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내기바둑 200전200패의 OK 형, 학림다방과 뒷골목 막걸리집을 전전하며 그와 함께 다닌 길들은 남아있는데…
내기바둑 200전200패의 OK 형, 학림다방과 뒷골목 막걸리집을 전전하며 그와 함께 다닌 길들은 남아있는데…
떨어진 낙엽을 발로 차올리던 게
OK형의 공부였던가
나는 뒤따라가며
“무송의 원앙퇴!”를 외쳤다
진짜 공부는 그런 것 같았다 한 사람에게라도 하루치 용돈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 우리 둘은 나란히 버스를 타고 동숭동에 있는 학림다방으로 갔다. 오전 열한 시쯤에 학림에 도착해서 보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소설을 쓰고 있는 이름 모를 소설가밖에 없었다. 삐걱대는 계단 위 어둑한 실내, 낮은 탁자와 낡은 소파, 공기에 밴 커피와 담배와 시간의 냄새, 여름에도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난로가 경외스럽고도 편했다. 플레이어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든 음반을 얹고(나는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첫 번째로 듣곤 했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 앰프 옆에 세워진 칠판에 곡목, 작곡가, 작품 번호 등을 적었다. 손을 떨지 않고 연속해서 쓰되 마지막 마침표를 딱, 소리나게 찍는 것도 숙달된 사람이나 할 수 있었다. 점심을 굶은 채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몇번이고 받아다 각설탕을 녹여 먹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여학생들이 하나씩 둘씩 학림에 나타났다. 미팅할 때는 초창기 몇 번 말고는 볼 수 없던, 아름답고 지성적이고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여학생들이었다. 우리, 아니 내가 학림에 간 건 바로 그 여학생들 때문이었다. 여학생들은 니체처럼 수염을 기르고 닐 다이아몬드처럼 서글서글한 눈매에 늘 산더미 같은 원고와 잉크통을 앞에 두고 굵은 만년필로 소설을 쓰고 또 쓰고 있는 소설가를 보러 온 것이고. 언감생심 그를 질투할 수는 없었다. 무궁토록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랬다. 그런 장소, 시간을 제공하는 학림다방 또한 영원하기를.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파지면 밖으로 나왔다. 학림다방 뒤편 골목에는 나이 든 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남아 있는 모든 돈을 털어서 각각 라면 그릇 하나와 물렁거리는 비닐통 속에 든 막걸리를 받았다. 먼저 막걸리를 그릇 가득 따라서 마시고 있다 보면 라면이 나왔다. 라면을 다 먹고 막걸리를 한 방울 남김없이 마시고 나면 배가 터지듯 불러왔다. 버스 탈 돈이 없는데다 배를 꺼뜨릴 겸 걸어서 오전에 출발한 지점, 그러니까 두 사람이 재학 중인 대학까지 걸어갔다. 창경궁,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낙엽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을 허공에 던지며 낙엽을 발로 차올리던 게 OK형의 공부였던가, 쿵후였던가. 나는 뒤를 따라가며 “무송의 원앙퇴!”라고 외치곤 했다. 진짜 공부는 그런 것 같았다. 고맙게도 학림다방은 아직 남아 있다. 고맙게도 그 시절에 대한 기억, 길의 일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일년에 한두 번이긴 하지만 막걸리와 라면을 앞에 놓고 앉을 수 있다. OK형은 지금 없다. 플라스틱 그릇으로 된 한 잔의 술, 안주인 라면 한 그릇을 마주 들어 올릴 사람은 더 높은 차원으로 존재를 옮겨갔다. 그리움은 남았다. 그러니 다시 그들의 다사로운 은혜를 찾아 떠나지 않을 수 있으랴. 오, 육체는 슬퍼라….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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