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개들도 아기처럼 ‘분리 불안’ …강아지 놀이방에 가다

등록 2014-10-01 20:48수정 2014-10-02 15:05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강아지 놀이방에 간 4살 몰티즈, 봄이.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강아지 놀이방에 간 4살 몰티즈, 봄이.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반려견 사회성 교육
부끄럼쟁이 봄이 놀이방에 가다

반려견 인구 1000만 시대. 주인들의 사랑과 근심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강아지의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나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문 앞을 서성인다.

4살 봄이를 데리고 놀이방에 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친구들이 달려왔다. 늘 혼자 지내다 난생처음 바깥세상에서 친구들을 여럿 만난 봄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울타리 안에 내려놓자 안간힘을 쓰며 울었다. 여기는 낮 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리온 데이케어 센터’, 강아지 놀이방이다. 봄이는 태어난 지 4년 된 몰티즈 품종의 여자 개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이리온에서 지능계발을 받는 강아지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이리온에서 지능계발을 받는 강아지들.
봄이를 처음으로 놀이방에 보내던 날, 봄이 주인 노수민(32·회사원)씨는 봄이 옷가지와 간식을 챙기며 놀이방 선생님들에게 긴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종일 홀로 있게 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 훈육은 거의 하지 않고 애지중지했다”고 자신의 양육 방식을 돌아보며 “봄이는 주인과 있을 땐 사람이나 다른 개에게 짖고 덤비는 일이 많지만 주인이 없으면 얌전하고 시무룩해지는 성향”이라고 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짖거나 가끔은 주인을 물기도 하는 등 사회성이 부족해서 함께 외출이나 산책을 하기도 어려웠다. 한 번도 남의 손에 맡겨본 적이 없던 봄이를 놀이방에 보내볼 생각을 한 것은 수민씨가 내년 3월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식구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봄이도 이젠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했다. 주인이 유리문 밖에서 발을 떼지 못하자 봄이의 짖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선생님들에게 등을 떼밀린 수민씨가 마지못해 멀어지자 그제야 짖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무리 안에서 안정을 찾는 개들
혼자 지내는 탓에 아기처럼
분리불안, 사회성 문제 겪어
애견 카페서 친구 만들어주려다
‘애견카페 트라우마’ 겪기도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이리온에서 예절교육을 받는 강아지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이리온에서 예절교육을 받는 강아지들.
반려견 전문 트레이너인 청담 이리온 전찬한 교육이사는 “강아지 유치원이나 놀이방에 보낼 때는 먼저 주인과 반려견이 떨어지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분리불안이 없다”고 당부한다. 지금 반려견 주인들의 고민은 강아지들의 정서적 문제, 그중에서도 주인과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분리불안과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성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개들은 무리 안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동물이지만 대부분의 개들이 종일 혼자 지내야 하는 탓이다. 사람에게 더없이 친근하게 구는, 그 종으로서의 특성이 바로 개를 불행하게 한다. 전 이사는 “주인은 함께 있을 땐 늘 품에 안고 만져주고 잠도 같이 자다가 아침이 되면 갑자기 나가버린다. 헤어지는 연습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높은 수준의 고독을 강요받는 셈이다. 거기서 분리불안이 시작된다”며 집에 있을 때 너무 밀도 높은 시간을 가질 게 아니라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 안에 울타리를 쳐서 공간을 나누거나 집에서도 개가 불안하지 않을 만큼씩 떨어져 있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이리온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강아지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이리온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강아지들.
오전 10시, 주인들이 하나둘 강아지를 안고 오면서 놀이방의 하루가 시작됐다. 보통 하루 15마리가 맡겨지는 이곳에서 강아지들이 주인과 헤어지는 모습은 어린이집과 비슷했다. 2년째 매일 이곳에 다닌다는 해피(몰티즈·3살)처럼 울타리가 열리기 무섭게 뛰어들어오는 개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놀이터에 온 어린이다. 꼬마(슈나우저·5살)는 주인과 떨어질 때면 무섭게 짖고 화를 내지만 주인이 돌아서자마자 다른 강아지에게 신나게 뛰어가는 ‘이중생활자’다. 가볍게 물고 장난치며 서로 쫓아다니는 개들은 놀이방에 익숙한 친구들이다. 이곳엔 웹카메라가 있어 스마트폰으로 관련 앱을 설치하면 밖에서도 반려견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놀이방의 하루는 주인을 배웅하고 강아지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시간으로 시작한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놀이방의 하루는 주인을 배웅하고 강아지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시간으로 시작한다.
청담 이리온 강아지 놀이방의 하루는 보통 4가지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오자마자 배변판을 깐 울타리에 넣어 대소변을 가리도록 한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서로 냄새 맡고 장난치며 놀도록 자유롭게 놓아두는 대견 사회화 시간을 보낸다.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는 것이 강아지들의 인사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봄이는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놀이방의 하루는 주인을 배웅하고 강아지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시간으로 시작한다.
낮동안 강아지들을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과 놀이방이 늘고 있다. 놀이방의 하루는 주인을 배웅하고 강아지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시간으로 시작한다.
오전반을 맡은 2명의 선생님이 공과 뼈다귀 모양의 천을 던졌지만 혼자 놀던 강아지들은 장난감을 가지고도 놀 줄 몰랐다. 강아지들끼리 놀다가 입질이 거칠어지면 선생님들은 연신 “형한테 왜 그래, 동생한테 그러면 안 돼” 타이르며 둘을 떼어놓았다.

병원, 강아지 호텔, 반려견 용품 판매점, 놀이방을 갖춘 이리온은 2011년 문을 열어 현재 전국에서 12곳을 운영한다. 지난해부턴 이곳 말고도 강아지 유치원이 여럿 생겼다.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아이를 키우듯 아낌없이 개를 위한 보육과 교육에 투자하는 주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비용은 시간당 5000원 정도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출근하느라 집을 비워야 하는 반려인 상당수가 일주일에 2~3일씩 개를 맡긴다. 어린이 위탁기관처럼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유치원, 돌봄과 놀이 목적이 강하면 놀이방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경계는 없다고 했다.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낮잠 시간이다. 이것도 어린이집과 비슷했다. 강아지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냄새가 밴 담요나 옷가지가 깔린 작은 장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자극이 강한 바깥놀이와 다른 강아지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쉬는 시간이 필수라고 했다. 과연 강아지들의 낮잠 시간, 놀이방은 잠시 조용해졌다.

오후는 자유놀이 시간으로 시작됐다. 주인이 요청하면 이 시간에 지능 계발이나 예절 교육이 진행된다. 뽀미(치와와·1살)는 회전판을 돌려야 먹이가 나오는 장난감 그릇을 이리저리 돌린 끝에 간식을 받았다. 칭찬 요법을 쓰는 이곳 놀이방에서는 어떤 일을 해내면 간식이나 칭찬으로 보상한다. 교육은 4가지 순서를 밟는다. 강아지가 낯선 장소에 적응됐다 싶으면 교사의 눈을 쳐다보도록 해야 한다. 그다음엔 이름을 부르면 와야 한다. 전찬한 이사는 “이름을 불러서 오는 강아지라면 어떤 문제행동도 막을 수 있다. 그러려면 집에서도 절대 이름을 불러놓고 야단치면 안 된다. 이름을 불러서 오면 칭찬을 받는 즐거운 경험만 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단계는 앉고, 기다리고, 따라 걷기를 하는 동작훈련이다. 아직 낯선 사람과 시선 마주치기를 겁내는 봄이에겐 다른 훈련이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전 이사는 “개체의 수준을 뛰어넘는 과도한 자극은 절대 삼가야 한다”며 “강아지들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다른 개와 놀도록 강요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애견 카페가 많아지면서 ‘애견 카페 트라우마’라는 말이 생겨났다. 애견 카페에서 큰 개에게 공격받은 경험을 한 작은 개들은 다른 개를 극도로 무서워하게 된다. ‘애견 카페 트라우마’를 입은 개는 무슨 요법을 써도 회복되기가 어렵다고 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강아지 교육엔 적기가 있다. 보통의 강아지들은 사회화 최적 시기인 생후 3~6주가 지나 주인에게 입양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늦어도 14주까지는 사회화 훈련을 받아야 한단다. 개는 생후 4개월이면 경계심이 급상승하기 때문에 그 전에 자신감과 친밀감을 높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온에서는 퍼피스쿨이라고 해서 처음 반려견 주인이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데 가장 정성을 들여야 할 입양 초기지만 시간을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전 이사는 “사람과 개, 서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특질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세상에 입장하는 입장권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후 6시, 이 놀이방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이를 닦고 귓속 청소를 하는 그루밍과 건강검진을 마친 강아지들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시간이다. 늦게 일을 마치고 놀이방이 문을 닫는 저녁 8시쯤에야 반려견을 데려가는 주인도 많았다. 선생님은 봄이의 오늘 일과와 건강검진 결과를 적은 알림장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하루 트레이너를 맡았던 전찬한 이사는 봄이 주인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따로 썼다. “하루 이틀 사이에 확 달라지기를 기대하지 말고, 품행이 좋은 다른 반려견과 어울리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야 한다. 이름을 부르면 주인에게 오고, 산책 방법을 다시 알려주는 교육을 지속하라”는 내용이었다. 하루 종일 꼼짝 않던 봄이는 주인의 품에 안겨 다시 짖기 시작했다. 멍멍.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