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차려두고 ‘세상과 소통하는 가구’를 만드는 변석호 작가.
[매거진 esc] 스타일
나무가구에서 나무 교육까지…젊은 목공예 작가 변석호씨의 고민과 미래
나와 나무, 나와 나의 대면
하나의 결과물로 가구가 아닌
소통의 과정 담은
동적인 무언가가 되었으면
나무가구에서 나무 교육까지…젊은 목공예 작가 변석호씨의 고민과 미래
나와 나무, 나와 나의 대면
하나의 결과물로 가구가 아닌
소통의 과정 담은
동적인 무언가가 되었으면
“동네를 지나가는데 젊은이가 열심히 나무로 뭔가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가까이 가 봤더니 가구 공방이었어요. 젊은 사람이 스스로 깨우쳐가며 나무를 통해 자기 세계를 만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가구를 살펴보니 색깔 하나, 서랍 하나도 평범해 보이는 것이 없더군요. 사람이 좋아 가구를 구입했고 가구를 매개로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동화 작가 박정희씨는 변석호(31) 작가가 대학을 갓 졸업해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첫 작업실을 꾸렸던 2006년에 그를 만났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26㎡(8평) 남짓한 작업실에 둥지를 튼 변 작가는 당시 하루 종일 나무와 함께했다. “대학에서 교수님을 따라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해본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나무를 만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요령을 피울 여유가 없었다.
호텔리어, 카페 운영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이창연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에디터도 이 ‘초보 작가’에게 가구를 주문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집의 그릇장과 식탁, 책장, 침대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서촌 카페 ‘고희’의 의자들까지 맡겼다. 이 에디터는 변 작가의 작품이 “디테일이 섬세하게 살아 있고 스타일이 좋다”고 평가한다.
지난 2일 이 젊은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청운동의 좁은 작업실, 종암동의 지하 작업실을 거쳐 2년 전 그는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 컨테이너 창고를 하나 빌려 작업실로 꾸몄다. 농지에 둘러싸여 조용히 서 있는 창고 앞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니 5월 햇살에 바싹 마른 흙이 폴폴 먼지를 일으켰다. 활짝 열려 있는 건물 입구로 헐렁한 셔츠를 입은 작가가 걸어 나왔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컨테이너 작업실에는 세 명의 젊은 작가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변 작가의 후배인 심희규(28)씨는 지난 2년 동안 그와 함께 작업실을 꾸린 이다. 공업디자이너 이민엽(33)씨는 최근 들어 변 작가와 함께 나무 조명을 연구하고 있다. 각종 목공 재료들과 공구들로 가득 찬 컨테이너 안에서 젊은 작가들은 함께 밥을 먹고 나무를 만지고 나무 이야기를 하며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전동 자전거 한 대가 세 사람의 교통수단이다.
시골 마을 작업실이라니, 선선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고민은 치열했다.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그는 스승을 따라 명품 브랜드 매장을 꾸미는 등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팔리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결국 내 작품은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슬럼프까지 왔다. 작업을 멈추고 부모님 집에 돌아가 텔레비전만 내처 보다가 골판지로 책상을 만들어 쓰는 형편이 어려운 여고생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그길로 방송사에 연락해 그 아이만을 위한 책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래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나무 책상, 수납이 많이 되는 책상, 책상 위쪽 수납장 바깥쪽에 칠판 페인트를 칠해 메모도 가능한 책상…. 아이를 위한 책상을 만들고 훗날 아이가 책상을 사용하는 모습까지 보고 나니 가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서서히 정리됐다.
“나무를 만질 때면 수행하는 느낌이에요. 조금만 힘을 더 줘도 깨져버리는 속성상 나무는 살살 달래가며 깎고 자르고 해야 합니다. 나와 나무, 그리고 나와 나의 대면인 셈이죠.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가구가 그저 하나의 결과물, 결정체가 아닌 소통의 과정을 담은 동적인 무언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학창 시절 조형대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던 그는 치솟는 등록금에도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에는 무관심한 학생들을 보며 ‘소통’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하는 사람만 하는 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근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도 전사회적으로 소통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소통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가 추구하는 가구 스타일은 ‘낡고 반듯한 상자’의 느낌이다. 고풍스러움과 간결함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집착이 심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는 ‘디테일을 중시’한다. 그가 만들어 사용하는 가죽 담배 케이스에는 세밀한 박음질이 돋보인다. 날렵한 회오리 모양의 조각 작품은 그가 칼만으로 나무를 얼마나 얇게 깎아낼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한 결과물이다.
‘나무 교육’은 그에게 ‘세상과의 소통’이란 고민을 풀어나갈 하나의 실마리다. 2년 전부터 우연히 ‘발도르프 교육’을 지향하는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나무 수업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업 전체를 예술 활동으로 구성해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의 발달을 도모하는 방식인 발도르프 교육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올해는 초등학교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목공 특강도 맡았다.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 나무 자동차를 만들도록 도와주고, 결과물을 선물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나니 보람이 정말 크더라고요. 나의 노동이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되새겨봤고요. 아이들과 수업도 하고 또 그 아이들을 위한 탁자와 의자도 만들어 주니 혼자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소통한다는 느낌이 충만하게 들었습니다.”
나무를 만진 지 6년. 그의 작품 세계가 조금씩 만들어져 간다. 올해는 그동안의 작품을 모아 개인전을 여는 것이 목표다. “초기 작품들을 보면 그냥 나무로 뚝딱거린 수준이 아닌가 싶어 부끄러워져요. 그런 작품들부터 구입해주신 분들은 다 제 후원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의자 하나, 스탠드 하나를 만들 때도 좋은 나무로 사람들과 백년 넘게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작업하려고요.”
파주/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변석호 제공
탁자와 의자.
나무 스탠드 작품들.
책상이 없는 여고생을 위해 만들어준 책상의 실제 사용 모습.
도자기 작업을 하는 이창연씨를 위해 만든 그릇장.
탁자와 의자.
탁자와 의자.
작업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심희규 작가(맨 왼쪽)와 이민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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