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양윤정의 패션을 부탁해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 출연한 강동원에게 손석희 앵커는 질문했다. “본인의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가린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나는 그 질문을 바꾸고 싶다.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라는 이미지가 연기에 방해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강동원의 얼굴에는 ‘진심’이 서려 있다. 여린 눈매와 단정한 입술, 낮은 말투와 사투리까지…. 그동안 강동원은 자신이 가진 이 순수한 느낌을 영화 속 캐릭터에 잘 녹여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에 쉽고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강동원의 영화 속 패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늑대의 유혹>에서는 교복을, <형사>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한복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죄수복을 입었다. 이 옷들은 모두 디자인이랄 것이 없어서 배우 강동원의 화려한 외모를 살그머니 눌러줬다. 그러자 관객들은 강동원의 얼굴과 눈빛에 담긴 이야기에 더 빨려들 듯 집중할 수 있었다.
이 가을, 그가 사제복을 입고 관객 앞에 섰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다. 나는 영화 안팎에서 강동원의 세가지 다른 패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가 위험에 빠진 소녀를 구하도록 이끄는 영화 속 강동원의 룩은 검은색 반소매 사제복, 검은색 로퍼, 그리고 검은색 가죽밴드 시계로 일관한다. 이마를 가득 덮은 바가지 머리에 앞에서 언급한 강동원만의 이미지로 ‘강건한 신부’를 완성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홍보용 스틸사진 속 강동원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이런 신부님이라면 하느님과 나만 아는 비밀까지도 고해성사를 하고 싶을 정도다. 그만큼 강하게 캐릭터의 설득력을 갖췄다 할까?
개봉 직전 시사회에 참석한 강동원의 또다른 패션이 인터넷을 점령했다. 애니멀 프린트 롱재킷과 검은색 가죽바지, 굽 높은(요즘은 남성용 신발에도 높은 굽이 많다) 첼시 부츠 차림이다. 나는 이 화려한 룩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언제 어디서나 ‘배우 강동원’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옷 잘 입는 모델 이미지는 배우 강동원의 이미지를 해치는 게 아닐까 싶은 우려. 물론 어느 댓글에도 나 같은 우려는 없었다.
영화 <검은 사제들> 홍보차 제이티비시 <뉴스룸>에 출연한 강동원의 룩은 또 달랐다. 평소 깔끔하고 미니멀한 정장을 입으며 꽃중년의 대표로 꼽히는 손석희 앵커마저 옷에 신경 썼다고 할 만큼 강동원의 출연은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설렘이고 기대였다. 나는 혹시 그가 지난 시사회에서처럼 화려한 스타일을 입고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 개봉 인터뷰라는 이슈에 맞춰 사제복의 연장선상에서 올 블랙 컬러를 선택했고, 다만 칼라 부분만 소재를 달리해 가볍고도 위트 있는 멋스러움을 살렸다. 전체적으로 무척 젠틀한 느낌으로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모습은 내가 기대하는 배우 강동원에 딱 맞았고 흐뭇한 ‘누나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바로 저거다!
우리가 배우들에게 기대하는 패션이란 결국 저런 게 아닐까? 작품은 계속 미루며 공항과 행사장에서 오직 패션만 선보이는 배우, 연기는 뒷전이고 잡지 화보만 찍어 패셔니스타로만 불리는 배우, 드라마 속 패션에 치중해 연기는 보이지도 않는 배우들을 우리는 꽤나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던가. 강동원은 자신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패션을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최적의 요소로 활용할 줄 아는 현명함을 보여줬다. 바로 우리가 찾던 배우이자, 패셔니스타의 진정한 모습으로.
양윤정 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편집장
애니멀 프린트 롱재킷과 검은색 가죽바지, 굽 높은(요즘은 남성용 신발에도 높은 굽이 많다) 첼시 부츠 차림의 배우 강동원. 사진 양윤정 제공
강동원은 영화 개봉 인터뷰라는 이슈에 맞춰 사제복의 연장선상에서 올 블랙 컬러를 선택했고, 다만 칼라 부분만 소재를 달리해 가볍고도 위트 있는 멋스러움을 살렸다. 사진 양윤정 제공
양윤정 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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