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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의 여왕이었잖아

등록 2014-08-27 19:13수정 2014-08-28 10:51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나는 40여평 이스마엘(63) 집 바닥 밑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미국 마이애미다. 집 바닥과 땅 사이, 한 사람이 겨우 지날 터널 속이었다. 기둥들이 뼈처럼 드러나 있었다. 그 사이를 이스마엘이 들고 있는 손전등 따라 헤매는 중이다. 태풍 너구리급 땀에 옷이 각다귀가 됐다. 순식간에 지나는 정체 모를 벌레에 기겁하며 생각했다. 대체 뭘 하는 걸까.

독일인 베른트가 마이애미 지하철 타는 법을 모르는 데서 시작됐다. 전날, 나 떼놓고 혼자 나가는 황홀감에 사로잡혀 표도 끊지 못하는 상태로 퇴행했다. 그때 금발의 40대 중후반, 청바지에 검은 조끼를 입은 미녀가 도와줬다. 둘은 지하철에서 말을 텄는데 그 여자 이야기가 기상천외했다. 자기가 콜롬비아 미의 여왕이었으며 딸은 어마어마한 가수라는 거다. 지하철을 탄 까닭은 차가 고장 났기 때문인데 실은 부와 명예에 신물이 나 마이애미에 정착,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 여자가 진짜 특별한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베른트는 ‘그럼 나는 요기 뢰프(독일 축구대표팀 감독)다’ 하면서도 미녀를 개처럼 따라갔다.

그 미녀가 보여준 곳이 바로 이스마엘 집이다. 마천루 사이 곰보 자국처럼 파인 곳이다. 거북가죽 같은 표면엔 고래 그림이 헤엄치고 용이 눈알을 번득였다. 그 집 마당은 한 뼘도 남김없이 모조리 파헤쳐져 있었다. 움푹 파인 곳엔 인형들이 빙 둘러앉았다. 정신이 쏙 빠진 그에게 미녀는 저녁을 같이 먹자 했다. 이게 무슨 수작인가, 이러다간 간을 빼가겠다 싶어 그는 속이 안 좋다 둘러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베른트의 호들갑에 나까지 얽혀 들었다. 이스마엘과 아내 버크는 신념의 커플이었다. 이스마엘은 12살 때부터 자기 집 마당을 파기 시작했다. 이곳이 원주민의 성스러운 장소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물이 흘렀던 이곳에서 자연과 영혼이 접합을 이루는 제사를 지냈다는 거다. 주변 땅값은 고층빌딩만큼 올랐다. 팔라는 압력이 짓눌렀다. 형제들은 다 등 돌렸다. “미친 이스마엘.” 이스마엘은 헛간 같은 이 집에서 땅 파고 남은 시간에 그림 그렸다. 눈으로 덮인 화산 위엔 붉은 별이 노란 해와 떴고 혜성이 날았다. 주홍색 나무들 사이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땅이 자기를 그림 그리게 했단다.

그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집 바닥에 난 사각형 문을 열었다. 따라가기 싫었다. 또 대놓고 의심하는 것 같아 기어들어갔다. “이게 그 나무야.” 땅과 집 바닥 사이엔 잘린 나무 등걸이 있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껴안을 수 있을 만한 굵기인데 한쪽이 그을렸다. “바로 여기서 성스러운 의식이 열렸던 거지.” 그는 이런저런 돌 자국을 가리키며 “이건 공룡 얼굴”, “이건 아이 시신”이라고 했다.(사진) 황당하다가도 보다 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했다. 아무도 안 믿더라도 이스마엘에게 이 땅의 굴곡은 그대로 역사의 정밀화였다. 그는 이를 보존해 박물관으로 만들어줄 재력가를 50년 기다렸다.

이스마엘은 미친 걸까? 몽롱한 채 지하철을 타니 이상하게 큰 달이 떴다. 숙소로 돌아온 베른트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그 콜롬비아 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앗! 저녁, 저녁….” 그의 이름은 마르셀라 우르타도(Marcela Hurtado), 1983년 미스 보고타(콜롬비아의 수도), 그의 딸은 콜롬비아 가수 신디 러시였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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