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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이 멍청아’ 슬로건 화끈하네

등록 2013-10-02 19:58수정 2013-10-03 14:14

김소민 제공
김소민 제공
[esc] 김소민의 타향 살이
독일 총선을 12일 앞둔 지난달 10일 밤 10시30분께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에 해괴한 선거방송이 떴다. 시작은 멀쩡했다. “다음은 노동과 법치주의, 동물 권리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정당’의 선거광고입니다.” 정당 이름이 ‘정당’이다. 뭔가 희뿌연 영상이 뜨는데 자세히 보면 남녀다. 2분 내내 그렇다. 좋단다. 흐느적거리는 라틴음악에 은근하게 ‘정당 정당 정당…’이라고만 읊조리는 남자 목소리가 흐른다. 카메라 위치도 안 바뀌고 편집도 없지만, 이렇게 집중해 선거방송을 본 건 내 인생에 처음이다. 마지막에 뜨는 자막은 이렇다.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들어줄 정당.” 이 ‘정당’의 가족정책을 반영한 것이란 설명이 붙는다.

이 광고엔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다. 좌우 안 가리고 있어 보이는 정치세력이라면 한번쯤 꼽아주는 사회문제가 고령화 아니겠나. 젊은 세대 부담은 늘어만 가는데 뾰족한 대책은 없다. 그러니까 다른 정당들이 점잖게 아무 성과도 없는 말잔치를 벌일 때 우리의 ‘정당’은 애를 만들겠다는 거다.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당’답다.

이 실천적인 정당의 정체는 뭔가. 한국으로 치면 딴지일보쯤 되는 잡지 <타이타닉>의 총수 마르틴 조네보른이 2004년 창당했다. 총선에 나선 건 이번이 2005년에 이어 두 번째다. 슬로건이 아주 명료하다. ‘메르켈 이 멍청아.’ 이런 슬로건은 밑도 끝도 없어야 제맛이다. 두 번째 슬로건은 ‘맥주가 결정한다’(Das Bier entscheidet 다스 비어 엔트샤이데트). 사회민주당의 슬로건이 ‘우리 함께 결정한다’(Das Wir entscheidet 다스 비어 엔트샤이데트)인데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벌인 말장난이다. 지적이다.

선거 공약도 화끈하다. 다른 정당들, 만날 말만 평등한 분배를 외치나? “저희를 밀어주신다면 독일 대부호 100명을 없애드리겠습니다.” 정책도 깔끔하다. 첫째 ‘게으름뱅이 쿼터’를 요구한다. 독일 기업의 임원 17%는 ‘자격을 갖춘 게으름뱅이’로 채우겠다. 그 자격이 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능력은 아니다. 서머타임을 폐지한다. 한 시간 더 자게. 독일 세금제도 아직도 덜 복잡하다. 슈퍼컴퓨터가 아니면 계산도 못하게 하자. 변호사들도 빠져나갈 구멍 못 찾게. 장벽 다시 쌓자. 그것도 독일을 다 둘러쳐버릴 거야. 세계화로부터 우리를 지키게…. 말이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은, 시에 가까운 정책들이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독일 연수중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독일 연수중
지난달 22일 총선날, 독일인 마르크는 선거용지 속 22번에 ‘정당’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정당’을 찍지 않았지만 그의 머리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정당’이란 글자를 보자마자 그 끈적끈적한 남자 목소리에 실려 나왔던 ‘정당 정당 정당’ 하는 노래를 연속 플레이 해대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보고 또 봤던 선거광고 아니던가. 그 노래의 중독성은 마약 수준이라 그날 청소를 하면서도 셔츠를 다리면서도 마르크의 입에선 ‘정당 정당 정당’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그리도 매혹적이었건만 ‘정당’의 득표율은 의회 진출에 필요한 5%는커녕 정확한 집계조차 필요 없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정당’은 패배했나? 시사주간지 <슈테른>의 온라인판은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실었다. “하품 나는 선거운동 기간, 그래도 당신 덕에 재미있었어.”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독일 연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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