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야구팬들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은 엘지 트윈스의 전신인 엠비시 청룡의 백인천(사진 왼쪽) 감독 겸 선수와 이종도 선수. 출처 <한국프로야구화보>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나의 야구 이야기
‘야구와 나’ 독자 글 공모에서 홈런 터뜨린 글 5편
‘야구와 나’ 독자 글 공모에서 홈런 터뜨린 글 5편
올해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났다. 한국 시리즈까지 아직 ‘가을야구’는 남아 있지만,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달래는 이가 더 많을 터. 그래서 준비했다. ‘야구와 나’를 주제로 독자들이 <한겨레>에 보내온 글 5편을 싣는다. 글이 실린 다섯 분에겐 베르사체의 새 향수 ‘에로스 뿌르 팜므’를 보내드린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1982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개막식 장면. 출처 <한국프로야구화보>
삼성이 이겼다, 나의 야구가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야구’가 시작됐다. 대구가 고향인 나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한다. 1982년 원년 멤버들의 이름은 지금도 읊을 수 있다. 투수 황규봉·이선희·권영호·성낙수, 포수 이만수, 1루수 함학수, 2루수 배대웅, 3루수 김한근·천보성, 유격수 오대석, 좌익수 정현발, 중견수 장태수, 우익수 허규옥, 지명타자 박정환. 어린 시절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는 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왜? 늘 졌으니까. 82, 84, 86, 87, 90, 93, 2001. 20세기 후반 시작된 삼성의 준우승 행진은 세기가 바뀌어도 계속됐다. 매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슴은 라이온즈 유니폼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2002년 이전까지 초창기 6개 구단 가운데 삼성을 제외한 모든 구단, 심지어 후발주자인 한화까지 모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삼성은 못 했다. 삼성이 기록한 한국시리즈 11연속 패배(86년 3패, 87년 4패, 90년 4패)는 향후 100년 안에 깨지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2002년 가을, 그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당시 회사에서 이승엽-마해영의 랑데부 홈런을 보며 거의 뒤로 넘어갔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버금가는 감동이었다. 당시 관중석에는 30~40대 관중들이 거의 발광에 가까운 발작적 증세를 보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 했고, 치어리더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날 이후, 나의 야구는 끝이 났다. 더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삼성은 올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5연패에 도전한다. 아마 올해도 우승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매년 가을 가슴을 쳤던 그날이 오히려 그립다. 삼성이 야구마저 장악한 시대, 불가측성이 사라진 시대, 이젠 더이상 강자가 절대 패하지 않는 시대, 약자가 어쩌다 강자를 이길 수 없는 시대를 반영하는 듯해 허전하고 씁쓸하다. 삼성 라이온즈만 생각하면 애잔할 수 있었던 그런 날들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저씨/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욕받이 야구팀’ 넥센 파이팅 나는 사실 스포츠는 보는 것도 재미없다. 어릴 적에는 휴일 대낮에 티브이에서 야구중계 하는 게 아주 싫었다. 그 시간에 재미있는 만화를 해달란 말이다! 왜 <은하철도 999>는 아침 8시에 하냐고! 교회 가서 연필을 받아야 하는데.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 출처 <한국프로야구화보>
메이저리그 아나운서의 꿈을 향해 내가 야구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1년이다. 5월5일 어린이날 잠실구장에서 엘지의 경기를 보던 순간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그때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싶은 꼬마였는데, 아빠의 지인께서 티켓을 구해주셔서 야구장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날, 경기가 끝난 뒤 수훈 선수를 인터뷰하는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모습은 어찌나 멋있고 당당해 보이던지. 평생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나의 꿈은 스포츠 아나운서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마음껏 보고 분석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나는 스포츠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해박한 야구 지식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가슴 뛰는 스포츠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 최종 목표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영어로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방송사에서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정말 취재하고 싶은 전지훈련 현장을 찾아가고, 한국 프로야구가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민우/인천 중구 운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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