얼굴에 자외선차단제를 철썩 바르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일단 해보면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는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화장품의 진실을 알리는 책이 여러 권 나왔고 많은 여자들이 읽었지만 아직도 이 교리들은 꾸준히 실천되고 있다. 드러난 진실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화장품이 별다를 게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예뻐지고 싶은 마음에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사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한다. 유기농 화장품의 효과가 과장되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엄마 마음에 아기에게 화학화장품을 바르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한다. 튼 살이나 셀룰라이트 제거 크림이 효과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한다.

안다는 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건 여전히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알고 행해야 비로소 화장품 기업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최지현 화장품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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