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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면서 즐기는 한잔의 재미!

등록 2014-02-19 19:57수정 2014-02-20 14:34

탁구 치며 술 마시는 이태원 ‘서울 핑퐁펍’.
탁구 치며 술 마시는 이태원 ‘서울 핑퐁펍’.
[매거진 esc] 라이프
클럽처럼 흥겹게 야간 볼링 즐기는 볼링펍 인기 이어 술 마시며 탁구 치는 핑퐁펍 등장
저녁 7시, 서울 홍대 앞 태화볼링장이 변신하는 시간이다. 레인 맨 끝 쪽 흰색 스크린이 스르륵 올라가더니 150인치 프로젝터 화면이 내려온다. 10개의 핀 뒤쪽 화면에서 댄스그룹이 춤추는 장면이 상영되기 시작할 무렵, 형광등이 꺼지고 레인마다 야광등이 들어왔다. 천장에서 레이저 조명이 뿜어대는 빛에 맞추어 클럽 음악이 흘러나온다. 볼링을 치는 사람들이 입은 흰색 옷은 밤의 조명 앞에서 푸른 형광빛을 띤다. 공을 들고 투구 자세를 준비하던 볼러들의 스텝이 빨라졌다. 스트라이크! 오늘은 운이 좋다. 도움닫기 지점으로 돌아온 한 볼러가 음악에 맞춰 춤추듯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같이 볼링을 치러 나온 친구들도 뛰어올랐다. 환호성은 금세 음악에 묻혀버렸다. 밤의 볼링장에서 축하 세리머니는 춤이다.

밤에는 록볼링장으로 운영하는 서교동 ‘태화볼링장’.
밤에는 록볼링장으로 운영하는 서교동 ‘태화볼링장’.

일렉트로닉 음악과 함께 ‘볼링펍’

요즘 볼링장은 밤이면 클럽 같은 볼링펍으로 변한다. 원조는 서울 압구정에 있는 ‘피에로 스트라이크’다. 지난 14일 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시작되자 피에로 스트라이크 12개의 볼링 레인이 금세 차버렸다.

넓이 1980㎡, 350석 규모의 너른 매장 한편에는 볼링 레인이, 그 옆에는 당구대 3개와 하키 게임대도 놓여 있다. 어두운 실내엔 야광등만이 레인을 따라 빛나고 있었다. 일렉트로닉 음악이 귓전을 때리는 것은 다른 볼링장과 마찬가지지만 좀더 부드럽고 섬세한 곡들이 많았다. 디제이 부스를 레인 옆에 차려 볼링 치는 사람이 클럽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5번, 6번, 가운데 레인에서는 막 클럽에서 빠져나온 듯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을 신은 여자들이 볼링을 치고 있었다. 공을 잡으면서부터 흔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치러 나갈 땐 진지하다. 그러다 핀이 와르르 넘어지기라도 하면 공이 굴러가는 길을 따라 춤추며 돌아온다. 바로 그 옆 레인에서는 양복을 입은 남자 6명이 볼링을 치고 있었다. 근처 회사에서 일하며 주로 주말엔 클럽을 찾는다는 그들은 “밤새 춤추고 뻐꾸기 날리는 것(연애 거는 것)도 식상하다. 차라리 운동하고 땀 빼는 것이 좋다”고 볼링펍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비트가 빨라질 무렵 연달아 스트라이크가 터졌다. 그중 한명이 호기롭게 맥주를 돌렸다. 음주 볼링은 금기라지만 볼링펍에선 물 대신 맥주를 마신다.

밤새 춤추고 연애거는 것보다
짧은 시간 땀빼며 즐기는 게 좋아
직장인들 볼링펍 선호 이유
경리단길 문연 서울핑퐁펍
70~80년대 복고적 분위기 물씬


2009년 12월 대형 스포츠펍을 표방하며 문을 연 이곳은 단박에 새로운 놀이공간으로 떴다. 그 뒤 서울 이태원, 홍대 앞을 이어 지방에도 야간 볼링장이 문을 열었다. 지금은 어림잡아 서울에서만 6~7곳이 밤에는 야광등을 켠 록볼링장, 맥주도 함께 파는 볼링펍으로 성업중이다. 한때는 국민스포츠였다가 잊혀가던 사양스포츠 볼링이 야광 볼링장을 따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태화볼링장은 1996년 홍대 앞에 문을 열었지만 주인인 장아무개씨 말을 들어보면 “개업 뒤 3~4년부터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그러다 2012년 3월 야광 볼링장을 시작하면서 매출이 두배 넘게 늘었단다. “전에는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운영했는데 주로 볼링클럽 회원들이 오고, 가끔 주부나 청소년들도 왔다. 낮에는 손님이 좀 있었는데 밤이 되면 뜸했다. 그런데 야광 볼링장이 되면서 새벽까지 레인이 북적인다. 20~40대 직장인들이 온다. 주말 밤에는 10팀 정도는 항상 차례를 기다린다”고도 했다. 주말엔 새벽 4시까지 문을 여는데, 낮에는 전처럼 스포츠클럽 회원들이 와서 볼링을 치고 밤에는 홍대 앞 거리에서 놀던 사람들이 온다. 그렇다고 클럽처럼 복장이나 연령을 따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압구정 피에로 스트라이크 최우철 매니저는 “볼링펍의 장점 중 하나가 연령이나 복장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주말엔 대부분 클러버들이 클럽 대기실처럼 들르지만 트레이닝복을 입고 오는 사람들도 꽤 볼 수 있다. 프로 볼링 선수들도 오기 때문에 경기에 방해가 될까봐 강한 조명을 쓰지는 않는다. 연예인들도 많이 온다. 다른 술집과는 달리 연예인들이 보통사람들처럼 볼링 치고 스스럼없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녀시대도 왔다. 이곳에 온 아이돌이 오지 않은 아이돌보다 많을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펍 붐을 주도해온 압구정 ‘피에로 스트라이크’.
스포츠펍 붐을 주도해온 압구정 ‘피에로 스트라이크’.

칵테일 마시며 탁구를 ‘핑퐁펍’

자정을 넘긴 시각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서울 핑퐁펍’은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을 맞고 있었다. 저녁 7시에 문을 열어 새벽 3시에 닫는 이곳은 탁구를 치며 술을 마시는 스포츠펍이다. 115㎡ 정도의 작은 매장을 꽉 채운 탁구대 두개에선 경기에 불이 붙었다. 탁구 치는 손님들은 경기 중간중간 블루핑이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탁구대 옆에서 들이켰다. 바에 둘러앉은 손님들은 체리퐁이라는 이름의 붉은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압구정 피에로 스트라이크가 미국의 ‘러키 스트라이크’라는 볼링 주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처럼 2013년 10월 문을 연 서울 핑퐁펍은 영국 런던에 있는 탁구 치는 술집을 모티브로 삼았다. 칵테일과 맥주, 감자칩, 핫도그 등 미국식 안주를 내는 매장은 탁구가 번성했던 1970~80년대의 복고적 느낌이다. 모델 도상우씨와 친구 4명이 공동 창업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패션 브랜드나 편집숍들이 연달아 이곳에서 행사를 열면서 눈에 띄는 장소가 됐다. 주말 밤엔 탁구대가 비워지기를 기다리는 줄이 문밖까지 길게 이어진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공동 경영자 중 한명인 민필기(30)씨는 “볼링펍이 한창 유행인데 볼링 치면서 맥주 마시는 곳은 가게가 넓어야 하니까 작은 가게에서 하려면 탁구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국의 스포츠펍은 주로 맥주를 마시면서 다 함께 티브이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포켓볼 당구대나 다트판 정도를 갖춘 스포츠펍은 꽤 있었지만 요즘엔 볼링이나 탁구까지 직접 게임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스포츠펍이 뜨고 있는 것이다. 민씨는 “새로운 놀이문화를 들여왔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생소한 듯하다. 처음 만난 손님들끼리도 스스럼없이 탁구 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바 모양 테이블로 가게를 둘렀다. 외국인들은 쉽게 섞이는데 이런 구조를 낯설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 같이 어울려서 놀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서울 핑퐁펍에선 1년에 4번씩 탁구대회를 열 예정이다. 탁구대 위에 맥주잔을 깔아놓고 상대의 맥주잔에 탁구공을 넣으면 맥주를 마시는 ‘비어퐁 게임’을 하는 손님들이나 프로 선수를 능가하는 실력을 지닌 아마추어 탁구 선수 등 서울 핑퐁펍을 찾는 손님은 다양했다. 한쪽 테이블에서 탁구를 치던 외국인들은 짧은 게임이 끝나자 선 채로 맥주를 마시고 나갔다.

폭탄주 대신 운동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는 회식문화 대신 게임을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 게임만 치고 땀에 젖어 자리를 떴다. 스포츠펍의 술자리는 짧고도 강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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