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욕전’
우리 욕본걸까 망한걸까
우리 욕본걸까 망한걸까
하필이면 ‘그날’이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을 결정한 19일 오후. <한겨레> esc ‘욕봤다 2014’ 대담을 통해 ‘욕본 한 해’를 정리해보려던 이들은 이 욕 나오는 상황 앞에 어쩔 줄 몰랐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국내 톱클래스 논객답게 “욕 나온다”는, 주제에 딱 떨어지는 표현으로 대담의 문을 열었다. 올 한 해 가장 뜬 방송인이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글쓰는 허지웅’이라 소개해 달라던 허지웅 평론가는 “화병 나는 이런 기획 왜 하는 거냐”고 그린라이트 끄듯 책상을 퉁 쳤다. 정유민 웅진지식하우스 3팀 편집장(출판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진행자 ‘오라질년’)은 “올해는 ‘아무리 이 나라가 미쳐 돌아가도 설마…’ 하던 게 죄다 현실이 됐다”고 했다.
맞다. 그러고 보면 올해, 하필이면 ‘그날’이 아닌 날이 있었나. 겨우 숨쉴 만하면 사건이 또 터졌고, 울화가 치미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서럽던 한 해 이야기를 하자고 둘러앉았다. 그래도 우리는 웃으면서 욕해보자고 다짐하면서. 대담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됐다. 대담이 끝날 즈음, 서울광장에서는 ‘못 살겠다’는 피켓이 가득한 집회가 시작됐다.
8 대 1이면 인민재판이지
8명이 헌법을 새로 정한 거라고
12월19일이 새 제헌절이야 임지선(이하 임): 아무리 좋은 기억만 남겨보려 해도 욕 나오는 연말입니다. 하필 대담이 오늘이라서 더 욕이 나오네요.
진중권(이하 진): 아, 욕 나오죠. 정말.
허지웅(이하 허): 이렇게 압도적일 순 없어.
진: 8 대 1이면 이건 뭐 인민재판이지. 솔직히 말하면 8명이 헌법을 새로 정한 거라고. 오늘, 12월19일이 제헌절이야.
허: 서독에서는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으로 정당을 해산한 경험이 있잖아요. 근데 그걸 갖다 들이밀더라도 우리 상황이랑은 맞지 않는데. ‘방어적 민주주의’란 말이 한국에 와서 참 고생한다.
정유민(이하 정): 맞아요. 저도 되게 순진한 게, 전혀 예상을 못 했거든요. ‘아무리 이 나라가 미쳐 돌아가도 설마!’ 한 거죠. 근데 매번 이래. 올해는 계속 그랬어. ‘설마 이렇게까지…’ 하면 언제나 그 불안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와.
허: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도 못한 일을 한 거죠. 조봉암 사건은 이승만 정권 때일걸? 그 당시만 해도 정부가 해산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사법부가 한 거예요. 망조가 들었다고 봐요. 나라에.
정: 그럼 우리 ‘욕봤다’가 아니라 ‘망했다’ 해야 되는 건가요?
허: 저는 사실 우리나라의 시스템을 많이 믿었어요. 고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비판도 했던 건데. 앞선 세대들이 힘들게 만들어놓은 시스템이고 그래도 어느 정도 굴러가니까 나라가 지탱이 되는 거겠지 했는데. 세월호 때 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한 거 없었잖아요. 이제는 무서워요. 망조 들었다는 말에 동의하기도 해요.
임: 시스템은커녕 인간으로서의 직관조차 없는 것 같더라고요.
허: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열 가지 중에 두 개만 작동돼도 개선의 여지가 있어. 근데 이건 하나도 작동 안 했잖아요. 애들이 다니는 학원버스가 전복이 됐어요. 어른들이 그걸 둘러싸고 애들 죽을 때까지 구경한 꼴이라니까. 애들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지금 사람들이 말은 안 하고, 누구를 종북이라고 몰고, 사고라고 부정했지만 모두에게 이 사건, 유전자에 새겨졌다고 생각해.
정: 세월호 사건 이후 이 나라에선 목숨이 정말 ‘랜덤’이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불안이 아니라 공포예요. 이 나라에서 사는 것 자체가. 언제 어디에서 죽어도 아무것도 손쓸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더 깽판 치면서 살자 싶고.
임: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세월호 사건 이후 단식하는 유족들 앞에서 일부러 치킨을 먹는다든지, “시체 장사”, “지겹다” 등의 엄청난 폭력이 난무했다는 거예요.
진: 변태적이죠. 유족들 앞에서 왜 폭식 투쟁을 합니까. 피해자에 대한 이차 가해가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거죠.
허: 그게 다 관통하는 건 다들 알다시피 ‘일베’잖아요. 일베라는 이름으로 표면화된 ‘억눌리고 좌절된 개인’들은 어떤 역사에서든지 결국 극우화되는 노선을 걷잖아요. 심지어 정권을 잡기도 하고. 근데 그런 게 인터넷상에서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게 더 끔찍한 거예요.
임: 일베도 일베지만 “지겹다”는 말을 많이 하는 동네 이웃들도 많이 만나요. 주위에 팽배한 이 분위기는 뭘까요.
허: (이념 대립이) 집권 시스템의 공식처럼 되니 정말 잘 써먹고 있는 것 같아요. 세월호는 누가 봐도 끔찍한 일인데 거기 왼쪽 오른쪽이 어딨어요? 근데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싸움이 나고 그럼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지치지.
진: 얼마 전 정윤회 사건 당시 발견된 쪽지 “여야 대결로 몰고 갈 것” 이게 중요한 비결이죠.
허: 집권 공식에 ‘완전 순결한, 100% 순결한 피해자’라는 판타지가 추가된다. 이 나라에서 피해자는 흠결이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오랫동안 농성을 했는데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돌출 행동 하나라도 나오면 이거 봐라 하니.
정: 단식 농성을 한 김영오씨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말이 있었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흠잡을 게 없는 존재가 아니면 어떻게든 끄집어내는 거예요.
허: 공포스러운 게 멀쩡한 사람도 순백의 피해자가 아니면 인간말종으로 물고 늘어지는 전략을 쓰는데 만약에 나를 털면? 나는 완전 연쇄살인범 수준일거야.(웃음)
진: 정권이 위기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어요. 이건 뭐 세월호 유가족이 사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거야.
전원: 맞아요, 맞아.
허: 이게 말이 돼? 이건 교통사고 같은 거다, 사고는 누구나 당한다는 논리가 먹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게 끔찍하고 슬픈 차원을 떠나 맥이 빠져요.
진: 사회를 하나의 인격으로 본다면 정신이 병든 거예요. 유가족보고 “저 사람들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일반인들이 이야기할 때는 진공 상태에서 얘기하는 거 아니거든요. 어떤 담론, 정치적인 대결 구도 안에서 말하는 거죠. 쉽게 말하면 병이 든 거죠. ‘아이덴티티’(정체성)로 따지면 유가족에 가까운 이들이 왜 박근혜랑 ‘아이덴티파이’(일체감을 갖다)를 해요. 이게 굉장히 이상한 거죠.
어떻게 테러를 옹호해?
미성년자 테러사건
제대로 처벌 안하면
서북청년단 더 큰일 할 것 허: 박근혜 대통령을 ‘아이고, 불쌍한 고아’로 생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까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문제예요. 그게 일베라는 화장실을 통해서 표출되는 거고. 일베 주축은 사실 신물 난 사람이거든요. 보통 그들이 ‘씹선비’에 대한 환멸로 뭉쳐진 사람들인데 개그화를 떠나서 정치세력화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죠. 임: 얼마 전엔 한 토크콘서트에서 고등학생이 폭탄 테러를 하기도 했죠. 그런데 박 대통령이 ‘종북콘서트’를 호명했어요. 허: 테러를 옹호하면 과격분자지! 테러가 일어났는데도 종북콘서트 얘기만…. 그렇게 급진적인 사람이랑 같이 살기 싫어. 어떻게 테러를 옹호해? 미성년자 테러 사건 이거 제대로 처벌 안 되면, 지탄받지 않으면 내년엔 서북청년단이 더 큰 일 할 거예요. 진: 일베의 테러는 게임화되어 있어요. 가상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 신나게 게임을 했고 여기서 자기는 열사고. 사회 전체는 안 보이는 거죠. 임: ‘동아, 조선의 두 종편,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진중권 교수가 트위터에도 썼지만 올해 보수 신문이 보유한 종 합편성채널의 활약도 대단했죠. 진: 채널에이, 티브이조선은 북한 방송 같아. 인민재판도 하는 것 같고 여기가 남조선이야 북조선이야. 허: 티브이조선 디자인도 웃겨요. 화면 톤도 이상하고. 남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포르노 같아. 진: 김정은의 사생팬 같아요. 일거수일투족에 관심 갖고. 임: 티브이조선에서 김정은보다 더 살이 찐 앵커가 “더 뚱뚱해진 김정은… 건강 적신호?”라는 뉴스를 내보내는 장면은 올해의 인기 짤방이었죠. (일동 웃음) 정: 전 그런 거 나오면 누구나 우리처럼 웃을 줄 알았거든요. 처음에 말도 안 되는 방송 할 때 시청률 낮으면 돈 없어서 곧 문 닫겠지, 그런데 식당에 가면 전부 다 채널에이와 티브이조선을 틀어 놓는 거예요. 거기 동조하는 사람도 있고. 허: 우리 스스로도 상식인이라고 자처하는 패거리들 안에서 자족해서 그렇죠. 방송통신위원회의 2013년 ‘방송평가 종편부문’ 1위가 티브이조선이라는 게 팩트고 현실이죠. 진: 종편 입장에서는 정치 얘기 안 하면 망해요. 아무리 못해도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타깃을 해가지고 특화를 한 거야. 박근혜 지지층이 노년층이에요. 젊은 사람들의 미래 결정권이 그들한테 있다는 거죠. 허: 머리를 잘 썼어.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진: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 정치구조도 옛날로 바꾼 거고. 이 정부에서는 헌정사상 최초라는 말이 많아요. 과거로 혁신하는, 그게 파시즘이거든. 티브이조선은
김정은 사생팬 같아
사장님도 부장님도
자기가 장그래라고 생각해 허: 이 기획 안 좋다. 너무 성질나네. 최근에 제가 슬프게 유의미한 자료를 봤는데 서울시 집계로 10~30대 사망률 1위는 자살이고 40~60대 사망률 1위는 암이야. 못 버티면 자살하는 거고 버티면 암이야.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고. 이런 화병 나는 기획을 왜 하는 거야.
진: 무기력한 거 같아요. 외환위기 때만 해도 확신이 있었죠,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안 좋은 신호는 오는데 돌파할 수 있다, 내 말이 먹힌다 그런 게 있었던 거죠. 근데 이제는 피드백이 없는 거야, 그래 정치권, 니네들 알아서 해라, 어차피 말해봐야 소용없다 싶은 거죠.
허: 이명박씨 같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부조리를 부조리라 얘기해서 나아질 수 있다고 기대하겠냐고.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도 가십거리처럼 소비되는 사회예요. 대한항공 건만 해도 ‘사무장 좆대써’ 이런 거지.
정: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싶은 거죠. 토론 프로그램 안 본 지 오래됐어요.
임: 땅콩 회항 사건은 어떻게 보셨나요?
진: 사건도 사건이지만 해명하는 가운데 대한항공의 문제가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 거죠. 해명하는 방식, 그게 더 사람들을 열받게 했죠.
정: 조양호 회장이 사과할 때 자기 부덕의 소치라고, 내가 교육을 잘못 시켰으니 아비인 나를 비난하라고 사과하는 거예요.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한 회사 임원의 행동에 대해서 왜 ‘오너’가 그런 식으로 사과를 하는지. 우리 임원이 이런 걸 잘못했다고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 운운만….
허: 마침 우리 사회에 잘못된 사과 방식에 대한 피로가 쌓여 있었던 거예요. 엉뚱한 사람한테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런 일에 질려 있었던 거거든요. 갑질에 대한 분노도 있고. 언론도 사건을 더 가십화해서 아주 뭐 경쟁적으로 내놓고. 그러니 조현아 귀신 사진도 나오고, 화장실 청소하랬다는 칼럼도 나오는 거죠.
임: 갑에 분노하고 을에 공감하는 흐름은 드라마 <미생>의 인기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죠.
진: 근데 모든 갑들이 자기가 미생이라고 생각해. 그게 황당한 거예요.
허: 그게 데이터로도 있어요. 당신은 어떤 입장이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압도적으로 “내가 장그래”라고 답했대요. 사장님도 부장님도 자기가 장그래라는 거예요.
진: 내가 그렇게 컸다는 얘기일 수도 있어.
허: 사람들은 장그래가 정규직이 되기를 바라잖아요. 갑이 되고 싶은 거예요. ‘완생’이 되려면 수반되는 고통이란 담론 자체에 을은 싫고 갑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투영되는 거죠.
정: 사람들은 오히려 <미생>을 개인의 처세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어떻게 처세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래서 <미생>자체를 자기계발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싶네요.
임: 실제로 드라마 밖에서는 이 추운 날씨에도 쌍용차 해고자들이 고공 농성을 하고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도 이어지고 있죠. 그런데 <미생>의 장그래가 정규직이 됐으면 하는 관심과 현실 속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에는 차이가 커요.
정: 그것과 이것이 같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드라마랑 쌍차랑. 주변 사람들과 쌍차 이야기를 하면 ‘기업은 살아야지 그래야 다른 노동자들도 살지 않겠냐’란 얘기를 해요.
허: 결국 못났던 사람이 잘난 사람이 되는, 을이 갑이 되는, 모두가 장그래의 결말처럼 성공하고 싶은 거잖아요. 관료제 판타지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어요. 원작과는 달리 드라마에서는.
진: 네가 잘하면 되는 거야, 그런 관점이 있죠.
허: 웃겨요. 보면 본인들한테 결핍되어 있는 것들, 취업·연애·출산·육아 등을 예능으로 해결하는 시대예요. 현실에서 포기해버린 것들을 이제 그냥 예능으로 봐요.
임: 군대에서 잠 못 자는 고문 같은 훈련 받는 장면도 예능으로 나오죠.
허: 올해 윤 일병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런데도 <진짜 사나이>가 인기를 끌었고. 군대 시스템 자체가 암덩어리고 부패의 온상이어서 군대 간 청년들을 반쯤 부패하게 만들어서 사회로 내보내는 시스템인데. 그걸 비난하면 “우리 군대는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것처럼 건강해, 윤 일병 사건 같은 건 안 일어나” 이래요. 언제든지 누구든지 윤 일병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는 이해를 못하고.
정: <진짜 사나이>든 <우정의 무대>든, 저는 군대를 어떤 형식으로라도 방송에서 다루는 것에 반대해요. 왜곡하고 미화시켜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 그나저나 ‘허니버터칩’은 먹어보셨나요? 정말 왜 이렇게까지 난리죠?
허: 아주 어렵게 일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경험, 그걸 자랑하는 거죠. 경험 소비라고 해야 하나.
진: 희소성이 생긴 거야.
정: “유명해지기 전에 사먹어 봤는데 별거 없었어”와 “사람들이 난리를 치니까 나도 먹어보고 싶어” 두 가지 심리가 공존하는 거예요.
진: 남의 욕망을 욕망하는 거죠.
허: <인터스텔라>아이맥스관 앞에서 허니버터칩 먹고 있으면 ‘나는 왕이다’ 이런 거지.
임: 자, 그럼 ‘올해 우릴 제일 욕보인 ×’ 남녀 부문을 선정해보죠.
진: 아니, 여성 부문은 우리가 누굴 뽑든 누군지 다 알잖아요. 조현아씨를 애써 뽑더라도 다들 진짜 주인공을 아는데. 올 한 해 패션쇼만 하신 그분. 그분의 패션만으로 달력을 만들어도 되겠다. 정무적 해결은 김기춘씨나 비서진, 문고리 등이 하고 각하는 삘 나오는 데만 돌리는 건지…. 이건 퍼스트레이디 역할도 아니고 아주 이상한 걸 시키는 거야.
정: 인형 가지고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은 것처럼.
허: 영국 여왕 역할을 하고 있는 거 같잖아.
진: 입헌군주제의 군주야. 유체 이탈 화법이 이래서 나오는 거야. 당신들 뭐 하는 거야. 타이 국왕이 정치권 꾸짖듯이.
임: 전여옥씨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마이피플’로 청와대를 ‘마이 하우스’로 여긴다고 비판했던 책 내용이 새삼 화제가 되며 전여옥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었죠.
사죄인듯 사죄 아닌
사죄 같지도 않은
너님들만 넘쳤던 한해
주체도 내용도 삑사리 일동: (정색하며) 그립지는 않습니다.(웃음) 임: 남성 부문은 후보가 누가 있을까요? 진: 문창극씨 있지 않나? 윤창중씨도 올핸가요? 정: 1~3월 일은 옛날 일 같아요. 허: 나는 엠비 특검 할 때까지 매년 엠비를 뽑을 거야. 엠비는 반드시 불행해져야 돼. 상징적으로라도. 그래야 우리 사회가 희망을 갖지. 언젠가는 그래도, 라는. 정: 맞아, 우리 사회는 아주 나쁜 놈들이 벌을 받은 적이 없어. 진: 제가 박근혜 정부 딱 하나 평가하는 건, 쓸 돈이 없어서 돈 못 쓰는 거. 그거 하나는 내가 높이 평가해요. 우리 경제가 한 건을 해야 하는 타이밍, 예를 들어 김대중씨가 외환위기 상황에서 ‘벤처’를 했거든요. 거품이 많긴 하지만 끌고 온 거야. 그런데 또 이런 타이밍이 왔을 때 엠비가 삽질을 한 거야.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꿀 돈을 4대강에 다 써버린 거죠.
정: 동료들끼리도 말해요. 예산을 4대강 같은 데 다 써버리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냐고.
진: 손녀 같아서 캐디를 성추행했다는 박희태씨를 뽑을까도 했는데 말이죠. 이명박씨는 그냥 봐주려고 했는데 얼마 전 “구름 같은 이야기”라는 발언 한마디에….
허: 로봇물고기, 이건 무슨 터미네이터야. 근데 얼마 전에 뉴스를 보는데 그분께서 웃고 있더라고요. 이 ××, 편하게 늙는 거 못 보겠어. 아니, 근데 무슨 욕보인 인물 남녀 부문에 전·현직 대통령이 나란히 뽑히나, 아오~!
임: 그럼 욕본 2014년, 세 분이 뽑은 올해의 단어는?
진: 멘붕. 올해 정말 심하네요. 세월호가 멘붕을 주고, 신해철이 멘붕을 주고. 세월호 당시 악몽을 세 번이나 꿨어요. 아이들을 못 구하는. 신해철씨와는 <속사정 쌀롱>이란 예능 프로그램 막 함께 시작했는데. 다음주에 또 보는 사람인데 죽었대. 안 믿어져요.
정: 사죄. 아니, ‘사죄인 듯 사죄 아닌 사죄 같지도 않은 너’가 넘쳤던 한 해. 사과의 주체도 내용도 다 틀렸던 한 해예요.
허: 죽음.
임: 예능으로 가려 해도 다큐로 가네요. 그럼 2015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진: 허지웅씨가 책 냈잖아. 버텨야죠. 예능을 보면서 버티는 거죠.(웃음)
허: 안 그래도 예능에서 진중권 선생님 캐릭터 만드느라 힘들어요.(웃음) 버틴다는 게 귀 닫고 사는 게 아니라 버티려면 계속 싸워야죠. 안 싸우고 버티면 도태돼, 나자빠져. 계속 싸워야죠.
정: 요즘 국가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의 문제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는 냉소가 심했었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최근 출판계에 쌤앤파커스 성추행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나섰던 건 그 때문이에요. 이 작은 문제조차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고 끝나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야죠.
진행·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장소 협찬 더 플라자
8명이 헌법을 새로 정한 거라고
12월19일이 새 제헌절이야 임지선(이하 임): 아무리 좋은 기억만 남겨보려 해도 욕 나오는 연말입니다. 하필 대담이 오늘이라서 더 욕이 나오네요.
진중권
허지웅
정유민
미성년자 테러사건
제대로 처벌 안하면
서북청년단 더 큰일 할 것 허: 박근혜 대통령을 ‘아이고, 불쌍한 고아’로 생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까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문제예요. 그게 일베라는 화장실을 통해서 표출되는 거고. 일베 주축은 사실 신물 난 사람이거든요. 보통 그들이 ‘씹선비’에 대한 환멸로 뭉쳐진 사람들인데 개그화를 떠나서 정치세력화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죠. 임: 얼마 전엔 한 토크콘서트에서 고등학생이 폭탄 테러를 하기도 했죠. 그런데 박 대통령이 ‘종북콘서트’를 호명했어요. 허: 테러를 옹호하면 과격분자지! 테러가 일어났는데도 종북콘서트 얘기만…. 그렇게 급진적인 사람이랑 같이 살기 싫어. 어떻게 테러를 옹호해? 미성년자 테러 사건 이거 제대로 처벌 안 되면, 지탄받지 않으면 내년엔 서북청년단이 더 큰 일 할 거예요. 진: 일베의 테러는 게임화되어 있어요. 가상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 신나게 게임을 했고 여기서 자기는 열사고. 사회 전체는 안 보이는 거죠. 임: ‘동아, 조선의 두 종편,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진중권 교수가 트위터에도 썼지만 올해 보수 신문이 보유한 종 합편성채널의 활약도 대단했죠. 진: 채널에이, 티브이조선은 북한 방송 같아. 인민재판도 하는 것 같고 여기가 남조선이야 북조선이야. 허: 티브이조선 디자인도 웃겨요. 화면 톤도 이상하고. 남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포르노 같아. 진: 김정은의 사생팬 같아요. 일거수일투족에 관심 갖고. 임: 티브이조선에서 김정은보다 더 살이 찐 앵커가 “더 뚱뚱해진 김정은… 건강 적신호?”라는 뉴스를 내보내는 장면은 올해의 인기 짤방이었죠. (일동 웃음) 정: 전 그런 거 나오면 누구나 우리처럼 웃을 줄 알았거든요. 처음에 말도 안 되는 방송 할 때 시청률 낮으면 돈 없어서 곧 문 닫겠지, 그런데 식당에 가면 전부 다 채널에이와 티브이조선을 틀어 놓는 거예요. 거기 동조하는 사람도 있고. 허: 우리 스스로도 상식인이라고 자처하는 패거리들 안에서 자족해서 그렇죠. 방송통신위원회의 2013년 ‘방송평가 종편부문’ 1위가 티브이조선이라는 게 팩트고 현실이죠. 진: 종편 입장에서는 정치 얘기 안 하면 망해요. 아무리 못해도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타깃을 해가지고 특화를 한 거야. 박근혜 지지층이 노년층이에요. 젊은 사람들의 미래 결정권이 그들한테 있다는 거죠. 허: 머리를 잘 썼어.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진: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 정치구조도 옛날로 바꾼 거고. 이 정부에서는 헌정사상 최초라는 말이 많아요. 과거로 혁신하는, 그게 파시즘이거든. 티브이조선은
김정은 사생팬 같아
사장님도 부장님도
자기가 장그래라고 생각해 허: 이 기획 안 좋다. 너무 성질나네. 최근에 제가 슬프게 유의미한 자료를 봤는데 서울시 집계로 10~30대 사망률 1위는 자살이고 40~60대 사망률 1위는 암이야. 못 버티면 자살하는 거고 버티면 암이야.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고. 이런 화병 나는 기획을 왜 하는 거야.
세월호 침몰 9일 후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오바마는 조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검은 넥타이까지 차려입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죄 같지도 않은
너님들만 넘쳤던 한해
주체도 내용도 삑사리 일동: (정색하며) 그립지는 않습니다.(웃음) 임: 남성 부문은 후보가 누가 있을까요? 진: 문창극씨 있지 않나? 윤창중씨도 올핸가요? 정: 1~3월 일은 옛날 일 같아요. 허: 나는 엠비 특검 할 때까지 매년 엠비를 뽑을 거야. 엠비는 반드시 불행해져야 돼. 상징적으로라도. 그래야 우리 사회가 희망을 갖지. 언젠가는 그래도, 라는. 정: 맞아, 우리 사회는 아주 나쁜 놈들이 벌을 받은 적이 없어. 진: 제가 박근혜 정부 딱 하나 평가하는 건, 쓸 돈이 없어서 돈 못 쓰는 거. 그거 하나는 내가 높이 평가해요. 우리 경제가 한 건을 해야 하는 타이밍, 예를 들어 김대중씨가 외환위기 상황에서 ‘벤처’를 했거든요. 거품이 많긴 하지만 끌고 온 거야. 그런데 또 이런 타이밍이 왔을 때 엠비가 삽질을 한 거야.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꿀 돈을 4대강에 다 써버린 거죠.
군대 생활을 그린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샘 해밍턴.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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