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우정집’의 메밀국죽.
[esc] 요리
강원도 휴가 여행길 가볼만한 ‘정선아리랑 5일장’
강원도 휴가 여행길 가볼만한 ‘정선아리랑 5일장’
정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밀국죽
해장으로 최고
곤드레, 곰취나물 등
시장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소는 강원도 정선아리랑시장 5일장. 여행객 ‘장먹을래’가 꼬불거리는 장터를 요리조리 걷는다. 잘 구운 문어발, 바삭하게 말린 곤드레나물, ‘치이익’ 소리 따라 익어가는 메밀배추전, 달콤한 수수부꾸미가 눈에 쏙 들어온다. 먹을거리가 넘쳐 미처 다 맛보기도 힘들다. 먹성 좋은 이들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만하다.
세상의 변하는 속도가 제아무리 빨라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고향의 맛이다. 휴가나 캠핑을 갈 때 근처의 전통시장에 들러 지역의 특산 먹거리를 찾거나 장을 보는 여행객이 많다. 자녀들과 희희낙락 웃음꽃 피우면서 장도 보고, 시장 별미도 맛본다.
정선아리랑시장(정선군 정선읍 봉양리)은 메밀전병과 메밀부침개의 왕국이다. 지난 2일 장터 골목마다 메밀배추전 지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70여개 음식점 대부분이 메밀전병과 메밀배추전, 메밀국수 등을 취급한다. 정선아리랑시장협동조합 이윤광(54) 이사장은 “(그 흔한) 갈비탕조차도 없다”며 “향토음식 특화시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사자는 약 270명. “3년 전부터 메밀음식전문점이 많이 늘었죠.” 종업원들은 메밀 박사들이다. 누구나 막힘없이 메밀의 기원부터 음식의 종류까지 줄줄 읊는다. 점포들은 메밀이 30%, 밀가루가 70%인 판매용 가루로 요리를 하는 곳과 직접 업장에서 메밀을 갈아 쓰는 집으로 나뉜다.
지역민들은 ‘대박집’과 ‘회동집’ 등이 갈아 쓴다고 말한다. ‘너의 메밀 빻는 소리가 들려’서 걸음을 멈출 집들이다. 여행객들은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마장초등학교 5학년 한승희양은 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오전 화암동굴(정선군 화암면 화암리)을 구경하고 정선시장에 왔다. “다양하고 신기해서 정말 재미있어요.” 다음 여행에서도 꼭 전통시장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휴가철을 맞아 몰린 인파를 헤치고 정선시장을 걷다 보면 지치기도 한다. 어디나 비슷해 보이는 메밀국수, 메밀배추전, 메밀전병이 질릴 때쯤 색다른 음식을 만나면 반갑다. 오만가지가 다 있는 전통시장의 매력이다. ‘메밀국죽’이 용케도 버티고 있었다.
메밀국죽은 전과 전병에 밀려 사라져가는 정선의 향토음식이다. 말린 메밀을 쪄서 된장 등을 푼 물에 넣고 끓이는 음식이다. 감자, 두부, 콩나물, 부추 등도 들어간다. 메밀국밥인 셈이다.
현재 시장 안에서 유일하게 메밀국죽을 만드는 ‘우정집’에 들어서자 단출한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식탁은 단 두 개. 약 33㎡(10평) 크기의 가게는 후덥지근하다. 변의열(52), 정경희(46) 부부가 주인이다. 경북 청송이 고향인 정씨는 부모가 강원도 사북에 터를 잡자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휴가를 맞아 사북에 왔다가 변씨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 “메밀국죽은 시어머니가 자주 끓여주셨어요.” 씹을 때마다 보톡스 주사라도 맞은 듯 탱탱한 메밀 알갱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듯 터진다. 가격은 8000원.
정선 사람들에게 메밀국죽은 최고의 해장국이자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배를 채우는 으뜸 요기였다. 이 이사장은 “전통음식인데 현대인들의 입맛과 잘 안 맞아 점점 사라져가요”라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박선주 박사는 “지금은 포장된 메밀 맛이 많다”며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메밀의 진정, 숨은 맛은 따로 있다”고 한다. 강원도의 주식이었던 메밀 연구차 정선아리랑시장을 찾았다가 메밀국죽을 맛보고 “그 맛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80% 이상이 산이다. 농경지의 비율이 10% 미만인 탓에 감자, 옥수수, 조, 고구마 등을 활용한 소박한 음식이 발달했다. 술마저도 감자와 옥수수가 재료였다. 메밀도 그중 하나다. 경작하는 데도 그다지 많은 일손이 필요 없는 메밀은 최근 봉평을 중심으로 가공업체가 늘고 있다.
변씨 부부는 강원도 성마령고개에 메밀밭이 있다. 국죽 재료는 그 밭에서 재배한 메밀을 쓴다고 한다. “중국산은 보들보들하고 우리 메밀 알갱이는 오돌오돌, 탱탱하죠.”
시장의 매력은 ‘메밀국죽’ 같은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는 것. 정선역 앞에 있는 ‘은혜식당’에도 메밀국죽이 있다. 주인 안석찬(66)씨가 아내와 함께 20년 넘게 운영하는 곳이다. 메밀국죽은 4000원. 차림표 가격이 시장보다 대략 반이다. ‘우정집’과 달리 얼큰하고 매콤하다. 마치 여수의 ‘자매식당’과 ‘7공주식당’ 같다. 자매식당은 된장국물 붕장어탕이고 7공주식당은 빨갛고 매운 붕장어탕이다. 정선이 고향인 안씨 부부는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 사이로 인정이 넘친다. 장터에 있는 ‘풍년쌀상회’에서 메밀을 사 쓴다. “사람들 많이 오는 것도 싫어요. 우리 두 노인네 감당할 만큼 하는 거예요.”
재래시장의 재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곤드레, 강원도산 감자, 옥수수, 곰취 등이 기다린다.
최근 상인조합은 ‘정선5일장 생황기막걸리’를 만들었다. 이 이사장은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100% 국내 쌀로 만들고 정선산 황기를 첨가했다”며 “시장 전체의 공동 수익을 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다. 1000㎖ 한 병에 2000원이다. 조합원들이 시장 마당에서 한잔 마셔보라고 소매를 잡아끈다. 장터와 잘 어울리는 새큼하고 달곰한 맛이다.
전국의 재래시장은 2012년 기준 1347개다. 여행지와 닿지 않는 시장은 없다. 관광지의 유명 맛집을 찾아 떠도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정선/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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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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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 ‘우정집’의 메밀전병.
강원도 정선아리랑시장 5일장.
강원도 정선군 ‘은혜식당’의 메밀국죽.
정선아리랑시장 5일장에서는 메밀배추전과 메밀전병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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