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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기 전에 꼭 가야 할 이곳, 노량진수산시장

등록 2014-12-17 20:59수정 2014-12-18 09:56

비릿한 냄새 시끌벅적 풍경 내년이면 추억속으로…
시장 입문을 위한 공략법 총정리
멍게를 뾰족한 옷핀에 꽂아 빙초산에 찍어 먹는다고? 먹거리 고발 프로그램 얘기가 아니다. 1970년대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흔한 풍경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시장을 가면 멍게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요리연구가 이보은씨는 어린 시절 상도동에 살았다. 삼촌까지 13명이 모여 산 대가족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겨울이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도루묵 3~4상자를 사와 연탄불에 구워줬다. 세월을 따라 멍게 아저씨들은 사라졌지만, 노량진수산시장은 지금도 하루 이용 인원만 평균 3만명, 중도매인, 판매상인 포함 종사자 수 2000여명에, 서울 수산물 거래량의 46.9%를 차지하며 하루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시장이다. 지난 9월 이곳에 난데없는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5층짜리 빌딩인 대형 냉동창고가 40㎏의 다이너마이트에 폭파돼 단 10초 만에 사라졌다. 그 자리에 연면적 11만8346㎡에 달하는 지하 2층, 지상 6층의 백화점식 건물이 내년 8월께 들어설 예정이다. 시장 전체가 이 현대식 건물로 이전한다. 어수선하고 낡아도 정감 있는 수산시장의 풍경이 곧 사라진다. 여행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 큰 ‘백통’(망원렌즈)을 멘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2003년에 철거한 삼일고가도로를 사진첩에 넣었던 것처럼 기록을 하는 것이다. ‘데드라인’이 정해진 시장을 알뜰하게 여행할 방법을 총정리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알고 떠나자!

“빨간 다라(함지박)에 생선 가득 넣었지. 그걸 이고 남대문시장까지 걸었어.” 40여년 경력의 상인 ‘양박사’의 중림동 시절 증언이다. 1927년 서울 중림동에 한국 최초로 수산시장이 생겼다. ‘양박사’를 비롯한 수산 상인들은 1971년 한국냉장이 에이디비(ADB·아시아개발은행) 차관으로 노량진수산시장을 건립하자 옮겨갔다. 전국에서 신선한 회가 노량진에 쌓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70~80년대 시장은 호황이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섰던 시절이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형 전기환씨가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을 강탈하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에 청탁해 비서관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5공 비리의 온상지’라는 오명이 붙고 신문 사회면 머리를 장식했다. 시장은 당시 1400여억원의 연 거래 실적, 서울 수산물 거래량의 47% 유통, 매년 12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노다지였다. “어휴, 그때는 깡패들도 들썩거렸고, 직원들도 운동선수 출신이었어. 도둑도 많았어. 직원이 잡으면 상인들 앞에서 팬티 바람으로 오리걸음 시켰지. 5공 끝나고 민주화되면서 다 없어졌어.” 수산시장 고객지원부 성용섭 과장의 회고담이다. 전씨는 구속됐고 시장은 재인수 절차를 두고 농수산유통공사, 수협, 본래 운영권을 가지고 있던 노량진청과시장 등 3자의 치열한 각축장이 됐다. 현재는 수협이 운영한다.

홍어 매장. 사진 박미향 기자
홍어 매장. 사진 박미향 기자
해수의 온도가 달라지고 자연환경이 변하자 추억의 생선들도 생겨났다. 동해 바다에서 잡히던 생태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거의 러시아산이다. 10㎏이 넘은 큰 민어도 척척 올라왔다. ‘재수 없다’ 던져버렸던 아귀나 고약한 냄새로 떠돌이 신세였던 홍어는 지금 인기스타다. 80년대 조기는 귀한 몸이었다. 가게마다 물감통과 요상한 도구가 있었다. 조기 배에 치자 물감을 바르고 바람을 넣었다. 지금은 다 사라진 풍경이다. 천장에 수백개 달린 조명, 바닥에 흐르는 미끈한 물 자국, “언니 함 와봐!” 떠들썩하게 부르는 소리, 수산시장만이 가지는 정취다. 가게 주인들은 아버지뻘이 많다. 시장에서 50대는 청춘이다. 오복수산의 임복성(60)씨는 “젊은 친구들 한겨울에도 슬리퍼 신고 오는 거 보면 참 달라졌다 싶다”고 한다. 성용섭 과장은 “요새 중국, 일본 관광객이 많다. 조선족 동포를 채용한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일요일만 빼고 열리는 새벽 경매시장 풍경도 볼거리다. 새벽 1시께 패류와 대중(고등어, 갈치 등), 2시께 냉동 수산물, 3~7시 무렵 활어 경매장이 열린다.

1971년 시장 건립 이래
수산물 국내 최대 집결지
내년 여름 현대식 건물로 이전
상인들 소비자 구매 패턴 파악해
3년에 한번 자리뽑기 치열

시세 먼저 알아보고 단골집 활용을

우선 노량진수산시장 패션으로 무장하자. 시장은 얼음이나 수십개의 수족관으로 실내온도가 바깥보다 2~3도 낮다. 상인 패션을 눈여겨보면 귀마개와 두툼한 털조끼는 기본이다. 장화는 필수 아이템. 이자카야 카덴의 오너 셰프인 정호영씨는 개업 초기에 직접 시장을 다녔다. 새벽 2시, 흥정하면서 험한 소리를 듣곤 했다. 첫 개시에 거래가 성사 안 되면 상인들은 하루 재수가 없다고 여겼다. “일부러 장화를 신고 다녔다. 업체 사람으로 보여 험한 소리 덜 들었다.” 장화는 보호막 같은 거였다.

언뜻 보면 가게들은 다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규칙이 있다. 고급, 냉동, 패류, 대중으로 구획이 나눠져서 서로를 침범 못한다. ‘고급’은 활어 위주인데 수족관이 있는 게 특징. 20여년 전 바닷물을 인천에서 차로 가져와 수도꼭지에서 틀어 쓰는 시스템을 갖추면서부터 활어 판매가 가능해졌다. ‘패류’는 주로 안쪽 줄에 있다. ‘냉동’은 냉동된 갈치, 동태, 대구, 홍어 등을 판다. ‘대중’은 말 그대로 고등어 같은 대중적인 생선이다. 경매장 벽쪽에는 건어물상과 젓갈류 가게들이 모여 있다. 구획별로 공략하라. 요리연구가 이보은씨는 “뭘 살 건지 명확하게 정리해서 구획별로 장을 본다. 지도를 아예 그려 간다”고 한다. 그의 장보기의 시작은 노량진 학원가와 이어져 있는 굴다리에서부터다. 굴다리의 할머니 노점상에는 뜻밖에 마트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가죽나물, 민들레, 고수 등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건어물은 구입하지 않는다. 경매장이 안 열려 도매상의 장점이 없다.

장보기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은 단골집을 만들라는 것. “한 집을 여러 번 가고 얼굴 익히고 명함을 줘라.” 이보은씨는 패류는 ‘쌍둥이네’를, 방어철인 요즘은 ‘성도수산’을 이용한다. 가장 신선한 수산물은 역시 새벽 경매장에서 나오는 것. 하지만 한두 마리 적은 양을 개인이 사기는 어렵다. 여러 업소에 납품하는 도매상을 운 좋게 만난다면 모를까! 이런 업체는 대량을 업소별로 필요한 만큼 쪼개서 유통시키기 때문에 그 틈새를 이용할 수 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시장 바람과 싸우다보면 등대 불빛처럼 반짝이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자-광어-35’. 자연산 광어가 오늘 35㎏ 들어왔다는 소리다. 시세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3년에 한 번씩 상인들은 자리 추첨에 목숨을 건다. 3년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5줄이 길게 이어진 시장. 명당은 양쪽 출구와 가까운 앞줄의 앞뒤로 3~4번째 자리다. 상인들의 경험 데이터에 의하면 손님은 첫번째 집은 왠지 속을 것 같아 지나치고, 두번째 집에서 약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서너번째 집에서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장보기 전문가들은 5번 넘게 전체 시장을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정호영 셰프는 “선어(죽은 생선)도 꼬리를 딱 쳤을 때 U자로 많이 휠수록 신선하다. 윤기, 살의 탄력을 확인하고, 배까지 도톰한 생선이 맛있다”고 한다. 돌다 보면 인연을 만난다. “어느 날 갑자기 누가 와서 중국산 생선 구별하는 거 묻길래 말해줬지. 근대 그게 티브이 나가면서 내가 마치 중국산 속여 파는 놈으로 보인 거야. 어휴 한동안 고생했어.” ‘여수여천’ 주인 최덕안씨는 쓱쓱 회를 뜨면서 이런저런 재미난 얘기를 해준다. 인연이 사람 사는 냄새를 피운다. (19면 지도 참조)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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