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개항(1883년) 이래 우리나라 외교·무역의 중요 관문 구실을 해온 서해안 제1의 항구도시다. 근대기 서구 열강의 통상외교 쟁탈전이 벌어지던 항구도시는 이제 아시아 핵심 거점 공항도시의 하나로 떠올랐다. 이곳에서 19일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개막돼, 16일간 45개국 1만4000여명의 선수·임원진이 참가한 가운데 36개 종목에서 기량을 겨루는 ‘아시아인의 축제’가 펼쳐진다.
축제장 밖에서도 축제장 안의 기량 경쟁, 응원 열기의 감동에 버금가는 경관과 볼거리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대회조직위 쪽은 아시아경기대회 동안 20만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약 200만명의 내외국인 관람객 및 관광객이 인천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장을 찾기 전후로, 만나볼 만한 인천의 경관과 볼거리들을 미리 둘러봤다. 외국인들에게 권해도 좋고 함께 둘러봐도 좋을 역사·문화·생태 체험지들이다.
시민 힘모아 지켜낸 계양산 청정숲과 둘레길
숲은 어두울 정도로 울창한데, 길은 좁고 완만한 흙길이다. 정상 등산보다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딱 반할 만한 산이다. 산자락 한바퀴 6㎞, 쉬엄쉬엄 2시간30분이면 원점으로 돌아오는 둘레길이 아름다워, 인천시민들도 걷고 수도권 주민들도 도시락 싸들고 찾아와 걷는다.
인천시 계양구의 계양산(395m, 옛이름 달부리·안남산)은 인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인천지역의 주산(主山)으로 여겨져온 산이다. 조선시대 인천지역의 두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문학산 자락에 인천도호부가 있었고 계양산 자락엔 부평도호부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부평지역의 역사와 애환이 담긴 산이다. 삼국시대 백제·고구려가 산성 쌓고 영토 다툼을 벌인 이래, 고려 때 문장가 이규보(당시 안남도호부 부사)도 부임해 머물렀고, 조선시대 임꺽정도 산적들을 몰고 들락거렸다고 한다.
이규보가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기록을 남겼던 이 산은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800년이 지난 지금도 “인천에서 생태환경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울창한 생태 숲을 간직하고 있다. 산자락에 대학도 들어서고, ‘강한 군대 향토 부대’도 들어서며 녹지가 줄긴 했어도 서늘한 숲은 여전하다. 이런 평가를 받는 건, 여러 차례에 걸친 기업들의 계양산 자락 개발 계획(위락단지·골프장 등)을 인천 시민들이 나서서 온힘을 다해(소나무고공농성·릴레이단식 등) 막아냈기에 가능했다. 연무정에서 출발해 무당골고개를 지나, 참나무류·소나무·잣나무 우거진 숲터널을 따라 목상동 솔밭을 향해 걸으면서 인천둘레길 안내자 김종운씨가 지도를 꺼냈다.
“보시다시피 1코스의 일부 구간은 점선으로 표시돼 있죠? 골프장 개발이 추진됐던 사유지(롯데 신격호 회장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롯데의 골프장 계획안을 폐지시키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시민단체들은 최근 시장이 바뀌면서 골프장 건설 논란 재연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계양산은 반딧불이·도롱뇽·북방산개구리 등이 살고, 귀룽나무·족도리풀·은방울꽃도 무리지어 사는 청정지역이자 울창한 수림으로 인천지역의 허파 구실을 하는 산이다.
리기다소나무 숲그늘 짙은 목상동 솔밭은 탐방객들의 쉼터이자 주민들 휴식처다. 210일간 이어졌던 ‘골프장 반대 소나무 고공농성’ 장소로 더 유명해진 숲이다. 숲속음악회도 열리고 반딧불이축제 땐 관찰 장소로도 이용된다. 솔밭에서 피고개 넘어 휴양림 쪽으로 가다 보면 징매이고개(징맹이고개·경명현)를 만난다. 옛날 산적이 출몰해 큰 무리가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는 고개다. 여기서 철마산 쪽으로 연결된 생태통로를 볼 수 있다. 70년대 도로(경명로) 건설로 끊겼던 산을 터널화 공사(2009년)로 다시 이은 것이다. 김종운씨는 “생태통로가 생긴 뒤 주변에서 동물 교통사고가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휴양림 앞쪽엔 이규보 시비가 있다.
계양산 둘레길은, 14개 코스로 이뤄진 ‘인천둘레길’의 제1코스다. 인천둘레길은 인천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S’자로 이어진 녹지축을 따라 조성한 도보산책로로, 총길이 120㎞에 이른다.
걷기 좋고 볼거리 많은 인천대공원
보고 즐길 거리가 많기로는 인천대공원~소래습지생태공원 생태축(인천둘레길 제6코스)이 좋다. 식물원·동물원·장미원·수목원에다 캠핑장, 대형 인공호수와 숱한 습지, 10㎞에 이르는 산책로까지 갖춘 인천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시민들로 붐비는데도 공원이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건, 넓기도 하거니와 일반 공원들에 흔한 놀이시설들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 나들이객과 연인 짝들이, 오직 걷고 쉬고 타고(자전거·인라인) 감상하는 것을 일로 삼아 머물 수 있는 대규모 공원이다.
공원 안에서도 가장 걷기 좋은 곳이 25만5000㎡ 넓이의 야산에 조성된 수목원이다. 테마식물원·희귀자생비교식물원·도시녹화식물원 등 3개 지구 43개 전시원에서 1000여종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어디를 가든 수목 옆에는 간단한 설명 팻말이 설치돼 있어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덜 수 있다. 대왕참나무 숲이 울창해 쉴 만하고, 장미원의 꽃들이 만발해 사진 찍을 만하다. 숲 안팎으로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도 날고, 개개비·직박구리도 난다. 나무를 쪼아대는 오색딱따구리도 눈에 띈다. 수목원엔 해설사가 상주한다.
대공원 호수는 한강물을 공급받아 만든 인공호수다. 여기서 장수천을 따라 내려가며 주변에 조성된 습지(둠벙)들엔 중대백로·쇠백로·청둥오리들이 그림처럼 오간다. 장수천은 인공호수에서 소래습지생태공원 쪽으로 흘러간다. 한때 극심한 오염으로 악취를 풍기는 개천이었으나, 끈질긴 복원·정화 노력으로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안내자 정태명씨는 “개발과 오염으로 한때 사라졌던 장수천 반딧불이도 최근 복원작업을 통해 되살아날 낌새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공원은 3시간 정도면 쉬며 걸으며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입장료는 없고 주차료(하루 4000원)가 있다.
기업들 개발 시도 막아내며 지킨
계양산 숲터널
놀이시설 없는 대신
볼거리 많고 걷기 좋은
인천대공원
아파트 숲 사이에 펼쳐진 광활한 갯벌습지
장수천 물길 따라 1시간 남짓,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담방마을을 거쳐 갯골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소래습지생태공원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염전이 들어선 이래 1990년대까지 소금을 생산했던 곳이다. 염전과 갯벌지역 66만㎡의 넓은 땅을 생태공원으로 만들며 염전은 극히 일부만 남아 체험장 등으로 이용된다. 쌍쌍의 연인들이 거닐고 쉬는 산책로가 미로처럼 얽힌 습지공원엔 철새탐조대도 있고, 쉼터도 있고, 다소 생뚱맞은 서양 풍차들도 있다.
습지의 배경으로 펼쳐진 주변의 고층아파트 무리가 기괴하면서도 푸근하게도 느껴지는 건,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습지공원이 도심 바로 곁에 존재한다는 감동 때문일까. 하지만 식물 생태에 밝은 안내자 김형문씨는 “바닷물이 막히면서 갯벌의 내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언젠가는 염생식물은 사라지고 일반 식물들로 뒤덮인 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드넓은 생태공원 뻘바닥엔 붉은 해홍나물·칠면초·나문재 등 염생식물들과 갈대·산조풀 등 내륙식물들이 뒤섞여 자라고 있다.
염전 옆에 습지의 해양생물과 천일염 생산 시설과 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생태공원전시관이 있고, 그 앞쪽엔 갯벌체험장도 마련돼 있다. 습지생태공원 주차장에서 잠시 걸으면 소래포구다. 다양한 제철 해산물을 팔고 사고, 먹고 마시는 인파로 붐비는 소래어시장이 기다린다.
인천지역의 주요 관광지 관광안내소에서 요청하면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49개 경기장 위치와 전 경기 일정, 관전 포인트, 인천의 명소 등을 담은 안내책자 <굿모닝 인천>을 얻을 수 있다.
인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