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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담아낸 단 하나의 옷-노르딕 니트

등록 2013-11-27 20:16수정 2013-11-28 14:14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비가 그친 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카페든 백화점이든 주변이 온통 빨간 장식과 트리, 눈꽃무늬로 꾸며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두툼한 니트만큼 든든한데다,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게 위안을 주는 옷도 없다. 더욱이 울로 짠 눈꽃무늬 니트라면 따뜻한 겨울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라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눈꽃, 순록, 트리 등 겨울을 이토록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옷이 또 있을까? 흔히 이런 풍의 옷은 북유럽의 겨울을 연상시킨다는 의미에서 ‘노르딕’(Nordic) 혹은 ‘노위전’(Norwegian) 니트라는 말로 자주 불린다.

5년이 다 되어가는 사진의 니트는 추운 겨울,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다 들어간 빈티지숍에서 구매했다. 좋아하는 색깔의 조합인데다, 여러 마리의 순록과 마치 눈이 내리는 듯한 무늬라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절대 못 믿겠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던 때, 기계로 짠 니트를 손으로 짠 니트라고 속여 판 아저씨의 말을 믿었다.

노르딕 니트
노르딕 니트

이렇듯 겉모습은 대충 엇비슷한 노르딕풍의 니트라도 짜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울의 생산지로도 유명한 스코틀랜드로 가보자. 200년 전 북부 셰틀랜드 군도의 한 작은 섬, 페어아일(페어섬)에서는 가내수공업으로 니트를 만들었다. 발트해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니트는 원래 어부의 옷에서 출발했는데, 특색 있는 무늬를 보고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고도 한다. 오늘날 ‘페어아일 니트’라고 칭하는 눈꽃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의 니트가 여기서 비롯됐다. 그 뒤 가내수공업이 감소하면서 페어아일 니트는 주춤했다가 1910년을 지나면서 점차 인기를 얻었다. 대중적인 니트 패션의 한 유형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21년 시대의 멋쟁이라고 불리는 영국 윈저공이 입고 나서부터였다.

전통적인 방식인 손뜨개로도 비슷한 패턴의 니트를 만들 수 있지만, 내가 가진 니트는 자카르(자카드) 기계로 만들어졌다. 자카르 직기는 1804년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그 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힘입어 니트는 대중화할 수 있었다. 자카르는 무늬의 구멍을 뚫은 펀치카드를 만들고 이 카드를 기계에 넣으면 그 구멍 사이로 바늘이 움직이면서 니트를 떠나가는 방식이다. 이 원리를 기반으로 컴퓨터 자카르는 다양한 무늬의 니트를 만든다. 요즘은 제이피지 파일이나 일러스트레이션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바로 그림을 읽고 니트를 짠다. 전통적인 페어아일 니트는 뒷면에 짜이지 않은 색의 실들이 일자로 떠 있지만, 자카르 기계는 뒷면에 떠 있는 실까지 짜서 양면을 다 이용할 수 있는(리버서블) 원단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로 전보다 더 좋은 니트를 뽑아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해도 니트의 패턴이 얼마나 더 정교한지, 가벼운지, 빨리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그다지 열광하지 않는다.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니트의 재현을 주된 마케팅으로 삼는 브랜드도 많으니, 역시 중요한 건 기술보다는 옷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정서와 추억이 아닐까 한다. 나에게 2009년의 겨울을 담아낸 단 하나의 옷이라면 단연 눈꽃무늬 니트다. 올해 마지막 겨울이 지나가기

전, 좀더 꼼꼼한 눈으로 빈티지 니트 사냥에 나서야겠다. 옷장에 여러 개 담아두면 그나마 휑한 마음이라도 가실까 싶어서.

사진 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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