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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쓰고 열매는 새콤달콤하다

등록 2014-04-30 19:46수정 2014-05-01 15:55

산딸기와인식초인 ‘산애초’.
산딸기와인식초인 ‘산애초’.
[매거진 esc] 요리
4대강 사업으로 애써 가꾼 산딸기 유기농 농장 포기한 뒤 ‘산딸기 와인 식초’ 개발자로 성공한 최석용·허정화 부부
김해시 상동면 묵방리 산100번지. ‘산딸기닷컴’ 농장을 찾아가는 길은 구불구불 에스(S)자다. 강원도 고갯길이 “형님!” 하고 모실 정도다. 햇볕을 받아 미남이 된 최석용(51)씨가 반갑게 맞는다. 그의 곁에 아내 허정화(51)씨가 서 있다. “우리 산딸기 잘 자라지예.” 정겨운 최씨의 인사말이 미소를 부른다. 하늘과 닿을 듯 높다란 산자락에는 하얀 산딸기 꽃이 피고 있다. “6월에는 빨간 산딸기가 달릴 겁니다.”

프랑스나 미국산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 산딸기와인
수익금으로 식초 개발
높은 가격 수매로
좋은 재료 확보

지금의 터가 본래 그의 산딸기농장은 아니었다. 2년 전 이곳으로 이사와 작년에야 겨우 첫 수확을 봤다. “우압니꺼. 이사해야지예.”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 있던 그의 농장이 4대강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부부는 졸지에 10년간 땀 흘려 만든 옥토를 버려야 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 재배로만 산딸기를 수확했었다.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산딸기나무에 십전대보탕도 뿌렸다. 애지중지한 혈육과 다름없는 땅이었다. 부부는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산딸기와인과 제조 설비를 들고 고향 매리를 떠나 묵방리로 왔다. “(이사할 농장 터를 찾아) 많이 다녔어요. 친환경적인 데를 찾았지예. 여기 흙이 좋아예. 배수가 잘되고 참나무단지가 있는 곳이고, 산딸기농장들도 많고.” 과거 그의 산딸기와인은 인기가 좋았다. 전문가들은 프랑스나 미국산 포도와인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했다. 2008년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그의 산딸기와인을 맛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존경합니다. 성공 바랍니다’란 글도 남겼다. 그 인연으로 산딸기와인은 현재 봉하마을에도 납품한다. 그가 소유한 땅은 총 5만6198㎡(1만7000평)로 그중에서 농지는 9917㎡(3000평) 정도다. 가파른 산자락을 포함한 거친 땅을 개간했다.

김해시 상동면 묵방리에 있는 최석용씨의 농장 ‘산딸기닷컴’.
김해시 상동면 묵방리에 있는 최석용씨의 농장 ‘산딸기닷컴’.
허씨는 “어렵다가도 뚫고 나갈 방법이 생기고, 또 어렵다가도 또 길이 생겨예”라고 희망을 말한다. 작년에는 기쁜 소식이 이들 부부에게 날아들었다. 산딸기와인이 국가가 인증하는 ‘품질인증서’를 받은 것.

이들이 요즘 온 정성을 쏟아붓는 것은 산딸기와인식초다. 허씨의 거친 손마디가 건넨 산딸기와인식초는 새콤달콤하다. 천연발효 식초다. 식초의 효능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바. “매실과 섞었어예. 요구르트와 같이 먹어도 좋아예. 여자들 있잖아예, 변비 쑥 들어갑니다.”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산딸기와인식초는 와인을 만들다 생각난 최씨의 아이디어였다. 와인을 병입하지 않고 상온에 두면 발효가 진행된다. 산딸기와 와인판매 수익금은 모두 식초개발비로 들어갔다. 남편 최씨가 작정하면 아내 허씨는 못 말린다. “빚더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예. 살림방에서 1년은 식초병을 끌어안고 잤어요. 머리맡에 두고 자식처럼 매달렸죠.” 아내의 투정이다. 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원하는 맛의 식초가 아니었다. 최씨는 “계속 이상발효가 일어나고 여과를 아무리 해도 찌꺼기가 남았어요”라고 말한다. 허씨는 “맛이 멍청한 거예요”라고 거든다. 해결책을 찾아 헤매던 그에게 조언자가 나타났다. 경상대 식품공학과 류충호 교수였다. 최씨의 스승이다. 현재 최씨는 경상대 식품공학과 석박사과정 중이다. “교수님 아니었으면 정말 어찌 됐을지 몰라요. 늘 감사하죠.” 류 교수는 최씨의 실패한 와인식초를 가져가 여러번에 걸쳐 실험을 했다. 마침내 그가 산딸기와인식초 개발에 딱 맞는 미생물을 찾아냈다. 류 교수가 배양한 미생물이 투입되자 시큼하고 뒷맛이 향긋한 베리 향의 식초가 탄생했다.

최석용(왼쪽)씨와 그의 아내 허정화씨
최석용(왼쪽)씨와 그의 아내 허정화씨
드디어 2010년 말에 첫 성공을 거뒀다. 부부는 3년 숙성시켜 작년에 첫 시판제품을 세상에 내놨다. “스티커도 몇천개씩 만들어야 하고, 병도 그렇고, 차도 낡았고, 말도 마세요.” 아내의 투정에 최씨가 “이 사람이! 참! 별소리를” 하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하지만 허씨는 “와인은 어찌 보면 알코올이잖아요, 식초는 건강에 좋은 거고, 평생 할 만한 거 하자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죠. 천연발효 식초 공부도 같이 하는데 좋더라고요”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허씨의 식초 자랑을 듣다 보면 당장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욕심이 난다. “피로회복에 참 좋아요. 지친 아빠나, 제가 먹어보니 갱년기 여자들에게 특히 좋더라고요. 육식 좋아하고 이미 몸이 산성화된 이에게 이만한 게 없어요.” 부부의 자녀 3명은 산딸기와인식초를 섞은 초고추장을 즐겨 먹는다. “늦둥이 초등학생인 막내까지 쓱쓱 잘 비벼 먹어요.” 허씨는 말을 잇는다. “샐러드나 여러 가지 요리에 살짝만 뿌려도 감칠맛이 배가 돼요.”

4대강 사업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동면 매리의 농장 시절 숙확한 산딸기.
4대강 사업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동면 매리의 농장 시절 숙확한 산딸기.
판매제품이 나왔지만 잘 팔리지는 않았다. 와인박람회를 포함한 각종 식품박람회를 쫓아다녔다. 1년에 10차례가 넘는다. 서울시 광장에서 열린 직거래장터에서도 산딸기와인식초를 선보였다. 요즘은 조금씩 입소문이 나 주문이 몰려온다. 한 병(500㎖)에 2만7000원.

6월 중순이면 인근의 산딸기농장 주인들이 그의 집 앞에 출하된 딸기를 놓고 간다. 허씨는 “6월 넘어 출하가 시작되는데 20여일 동안이 집중 출하 시기예요. 그때는 가격이 떨어져요. 남편이 처음 가격대로 다 수매해주니깐 갖다 놓는 거예요”라며 속상한 표정을 짓자 최씨는 “농부들은 가격을 제대로 쳐주면 산딸기도 깨끗이 씻고, 질 좋은 거 갖다줍니다”라고 한다. 와인과 식초의 재료다. 인근 농가와의 상생은 그의 철학이다.

그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 있다. 김해시는 내년께 경전선 폐철도를 활용해 레일바이크(왕복 3㎞), 와인터널(500m), 낙동철교 왕복(2㎞) 등을 연결한 관광레저시설을 열 계획이다. 그 와인터널에 작년에 개발한 스위트와인까지 포함한 자신의 산딸기와인 2종과 식초가 전시되고 판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농장도 그의 꿈이다. 현재 그는 ‘선도농가와 농고생 간 멘토링 교육과정’과 귀농민과 농부들을 상대로 한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6월에 2주간 40여명의 농고생들의 교육이 잡혀 있다. 그는 산딸기와인 생산 등을 인정받아 2007년에 신지식농업인 222호로 지정된 바 있다. “어려움의 끝자락에 길이 보였다.” 부부의 말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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