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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편-한국 아내, 난방 사수 대혈전

등록 2014-10-29 20:22수정 2014-10-30 10:15

사진 김소민 제공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부부싸움의 계절이 다가온다. 기온이 떨어질수록 전의는 달아오른다. 지난겨울은 길었지만 여전히 승부는 나지 않았다. 네 살갗은 특수 재질이냐 의심만 커져 갔다. 독일인 남편과 나 사이 온도전이다.

이 집 라디에이터가 난방기구인가. 그 분류에 반대한다. 발바닥부터 감싸 안아 피를 데워주는 온돌 정도는 돼야 난방입네 할 수 있는 거다. 집 라디에이터, 반경 5㎝ 데우고는 풀이 죽었다. 전기, 기름 먹고 힘은 어디다 쓰는 걸까. 강도 세게 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쉭쉭거리며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려준다. 추위보다 더 등골 서늘한 소리다. 스웨터 두 개씩 껴입고 요실금 라디에이터 위에 앉아 겨울 났다. 집 안팎이 무슨 차이냐 푸념하면 돌아오는 답은 항상 똑같다. “뭘 많이 입어.” 장갑도 껴야 하나.

그중 가장 추운 곳은 침실이다. 바깥 온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난방기구 켜는 법이 없다. 침실 문을 열면 냉기가 덮쳐 잠을 추방한다. 뜨끈한 방바닥에 근육이 노글노글해져야 그 사이로 잠이 스며드는데 이건 정신이 번쩍 나 수능 수학을 펼쳐들어야 할 판이다. 나는 근육과 정신 모두 각성 상태인데 옆에서 두꺼운 담요 위로 얌체같이 코만 내밀고 동면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이불을 확 들춰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의 주장은 그렇다. 두꺼운 이불이 있는데 왜 연료를 낭비하는가. 난방 틀면 공기 탁해져 건강에 더 안 좋다. 여기선 다 이렇게 잔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그렇게 추운 것이 아니며 네가 너무 곱게 자라 피부가 공주병인 거다.

냉기로 척추 디스크끼리 밀착할 것 같은 어느 날 밤, 그의 주장을 박살내기 위한 증거 수집에 나섰다. 온도 쟀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냉골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이럴 리 없는데 16도 정도다. 내 세포는 시베리아 유배 중인 것 같은데 실제 온도는 봄날의 비웃음을 날렸다.

둘째, ‘네가 이상하다’는 확증을 뒷받침해줄 이웃의 증언을 들어봤다. 아래층 발레리, 겨울에 난방은커녕 창문도 좀 열고 잔단다. 지난 3월 아직 찬 바람이 암팡진데 앙겔라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기가 잠드니 얼굴만 빼고 담요로 똘똘 싸 바구니에 담고 베란다에 내놓았다.(사진) 그래야 더 잘 잔단다.

어디나 통하는 다용도 카드는 아직 남았다. ‘나는 너랑 다르다’다. 네가 어떻게 살았든 내 살갗은 전기장판에 길들여진 앙투아네트다, 네 방식 나한테 강요 마라. 결국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 자러 가기 직전 10여분 동안만 강도 1로 라디에이터 켜기로 협상에 성공했다. 그날 평화로운 밤이 지나고 지구전이 시작됐다. 몰래 켜면 몰래 끄고 켜면 끄고….

한쪽 다리 이불 밖으로 내놨다 냉기에 화들짝 깬 다음날이면, 나는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준 멸치 국물을 우려냈다. 거기에 마늘까지 다지면 복수극에 쓸 재료가 완성된다. 부엌은 이미 냄새로 정복됐다. 코를 쥐고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통쾌해하는 일만 남았다. 나와 마디마디 다른 이 남자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널렸다. 올겨울엔 엄마에게 멸치를 더 보내 달라 해야 할 것 같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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