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포스트 디셈버’에서 몸 치수를 재는 ‘채촌’을 해봤다. 박소현 디자이너는 “팔이 너무 길어 잘못 잰 줄 알았다”고 했다.
[esc]이유진 기자의 맞춤옷 체험기
재킷을 사기 위해 백화점이나 시장을 다녀보면 내 몸에 착 감기는 기본형 재킷 찾기가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평균 체형보다 팔은 길고 일자 몸매를 지닌 이유진 기자가 몸에 딱 맞고 원단 좋은 기본형 옷을 맞추기 위해 광장시장을 누볐다.
재킷을 사기 위해 백화점이나 시장을 다녀보면 내 몸에 착 감기는 기본형 재킷 찾기가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평균 체형보다 팔은 길고 일자 몸매를 지닌 이유진 기자가 몸에 딱 맞고 원단 좋은 기본형 옷을 맞추기 위해 광장시장을 누볐다.
셔츠를 안으로 넣어 입나요
다트는 등, 아니면 배?
칼라 단추는 감출까요, 내놓을까요
커프스는 라운드, 직선?
전문가의 질문이 쉼없이 이어진다
일단 내 몸의 특징을 알아보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포스트 디셈버’의 박소현(35) 대표에게 채촌(몸 치수를 재는 일)을 해봤다. 박 대표는 “팔이 굉장히 기네요” 했다. 나와 키가 비슷한 사람들은 보통 팔길이가 55㎝인데 나는 57㎝란다. “2㎝면 아주 큰 차이”라고 한다. 광장시장 바지 장인 최형배(62)씨는 엉덩이 둘레를 재더니 “힙이 없다”며 작업 지시서에 “힙 없음”이라고 적어넣었다.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니 “배도 없어요”라며 “배 없음”이라고 또 적어넣는다. “배나 엉덩이가 없으면 정장 바지가 슬림하게 빠진다”고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됐다. 결론은, 소년의 몸통에 침팬지 팔이다. 여성적인 옷이 내게 안 어울리는 이유를 알았다.
옷을 맞추면서 두가지 원칙만 세웠다. 예산을 초과하지 않을 것,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것. 산 지 10년이 넘은 낡은 원피스와 똑같은 디자인에 소매를 조금 늘리고, 남성복 같은 셔츠까지 두가지만 하기로 했다. 맞춤옷을 입을 땐 두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입고 싶은 디자인으로 할 것인지, 디자이너 창작품으로 맞춰 입을 것인지다. 값을 알아보니 디자이너숍의 맞춤은 가격이 꽤 나가는 경우가 많다. 지금 예산에 정답은 주부나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광장시장 쪽이다.
한 양장점을 찾았다. 이곳은 이른바 ‘강남 사모님들’ 사이에서 명품 패턴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줄이 길어 차례를 기다리는 데도 한시간 넘게 걸렸다. 원단을 사서 가져가기도 하지만, 매장의 원단 샘플을 고르면 알아서 옷을 맞춰주기도 한다. 미리 가져간 감색 원피스를 내밀었다. 점포의 실장은 가져간 옷을 살펴보곤 “이런 실루엣은 원단이 두배는 든다”고 했다. 원단 포함 원피스 한벌 맞추는 값이 에스피에이 브랜드 몇배가 될 정도로 비쌌지만 구경하던 아주머니들이 다들 “싸다”고 추임새를 넣는다. 이렇게 값나가는 여름옷을 사 입은 게 처음이라 망설여졌다. 그러나 안 하겠다고 말하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해 그냥 ‘지르기’로 했다. 뻘쭘하게 서서 치수를 재고 엉겁결에 계획에 없던 정장 재킷까지 충동구매를 했다. 벌써 예산을 넘어서서 옷값의 4분의 1가량 현금(선금)을 내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버스 차창에 머리를 박으며 돌아왔다.
일주일 뒤 시침질(가봉)을 하러 가는 건 조금 번거로웠다. 이렇게까지 정성들여 맞춰 입어야 하나 싶다. 원피스와 재킷 모두 한쪽 팔은 절반만 나왔다. 얼기설기 흰 실로 옷의 형태를 만들어 놓은 데다 조심스럽게 몸을 끼웠다. 실장은 시침핀을 꽂아 허리 다트를 더 넣어주고, 소매도 조금 더 짧게 조정한다. 얇은 여름 재킷을 원했지만 앞뒤 안감을 넣는 게 더 예쁠 거란다. 한편 구경꾼들은 검정 치마가 길다고 야단이다. 조금 짜증이 난다. 실장이 “점잖은 자리에 입고 갈 거래요”라고 하자 주위 아주머니들이 “아~” 하고 양해해준다.
예산은 넘겼지만 취재는 마저 해야겠기에 며칠 뒤 원단시장인 광장시장 동문직물부를 찾았다. 수입상들에게 원단을 주문하는 곳이 많지만 이탈리아까지 직접 날아가 ‘물건’을 해오는 가게도 있다. 고급 천이 많아 탤런트나 전직 정치인 등 유명인들도 즐겨 찾는다. 28년 경력의 티나(별칭·65)씨와 김영은(56)씨는 “이태리 브라운 섬머울 원단이 잘 나간다”며 보여줬다. 예쁘다. 원단을 좀 보고 돌아다녀선지 눈도 약간 생겼다. 다리 아픈 김에 권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예정에 없던 정장 바지 옷감을 사고 봉제전문가를 추천받아 맞췄다. 웬만한 보세옷보다 합리적인 가격이라며 애써 스스로 위로했다. 주변엔 인도 직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도 있다. 이명희(56)씨 점포의 자수 원단과 비즈 원단은 스카프나 블라우스를 주로 한단다. 품질 좋은 ‘에이(A)급’ 인도 직물이 꼼꼼해서 맘에 든다. 원단시장 구경은 매우 흥미롭지만 종종 ‘지름신’이 강림한다는 게 큰 문제다.
원래 계획했던 와이셔츠를 맞추러 중앙상우회 원단가게를 찾았다. 여긴 또 다른 세계다! 남자 와이셔츠 원단인데 색색깔의 천들이 너무 예쁘다. 면 100수(면의 조밀수를 나타내는 단위)의 흰색 원단 한감을 사곤 수도직물부로 갔다. 신사복 장인 이민석(49)씨는 맞춤으로 2011년 광장시장 시범점포 우수회원상을 받았다. “여성 와이셔츠는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단골손님과 함께 가선지 치수를 재줬다. “팔길이는 어때요? 셔츠는 안으로 넣어 입을 거예요, 빼 입을 거예요? 다트는 등 아니면 배? 칼라 단추는 감출까요? 밖으로 해요? 커프스는 라운드? 직선?” 쉼없이 물으며 꼼꼼하게 확인한다. 어차피 나 같은 ‘초짜’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가 이렇게 자세히 물어주는 게 고맙다. 원단부터 봉재, 심지어 이름자 이니셜까지 새긴 셔츠 한벌을 했다. 백화점 브랜드급 품질인데 값은 훨씬 싸다.
2주 만에 원피스와 재킷을 찾았다. 소매를 길게 해달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짧다. 실장은 “더 길게 하면 나이들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실루엣도 잘 살고 몸에도 딱 맞다. 셔츠와 바지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예쁘면서도 하루종일 정장을 입고 몸이 이렇게 편안하기는 처음이다. 가격면에서 원피스·재킷의 경우 비싼 감이 있지만 원단 좋은 맞춤옷은 기성복들이 제 수명을 다하는 몇년 뒤까지 제값을 하니 귀하게 손질하며 오래 입어야겠다.
그나저나 잦은 충동구매로 월급통장엔 구멍이 뻥 뚫렸다. 어차피 이런 스타일을 뒤지며 비슷한 옷을 수없이 사들였을 것이라고 주문을 걸며 자책을 멈췄다. 맞춤옷의 필수 덕목은 ‘지름신’과 주변의 ‘입방아’를 물리칠 줄 아는 용기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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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에서 맞춘 재킷과 원피스. 셔츠와 바지는 마감 직전 받아서 사진으로 남기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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