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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가 웬수냐 친구가 웬수냐

등록 2014-05-28 19:05수정 2014-05-29 09:54

사진 김소민 제공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내 결혼은 산으로 가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부터 ‘웬수’가 됐다. “독일에선 신랑이 결혼식 전에 드레스 보면 재수가 없어. 절대 안 돼.” 나탈리는 단호했다. 자기가 나서겠다 했다.

평균 백만원 이상 불렀다. 딱 하루 입는데 사란다. 이곳 결혼식에선 밤새 그 옷 입은 채 뛰고 노니 빌려주는 데가 없었다. 똑같은 모양인데 색깔만 흰색이면 값이 두 배로 뛰었다. 중국에서 제작해 3분의 1 값에 배달까지 해주는 사이트가 성업중인데 문제는 시간이 없었다. 결혼 한달 전에 옷 보자 하니 가게 주인들 첫 반응도 다들 어처구니 상실이었다.

드레스가 숨통 조이는 목줄로 느껴질 즈음 나탈리가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단다. 자기 친구가 딱 내 사이즈인데 무려 200만원짜리 웨딩드레스가 옷장 신세 지고 있다며 득달같이 친구 카트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트리나는 춤 선생님인데, 한번 화장을 하면 파란 아이섀도를 이마까지 칠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다.

보는 순간 빌었다. 제발 나한테 맞지 말아 달라. 욕 나오게 꼭 맞았다. 일단 웃통이 훅 다 까졌다. 등목이라도 해야 할 거 같다. 그 아래로 수많은 구슬들이 주말 명동 거리 인파만큼 박혀 아우성치고 있었다. 엉덩이까지 쫙 붙은 게 한 뼘의 살에게도 자유라고는 주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등 쪽으로 끈을 칭칭 동여매 숨 한번 들이쉬려면 관청에 허가를 받아야지 싶다. 꼬리는 또 길어 한 바퀴 돌면 반경 50m 안은 환기시킬 태세다. 거기에 거대한 장미 모자까지 쓰고 보니, 대체 당신은 누구세요가 됐다. “근데 이걸 입고 어떻게 화장실에 가?” 카트리나가 답했다. “화장실 못 가. 뭐 마시지 마.” “밥 먹으면 옷이 터질 거 같은데.” “난 밥 안 먹었어.”

새벽 2시까지 이 압박복을 입고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단 말인데, 그래서 금메달을 따면 모를까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눈치 레이더 작동한다. ‘당신 기대에 부응하고파’ 욕망이 올라온다. “진짜 예쁘다. 너 정말 안목 있다. 이걸로 나도 꼭 입고 싶어.” 술술 말하는 나를 보니 이게 남이지 싶다.

갈팡질팡 연속이다. 이번엔 독일인 남편이 타박이다. 나탈리를 배신하고 드레스 묘사 했더니 이런다. “네가 그걸 입으면 꼭 거대한 곤충 같을 거야.” 둘 다 얼굴 노래져 함께 폭풍 인터넷 검색, 50만원짜리 낙찰 봤다. 나는 이제 곤충 아니니 걱정 말라며 남편에게 연신 맞장구쳤다.

곧 나탈리와 카트리나가 바통 바꿔 내 고민 리그에 다시 등판했다. 남편한테 절대 보여주지 말라 했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할 것인가, 또 둘 기분 상하지 않게 어떻게 그 곤충 껍질 드레스를 돌려보낼 것인가, 그냥 눈 딱 감고 그 드레스 입고 변태를 해버릴까. 남편을 닦달했다. “나 혼자 샀다 할 테니 결혼식장에서 날 보면 깜짝 놀라는 연습을 해.”

나탈리, 카트리나, 남편이 내 머릿속에서 이어달리기하는 통에 내가 진짜 원하는 건 행방불명 상태란 건 눈치도 못 챘다. 어떤 이는 세상의 불평등을 고민할지 모르는 시각, 손톱을 물어뜯으며 셋 모두 만족시킬 묘안을 쥐어짜고 있는 나를 보자니 한심하고 무엇보다 겁이 났다.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겠다고 덤비다 나 자신한테 사랑받지 못한 사람으로 인생 끝낼 수도 있겠구나.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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