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현의 소통과 불통
요즘 말 잘못해서 크게 고생한 사람은 단연 현오석 경제부총리이다. 그는 1억건이 넘는 금융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감독 실패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종주먹을 들어 보였다. 해임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27일 사실상 ‘마지막 경고’를 받았다.
다른 한명은 임순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이다. 야당 몫으로 활동 중인 임 위원은 18일께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내용의 사진을 퍼나르기(리트위트)해 위원직에서 해촉되는 등 큰 곤욕을 치렀다.
임 위원이 퍼나르기한 트위트는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고 적힌 손팻말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이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원하는 내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두 사람 다 공직자로서 빈약한 영혼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임순혜 위원의 발언(사회관계망에 글을 쓰거나 퍼나르는 것도 발언이다)은 평소 진보나 개혁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정치의 발견>(후마니타스)에서 요즘 진보파의 말과 글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며 이렇게 말하는 게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상훈은 미국 진보파의 정신적 지주인 사울 알린스키가 왜 말년에 진보적 활동가들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데 온 힘을 집중했는지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1930년대 시카고에서 빈민운동을 주도한 알린스키는 젊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감화를 준 인물이다.
알린스키는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진보를 경멸했다. 누군가를 향해 ‘돼지’나 ‘파시스트’라고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활동방식은 속은 시원하겠지만 듣는 사람에게 ‘운동권이 원래 그렇지’ 하는 식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개혁이든 진보든 소수의 동아리 활동으로 고립되게 된다. 알린스키는 진보적 활동가라면 일반 대중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늘 성찰해야 하며 “상대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진보의 언어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진보는 늘 보수파의 언어폭력에 시달려 왔다. ‘종북’이나 ‘빨갱이’니 하는 말들이 소통의 셔터를 팍 내려버리는 폭력적 언어들이다. 그렇다고 비슷한 폭력으로 그런 몰지각함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 기울어진 언론 지형 등 단순히 계산해 봐도 어림없는 싸움판에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날카로운 풍자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것도 아니면서 ‘쌍욕’을 진보의 언어라며 늘어놓지는 말아야 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