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우기는 데 금메달 우리 형

등록 2014-03-12 19:58수정 2014-03-13 10:22

소설가 백가흠.
소설가 백가흠.
[매거진 esc] 좋아서 하는 인터뷰
※시인 이우성이 쓰는 철들면 안 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좋아서 하는 인터뷰’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헤밍웨이가 66살에 권총으로 자살했잖아. 내가 볼 때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던 것 같아. 언제부턴가 소설이 안 써져서, 그것 때문에 미쳐간 거야.” 내가 아는 한 소설가가 말했다. 어쩌라고? 그래서 죽겠다고? 내가 아는 한 소설가는 문학상을 한 개도 못 받았다. 그 작가 정도의 지명도를 갖고 있는 작가 중에 문학상을 한 개도 못 받은 작가는 드물지, 아마. 그 작가가 이 글을 보면 나를 때릴 수도 있다. “야, 이 자식아, 그걸 뭐 광고까지 하고 지랄이야.” 하지만 나는 그가 문학상을 못 받는 건 쓸데없이 고집이 세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 문학상이란 것도 음… 적당히 착해야 받는 거 아닌가요? 물론 소설을 잘 써야겠지요, 어르신. 여기서 어르신은 심사위원 어르신을 말하는데 나는 그분들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나도 문학상을 받기를 희망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으면 인상 찌푸릴 어른이 계시겠지만 문학은 우기는 거다. 우기다가 무시당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절치부심할 때 좋은 문학이 탄생한다. 네가 해봤냐고 따지면 할 말 없다. 나도 우기는 거다. 그리고 우기는 걸로는 그 형, 그러니까 그 소설가도 금메달이다. 요즘은 2등과 3등도 기억하는 세상인데 굳이 금메달이다. 작년 겨울에 그 형의 새 장편 소설이 출간됐다. 출판사 주최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고 내가 사회를 봤다. 예전에도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여러 번 갔다 왔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지루한 시간은 우주에서 사라져야 해,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은 소설만 써야 한다. 왜냐면 그 혹은 그녀의 말은 소설보다 재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형이 독자와 만나는 시간이니까 엄청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음… 독자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뭐, 날이 추웠으니까. 그리고 뭐, 소설가가 연예인은 아니니까. 그래서 난 더 사명감에 불탔다. 웃기자! 어떻게든 웃기자! 그래서 외모와 품격에 안 맞게 실없는 농담도 했다. 그런데, 아, 이거 참, 우리 소설가 형이 찬물을 끼얹었다.

“소설은 말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형께선 소설원론 시간에나 들을 얘기를 힘없는 말투로 늘어놓았다. 내가 화가 난 건, 요즘은 연세 많은 교수님도 그런 식으로 따분하게 수업을 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한 번 우주에서 사라져야 할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몇 달 동안 그날을 생각했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생각할 때마다 자책한다. 내가 나빴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대체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형은.

하지만 그날, 그 시간이 의미 없이 증발해버린 건 아니다. 그 형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지만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는 아니었다. 물론 이건 소설에 관한 얘기다. 그런데 그날, 그 시간에 그 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작가와의 대화 중에 했던 지루하고 아름다운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이 소설책이 생각보다 안 팔려요. 출판사에 민망합니다. 책으로 묶기 전에 몇몇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지금은 이 소설이 이 정도로 평가받지만 언젠가 더 좋은 소설로 평가받을 날이 올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이 소설을 써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쓸 수 있는 것들이 생겼어요. 저는 믿어요.” 이렇게 적어봤자 안 믿겠지만 형의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난다.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저 위에 적었듯 문학은 우기는 것이다. 남들이야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믿든, 나는 이거예요, 이게 내 거고, 이거 나쁜 거 아니에요, 라고 고집 좀 부려보는 거, 멋지지 않아? 안 우길 거면 문학을 왜 해! 그게 왼쪽과 오른쪽밖에 모르는 이 땅의 아저씨들과 키보드로 사람 욕이나 하는 꼬마들보다는 멋지지 않으냐고? 형이 권총을 드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래서 나는 이 형이 좋고, 이 형 소설이 좋다. 이 형의 이름은 백가흠이다. 언젠가 더 굉장하게 평가받을 소설은 <향>이다.

이우성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