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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자 덕질기] 같은 음악, 다른 소리 / 이정국

등록 2016-09-21 18:19수정 2016-09-23 21:25

이정국

esc팀 기자

처음 ‘오디오’라는 기계에 관심이 생긴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피시(PC)통신 하이텔의 한 음악동호회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동호회는 한달에 한번씩 음악 감상회를 열었다. 감상회 주제를 정해, 사회자가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음악을 트는 식이었다. 어느날 감상회에 나가게 됐다. 대부분 대학생과 직장인이었고, 나는 막내였다.

처음 감상회에 나간 날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관중 라이브 공연으로 유명한 ‘핑크플로이드’의 <라이브 앳 폼페이> 영상이 나왔던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장면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소리다. 지금 돌이켜보면, 감상실 음향 시설이 딱히 좋았던 것 같지는 않다. 저음이 너무 강해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으니.

하지만 소리의 매력을 그때 처음 느꼈다. ‘들었다’가 아니라 ‘느꼈다’가 정확할 것이다. 똑같은 음악이 달리 들렸기 때문이다. 실제 내가 폼페이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현장감’이란 말이 실감났다.

매달 음악 감상회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과 더불어, 좋은 오디오를 접하는 기회도 늘어났다. 감상회는 오디오 시스템이 좋은 카페나 음악 감상실을 빌려 진행했다. 장소에 도착하면 오디오부터 살펴봤다. 그러는 사이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레드 제플린의 ‘신스 아이브 빈 러빙 유’(Since I’ve been loving you)는 특히 좋아하는 곡이다. 드러머 존 보넘의 묵직한 드럼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좋은 오디오로 들으면 가슴을 후려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느날 감상회에서 이 곡을 듣게 됐다. 록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카페였다. 곡이 흘러나오는데 처음 듣는 노래인 줄 알았다. 음악이 소리가 아닌 파동으로 다가왔다. 드럼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명치를 얻어 맞은 것처럼 아려왔다. 세포가 각성되는 느낌이랄까.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의 절규와 존 보넘의 강력한 드럼이 어우러지는 클라이맥스에선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 유명한 ‘제이비엘(JBL) 4344’ 스피커였다.

집에 돌아와 갖고 있던 정체불명(공식 발매가 아닌)의 레드 제플린 베스트 앨범(사진)을 들었다. 집집마다 흔히 있던 저가형 ‘전축’으로 말이다. ‘어라, 이게 아닌데.’ 실망감만 커졌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오디오 ‘앓이’가 시작됐다. 어쩌겠는가,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던 도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파트 단지에 누가 오디오 하나 버렸다. 가져가라.”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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