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아픈 마음 보듬는 사각 창과의 대화

등록 2014-04-23 19:49수정 2014-04-24 20:39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사진으로 치유하기
카메라는 힘이 세다. 날카로운 진실의 순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깊이 숨겨둔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임종진 사진가는 십년 전부터 상처입은 이들과 카메라를 들고
마음에 고여 있는 아픔을 퍼내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나랑 같이 있다가 죽은 사람들, 그 영령들 앞에서는 내가 지금껏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한데. 내가 과연 봄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해도 되나, 그런 걸 사진으로 찍고 그래도 되나 싶어.”

늘 시작이 어려웠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기도 전에 사람들은 “죄스럽다”며 망설였다. 30년 전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이들이 그러했고 중학생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비도 그랬다. 자신만의 감옥에 갇힌 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진 찍기, 아니 평범한 일상 그 자체를 자꾸만 밀어냈다.

그런 이들에게 이제 함께 사진을 찍어보자고 권하는 이가 있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다. 2년 전 ‘사진을 활용하는 1인 비정부기구(NGO)’를 표방하는 달팽이사진골방을 출범한 그는 ‘사진치유’란 말이 낯설던 2005년부터 관련 강좌를 진행해왔다. 현재 한국사진치료학회 이사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부터 말기 유방암 환자, 아들을 잃은 아버지, 5·18 민주화운동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붙잡혀 고문을 당한 78살 노인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사진은 바로 그 순간
대상과 직면하는 도구이니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의 시작
지난해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1년간 진행한 치유사진수업
결과물 5월 아트선재 전시

처음은 우연이었다. 2005년 경기도 수원시정신보건센터에서 후천적 정신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부탁해왔다. <한겨레> 사진기자로 일하던 임 대표가 잠시 휴직을 했던 때였다. 정신보건센터의 사회복지사가 임 대표의 사진 강의를 우연히 접한 뒤 ‘환자들을 위한 강좌’를 제안해왔다.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사진은 바로 그 순간, 대상과 직면하는 도구이니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 강좌는 5명과 함께했다. 의대 본과 4학년생, 이른바 ‘명문대’ 국문학도,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한 여성 등이 포함된, 어떤 시선으로 보면 ‘잘나가던’ 20~30대 젊은 환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세상과 담을 쌓은 상태였다. 극심한 우울증, 조울증 등에 시달리며 “네”라는 대답 한마디를 하기도 힘들어했다. 6개월 과정이 끝나갈 무렵 이들이 찍은 사진은 임 대표에게 감동을 줬다. 육교 밑 어두운 그늘 아래 서서 바깥쪽의 빛을 찍은 사진, 텃밭으로 향한 쪽문을 찍은 사진…. 마침내 그들은 “저기로 가고 싶다”고 표현을 했다.

그들의 모습은 임 대표를 자극했다. 당시 그 역시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나”라는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사진기자의 신분으로 달려갔던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이라크 전쟁터 등은 그의 마음속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잔혹한 현장에서 돌아온 뒤 일상 업무를 할 때면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2005년 사진치유 강좌를 마친 이듬해 회사를 그만뒀다. 사진기자로 일한 12년 동안 자신이 찍어온 사진을 찬찬히 정리해봤다. 대상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있는 사진이 너무 많았다. 빈곤, 장애, 질병, 인종 문제 등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상황을 부각하느라 그들의 고통만을 전면에 꺼내든 사진이었다. “이제 타인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증명하는 사진을 찍자”고 다짐했다. 인도, 캄보디아, 티베트, 네팔, 이라크 등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기록해 2008년 펴낸 <천만 개의 사람꽃>은 그 결과물이었다.

‘사진치유’에 대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당시에도 사진치유 관련 강좌를 여럿 진행하고 있었지만 ‘임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이론’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현재 한국사진치료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강좌를 통해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달팽이사진골방’을 출범해 ‘국내외 낮은 시선 아래 놓인 이들의 삶의 가치를 찾는 사진 작업, 캄보디아 내 도시빈민촌·유치원 지원, 정신장애 및 내·외형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사진치료 수업’ 등을 목표로 세웠다.

지난해부터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요청으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이들과 사진으로 치유하기에 나섰다. “87학번, 소위 386세대로서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정말 제대로 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50대부터 70대까지 시민군으로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이들, 쫓기고 고문당한 이들, 33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그 당시를 살며 아파하는 이들 9명과의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늘 아슬아슬했다.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껴안고 사는 이들은 “당신이 광주를 아느냐”며 때때로 그에게 날을 세웠다.

5·18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삶 속에서 그들은 지쳐 있었다. 자기 상처를 스스로 외면하며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럴수록 가까운 관계조차 파괴됐고 삶은 피폐해졌다. 그런 그들에게 임 대표는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그들에게 상처를 줬던 바로 그곳으로. 33년이 지났으니 이제 가보자고 했다.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왼쪽 사진) 그가 찍은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참여자들의 사진 작업 모습.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왼쪽 사진) 그가 찍은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참여자들의 사진 작업 모습.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왼쪽 사진) 그가 찍은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참여자들의 사진 작업 모습.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왼쪽 사진) 그가 찍은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참여자들의 사진 작업 모습.

지난해 2월 수강생들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갔다. 시민군이 끝까지 남아 있던, 이제는 부분적으로 뜯어내고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중인 도청부터 시청 앞 전일빌딩까지 샅샅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곳에서 수강생들은 두려움의 민낯을 드러냈다. 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혔던 전일빌딩 계단 앞에서 황의수(61)씨는 카메라를 똑바로 들지 못했다. 5·18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감옥 풍경 앞에서도 앵글이 기울어졌다.

임 대표는 “무엇이 됐든 자신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도 찍어보라”고 권했다. 그 말에 수강생들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 숨진 영령들에게 미안한데 내가 과연 아름다운 것 아름답다 해도 되냐”고 물었다. 임 대표는 “괜찮다. 당신이 살아남았기에 당시를 증언할 수 있고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자기를 치유해갔다. 이종우(73)씨는 계엄군에게 구타당한 뒤 정신을 잃은 자신을 누군가 끌어다놨던 자리에 화단이 생겼다며 꽃 사진을 찍었다. 어린아이의 주검을 목격했던 골목 앞에서 김중현(78)씨는 소주 한 잔을 따라놓고 제를 지냈다. 상처가 깃든 장소를 직시하지 못했던 이들은 두번, 세번 그곳을 찾아가며 노력 끝에 반듯한 앵글을 완성했다. 계단 앞에 제대로 서지 못하던 황씨조차 “이제는 시민군이던 내가 당시 전일빌딩의 문을 빼꼼히 열고 계엄군을 바라보던 각도, 계엄군이 나를 바라보던 각도에서 각각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1년 동안 이들이 작업한 결과물은 다음달 9일부터 2주 동안 서울 종로구의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회 제목은 ‘오월 광주 치유사진전­기억의 회복’이다. 서울에 이어 대구, 부산에서도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임 대표는 “고통 속에 있는 이에게 ‘아이고, 어떻게 사냐’는 식의 동정을 건네거나 기념사진이나 찍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런 위로가 안 된다”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달팽이사진골방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