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이천계곡 상류 전봉기(전봉터) 부근 물길. 암반계곡이지만 상류 쪽 일부 구간은 이끼덮인 바위들이 깔린, 평평한 숲속 냇물을 이룬다.
[매거진 esc] 여행
끝없는 개발 논란 속에서도 맑은 물 고아한 소나무숲 살아있는 삼척 이천리 골짜기
끝없는 개발 논란 속에서도 맑은 물 고아한 소나무숲 살아있는 삼척 이천리 골짜기
강원도 동해안 최남단인 삼척시는 경북 울진과 접한 해안도시다. 수도권에서 보면 멀고도 외진 곳이지만, 그만큼 덜 훼손된 경관과 덜 알려진 볼거리가 널린 곳이다. 삼척의 아름다운 해안과 산간 오지는 끊임없이 각종 개발 논란에 휩싸여온 곳이기도 하다. 원전과 방폐장 후보지, 댐 건설 후보지에 송전탑 건립까지 경제 논리에 바쳐지고 훼손되는 제물 신세가 돼왔다. 이런 논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물길·산길 두루 아름다운 원덕읍 이천리 골짜기도 한때 방폐장 건설 후보지 등으로 거론되다 살아남은 곳이다. 텐트 치고 물놀이하며 놀 만한 곳은 아니다. 늦여름 휴갓길에 들러 깨끗한 물길과 울창한 숲길 따라 걷고 쉬며 지친 머리와 눈과 귀를 씻고 오기 좋은 곳이다.
사금산 자락 이천계곡
아름드리 금강송·낙엽송 키 자랑
수풀 우거진 임도 따라
호젓한 산길 산책 일품
때묻지 않아 아름다운 이천리 이천계곡
알음알음으로 조심스레 찾아와 거닐고, 더 알려져 붐빌까 쉬쉬하며 쉬다 가는 곳이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골짜기다. 웅장한 경관은 아니어도 바위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담한 폭포와 소들, 완만한 비포장 임도(산림
관리용 도로)와 그 곁으로 시종일관 따라붙는 물소리가 어울려 거닐고 쉬는 재미를 북돋운다. 물길 하류 해안가에선 액화천연가스 기지 건설공사로 북새통이지만, 늦여름 이천계곡 중상류는 맑고 한적한 외딴 세상이다.
아담한 폭포들과 깨끗한 물웅덩이, 이끼로 감싸인 바위들과 쓰러져 흙내를 풍기며 삭아가는 고목들을 눈으로 즐기고 싶은 이라면 늦여름 휴갓길 이곳에 들러 한적한 외딴 산길 산책을 누려볼 만하다. 골짜기 안엔 민가도 없고 주차할 만한 곳도 적어 이른 오전 시간에 시작하는 당일 탐방을 추천한다.
이천계곡은 삼척 원덕읍·도계읍·노곡면·가곡면 경계에 솟은 사금산(1082m) 자락에서 발원해 원덕읍 동쪽으로 굽이쳐 호산항 앞바다로 흘러드는, 길이 15㎞가 넘는 골짜기다. 옛날엔 마천·가천·오천 등으로 불린 물길이다. 이천리는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마천(마흔천)과 수리 두 마을을 합해 만들어졌다. 하류에서 중류 쪽으로 이천2리, 이천1리, 이천3리 마을이 차례로 이어진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이천3리 버스 종점에서부터 상류로 오르는 길은 좁은 시멘트길이다. 이천계곡에서 가장 이름난 폭포가 이천폭포(용추폭포)다. 커다란 바위 곁에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기다리는 갈림길(삼거리)에 못 미쳐 굽잇길 절벽 밑 물길에 걸린 폭포다. 높이 7~8m쯤 되는 폭포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폭포 위쪽에서부터 층층이 이어지는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길과 어울려 꽤 볼만한 경치를 만들어낸다. 폭포 앞으로 가려면 논길을 따라 돌아 물가로 내려서야 하지만, 길이 험하고 잡풀이 무성해 현재는 다가가기 어렵다.
갈림길 오른쪽(민박집 팻말 쪽)은 승지골·메나리골·새터로 오르는 비좁은 시멘트길이고, 흙길 임도를 따라 직진하면 물길 본류를 따라가게 된다. 승지골·메나리골·새터엔 6~7가구가 살지만, 물길 본류 위쪽은 무인지경이다. 갈림길 부근에 차를 세워두거나, 흙길 따라 5분쯤 차로 더 들어가면 만나는 차단기 앞에 세우고 물길을 따라 오르는 임도 탐방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차 댈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사금산과 이천계곡 상류 쪽은 산림청이 금강송 종 보전을 위해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국유림 지역이다. 사금산 일대는 예로부터 곧고 단단한 금강송(황장목)으로 이름난 곳이다. 조선시대 궁궐용 목재 생산을 위해 벌목과 일반인 출입을 금지했던 봉산(封山)이다. 이를 표시한 ‘금표’(禁標) 빗돌이 갈림길 굴참나무 밑에 세워져 있다.
임도는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길과 함께한다. 좁고 긴 바윗골에는 규모는 비교적 작으나 볼만한 폭포들이 줄을 잇고, 여기저기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구르다 멈춰 선 모습들도 이어진다. 폭포 밑에는 어김없이 깊은 웅덩이들이 물을 가두고 굵직한 버들치와 다슬기들을 기른다.
차단기 지나 널찍한 임도를 따라 올라 시멘트다리 건너 한 굽이 돌아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시멘트 포장길이고, 왼쪽 다리 건너면 비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물골(수곡)이란 곳으로, 한양기(한양터·화양터) 쪽에서 내려온 물길과 진범기(진범터)·전봉기(전봉터) 쪽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두 골짜기엔 20여년 전까지 주민들이 살았고, 호산초등학교 수곡분교도 있었다. 폐교된 학교 건물이 아직 남아 있다.
물길 경관은 왼쪽 다리 건너 오르는 전봉터 쪽이 더 낫다. 길이 넓어 다소 밋밋한 감이 없지 않으나, 길 옆으로 이어지는 물길의 작은 폭포들과 아담한 소들이 볼만하다. 물가에도 산자락에도 아름드리 금강송들과 낙엽송들이 무리지어 솟아 키 자랑을 하는 길이다. 잡풀 우거진 널찍한 빈터들은 옛날 집들이 들어섰던 자리다.
인적이 거의 없었던 듯 길바닥엔 크고 작은 버섯들이 무수히 자라 발길을 멎게 한다. 암반을 만나 거셌던 물소리는 울창한 숲 속 평지로 이어지며 소리를 낮추는데, 들여다보면 물길에 깔린 바윗돌들이 쓰러진 나무들을 안은 채 진초록 이끼 이불을 덮고 있다. 다리 하나 건너 임도는 끝나고, 물길 따라 오솔길이 계속되지만 나무와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발길을 돌리는 게 좋다.
승지골 위쪽 새터에 사는 한 주민은 “이천계곡은 걸으면서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기 좋은 때묻지 않은 골짜기”라며 “물놀이하는 계곡은 결코 아니고, 그럴 만한 장소도 없다”고 말했다.
주의할 점 몇가지. 바윗골이 좁고 깊어 폭우 땐 낙석 위험과 도로 유실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걸어서 오르는 탐방이라도 장마철이나 태풍 시기, 폭우 직후엔 삼가는 게 좋다. 물길 상류 골짜기엔 민가도 없고 안내판도 없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식수·간식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600년 된 소나무 성황목과 망곡단도 눈길
이천2리엔 600년 묵은 소나무와 성황당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성황당 건물은 올해 새로 지은 것이지만 우람하게 자라 오른 붉은 금강송 성황목이 아름답다. 9대째 살고 있다는 주민 이준희(67)씨는 “옛날 이 주변이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다”며 “20년 전까지도 엄청나게 큰 소나무가 두 그루 더 있었는데 죽고 말았다”고 말했다. 지금 남은 소나무는 “두 나무의 자식 나무”란다. 두 소나무는 주민들이 ‘할아버지 나무’ ‘할머니 나무’라 부르며 제를 올리던 성황목인데, 20년 전쯤 할머니 나무가 죽자 몇년 뒤 할아버지 나무도 죽어버렸다고 한다. 성황당 옆엔 할아버지 나무 줄기가 불탄 모습으로 남아 있다. 나무가 죽은 뒤 주변에서 불을 피우다 옮겨붙은 탓에 마치 나무가 불타 죽은 듯이 보인다고 한다. 이 마을 뒷산인 ‘천자산’ 자락엔 우계 이씨 선조가 임금 승하 때 상복을 입고 곡하던 장소인 망곡단도 남아 있다.
이천계곡 북쪽 산 너머엔 노곡(길곡)리가 있다. 노곡3리에서 시멘트길 임도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바다 전망이 빼어난 언덕 위에 ‘소공대비’ 비각이 세워져 있다. 소공대비는 조선 세종 때 명재상 황희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세운 빗돌이다. 황희는 극심한 흉년으로 주민들이 굶주리자 관곡을 풀고 사재를 털어 구했다고 한다. 이 임도는 해안 쪽 국도가 뚫리기 전까지 이 지역 남북과 동서를 잇는 유일한 고갯길이었다. 황희가 쉬어 가던 장소에 비를 세웠다고 전해 온다.
바다 경치 아름답고 즐길거리 많은 장호해변·용화해변에도 들러볼 만하다. 장호항은 최근 투명카누 타기와 스노클링 명소로 떠올라 피서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이달 말까지 장호어촌계가 운영하는 투명카누·스노클링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삼척/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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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동해고속도로 타고 동해시 거쳐 7번 국도 따라 삼척으로 간다. 원덕읍은 삼척시 남쪽 끝이다. 7번 국도 노곡나들목이나 호산나들목에서 나가 팻말 따라 이천리로 간다.
먹을 곳 삼척시 삼척병원(삼척의료원 아님)과 철길 사이 도로변의 호박집은 제철 생선찜 요리를 잘하는 집이다. 왕대포집·식당 경력 40여년 내공의 이학수(71) 할머니가 자연산 곰치·장치·가자미·도루묵과 수입산 명태를 다룬다. 옥상 건조대에서 사나흘쯤 말렸다가 35년 묵은 대형 냄비로 매콤한 찜으로 요리해 낸다. 된장, 다시마, 양파, 무, 명태 머리를 우려내 만드는 찜 육수와 밑반찬들도 조미료를 안 쓰고 매일 직접 만든다. 한약방을 하던 울릉도 출신 시할아버지로부터 배워 직접 담그는 ‘울릉도 호박막걸리’도 맛볼 만하다. 명태찜 2만5000~3만원, 장치찜 3만원, 도루묵·가자미·장치 모둠찜 4만원, 곰치찜 7만~8만원. 낮 12시~밤 9시 영업. 삼척 정라진항엔 단골식당·바다횟집 등 곰치국을 잘하는 곳들이 있다. 흐물흐물한 곰치 살과 잘 익은 김치 맛이 어우러진 곰치국은 동해안의 대표 해장국이다. 단골식당은 곰치가 떨어지면 며칠이고 문을 닫는다.
묵을 곳 삼척버스터미널 주변에 모텔들이 모여 있다. 피서철 해안가의 펜션·모텔·민박집들 숙박비는 부르는 게 값이다. 예약이나 가격 문의 자체를 안 받는 곳도 많다. 이천계곡 안 새터엔 주민이 운영하는 하늘솔민박집이 있다. 하루에 두 가족만 잘 수 있다. 4인 가족 1실 7만원.
주변 볼거리·체험거리 신리너와마을, 덕풍계곡, 해신당공원, 용화~궁촌 레일바이크, 민물고기전시관, 죽서루, 준경묘·영경묘, 환선굴·대금굴, 삼척시티투어 등.
여행 문의 삼척시청 관광정책과 (033)570-3545,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033)575-1050.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아름드리 금강송·낙엽송 키 자랑
수풀 우거진 임도 따라
호젓한 산길 산책 일품
이천계곡엔 아담한 폭포와 소들이 즐비하다. 이천폭포 위쪽 모습이다.
이천계곡 승지골 갈림길 굴참나무 밑의 금표비.
이천계곡 승지골 갈림길 굴참나무 밑의 금표비.
이천계곡 승지골 갈림길 굴참나무 밑의 금표비.
이천계곡 상류 임도 한가운데서 자라난 말똥버섯류. 독버섯이다.
이천계곡 승지골 갈림길 굴참나무 밑의 금표비.
이천2리 뒷산인 천자산 자락의 우계 이씨 망곡단(숭정대부 신효자 이상호 망곡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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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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