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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미다스의 손으로 부활한 10년 경력단절녀

등록 2015-05-13 19:33수정 2015-05-14 15:07

방송인 왕영은씨가 씨제이(CJ)오쇼핑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를 8년 동안 진행해온 힘은 자존심이다.
방송인 왕영은씨가 씨제이(CJ)오쇼핑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를 8년 동안 진행해온 힘은 자존심이다.
[매거진 esc] 스타일
소비자 관점에서 철저히 준비해 매출 정상 달리는 왕년의 ‘뽀미 언니’ 왕영은의 장수비결
“이런 식으로 가격을 올리면 병행(수입)을 당할 수 있겠어요.”(왕영은)

“병행이랑은 구성이 다릅니다. 옵션 차이도 많고.”(상품기획자)

“(고객들이) 저렴한 걸 사지, 추가구성 땜에 살까? 유로는 계속 내려가는데 가격을 올리는 걸 받아들일까?”(왕영은)

“저희도 (독일) 본사 압박이 있어서….”(상품기획자)

“어쨌든 결론은, 압력솥 콤비를 50만원대에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거네. 에이에스(AS)는 어디까지 되는 거예요?”(왕영은)

기획회의 중인 왕영은씨.
기획회의 중인 왕영은씨.
지난 6일 오전 서울 방배동 씨제이오쇼핑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이하 왕톡) 기획회의 현장은 흡사 수습기자가 어설프게 취재한 내용을 캡(수습기자를 포함해 경찰 출입 기자를 통솔하는 기자)이 집요하게 검증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16일에 방송될 예정인 휘슬러 압력솥 세트 구성과 가격 등을 두고 왕톡의 주인공인 방송인 왕영은씨는, 지켜보는 이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로 ‘소비자’의 관점에서 질문을 이어갔다. 처음 접하는 제품도 아닌데 뭘 저런 것까지 따지나 싶기도 했다. 판매사인 휘슬러 상품기획자의 답변 가운데 일리 있다고 생각한 대목이나, 방송 중 보여줄 요리를 뭘로 하고 무대를 어떻게 세팅할지 등 자신이 의견을 내 관철된 사항은 250여쪽짜리 사무용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그가 이렇게 채워 나가는 다이어리는 1년에 3권 정도다. 휘슬러에 이어 회의실에 들어온 포트메리온의 상품기획자는 상품 구성과 가격에서 왕씨와 이견이 커 20여분 만에 회의를 중단하고 되돌아가기도 했다.

“제가 방송 경력이 오래됐어도
유재석 강호동을 이길 순 없잖아요?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에서는
10년 동안 동네 아줌마들이랑
쇼핑 다니며 기른 안목으로
좋은 제품 소개해줄 수 있죠”

사흘 뒤인 9일 오전, 왕톡 방송을 마친 왕씨를 만났다. 왕톡은 2007년 9월 방송을 시작한 뒤 홈쇼핑에서 같은 진행자가 맡고 있는 최장수 프로그램이자, 지난해 매출액이 1285억원, 다른 프로그램 대비 판매율이 1.6배 높은 프로그램이다. 왕톡은 이날도 오전 8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90만원대 헬러 전기레인지, 7만원대 닥터 브로너스 올인원 클렌저 세트, 50만원대 르크루제 주물냄비 세트를 모두 매진시켰다. 헬러 전기레인지는 지난해 1월 방송 때 매출 26억6000만원을 기록해 왕톡 매출 1위를 차지한 제품이기도 하다. ‘뽀미언니’는 어떻게 ‘홈쇼핑의 여왕’이 된 걸까?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 생방송 중인 왕영은씨.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 생방송 중인 왕영은씨.
“결혼하고 나서 아이들 키우느라 10년 동안 방송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이제부터 하는 일은 ‘덤’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 자존심을 다치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애들 시집 장가도 보내야 하는데, 좋지 않게 평가받을 일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이유도 없잖아요. 제가 매출 인센티브 없이 출연료만 받는데도 일주일에 딱 한번만 방송하는 건 그것 때문이에요. 직접 써보고 ‘내 돈 주고 살 만한 물건인가’ 꼼꼼하게 살펴본 뒤 어렵게 어렵게 골라야 좋은 제품을 소개할 수 있거든요. 기획회의 때 그렇게 물어본 것도 그래서예요. 휘슬러는 (방송에서 오랫동안 판매해) 눈 감아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당연히 잘 아는 제품이지만, 항상 처음 보는 것처럼 직접 봐야 해요. 계절이나 날씨, 어떨 땐 내 기분에 따라서 같은 냄비라도 이뻐 보이고 갖고 싶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상품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거나, 다른 채널에서 판매되는 상황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 채 방송을 할 수는 없죠.”

왕씨는 자신의 ‘자존심’이 8년 동안 왕톡을 진행해온 비결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대로 소개한다는 마음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면서 신뢰가 쌓인 것 같다는 설명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새 제품을 방송하기 전에 여섯달~1년 정도 직접 사용해본 뒤 방송을 결정하는데, 유기그릇의 경우엔 직접 써본 뒤 더 편리하도록 디자인 수정을 제안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기획회의 때 펜, 수정액 등이 들어 있던 손가방도 최근 자신이 방송했던 유돈초이이시(EC)2의 사은품 클러치백이었다.

외부의 평가도 비슷했다. 경쟁 홈쇼핑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보통 연예인들은 상품기획자가 가져다주는 제품을 판매만 하는데, 왕영은씨는 자기 프로그램에 애착이 매우 강한 것 같다. 다른 방송인들처럼 임기응변을 잘하고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에 더해, 본인 스스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까지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경쟁사로선 자극이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홈쇼핑 방송은 대본이 없어서, 연예인 쪽에서 보면 얼마든지 편하게 방송을 할 수도 있다. 대본을 외우거나 확인할 필요 없이, 쇼핑호스트가 진행하는 데 맞장구만 쳐주면 한두 시간은 그냥 때울 수 있다”며 “하지만 왕톡이 장수하는 건 왕씨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쇼핑호스트들에게조차 좋은 본보기가 될 정도로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 생방송 중인 왕영은씨.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 생방송 중인 왕영은씨.
사실 홈쇼핑 제품은 질이 낮다는 평가가 적지 않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연예인이 홈쇼핑에 출연하면 ‘생활이 어려워서 그런가 보다’ 여기는 이들도 존재한다. <뽀뽀뽀>와 <젊음의 행진> 엠시(MC)로 1980~1990년대 청춘스타로 손꼽혔던 그가 은퇴 뒤 10년 만에 홈쇼핑을 시작할 때도 그런 시각이 있었다. “홈쇼핑 개국한 뒤 여기저기서 방송 진행 요청이 왔지만 다 거절했어요. 2006년에 라디오로 컴백할 때도, 라디오는 듣는 사람들만 듣는 거니까 조용히 그것만 하려고 했죠. 쉬는 동안 생활이 어렵지도 않았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제 개인사를 밝히는 것도 싫었고요. 그러다 아는 분 소개로 씨제이오쇼핑 쪽을 만나, 물건을 판다는 느낌보다는 살림하는 여자들끼리 토크쇼를 한다는 느낌으로 방송을 하게 됐어요. 제가 방송 경력이 아무리 오래됐어도 유재석이나 강호동을 이길 순 없잖아요? 하지만 왕톡에선 제가 10년 동안 동네 아줌마들이랑 쇼핑 다니고 이쁜 거 보러 다니면서 기른 안목으로 고객들에게 좋은 제품을 소개해줄 수 있고, 그에 대한 고객의 반응은 매출액으로 그대로 확인돼요. 전 왕톡이 독보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그게 깨지기 전까지만 방송을 할 거예요.”

그에게 왕톡이 ‘정보-구매’라는 고객과의 교환 과정을 통해 자존심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한국방송>(KBS) 2라디오 ‘왕영은의 해피타임 4시’는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다. 오후 4시는 라디오의 취약시간대로 여겨지는데, 이 프로그램엔 하루 평균 1000여건의 고민상담 문자메시지가 쇄도한다. 프로그램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손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는 “저한테 속을 털어놓는 글들이 이렇게 많아요. 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왕영은씨, 주말 잘 보내고 내일(토요일) 왕톡에서 만나요’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고맙고, 저 자신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요”라고 했다. 10년간의 ‘경력단절녀’ 생활을 지나 잘나가는 방송인으로 자리잡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내가 잘하는 게 뭔지를 알고, 재능을 길러야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동네 아줌마들과 보냈던 시간으로부터 지금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재능을 만들어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씨제이오쇼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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