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결혼식’이 작은 결혼식의 인기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결혼식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을 최소화 하려면 하객 수와 쓰레기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델 박현철 <한겨레>기자·직장인 홍성희씨. 예복 협찬 레이첼웨딩.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신랑은 턱시도 대신 보타이 차림의 남방셔츠에 멜빵을 멨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게 뭐지?’ 하객들이 웅성거렸다. 소박한 디자인의 드레스 차림에 안개꽃으로 꾸민 부케를 든 신부가 등장했다.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굳어 있던 신랑신부 부모의 얼굴에서 그늘이 걷혔다. 신랑과 신부는 가을 햇살보다 밝게 빛났다.
지난 9일 오후 5시에 열린 이 ‘특별한’ 결혼식의 주인공 성지훈(38·프리랜서 강사)씨와 신희정(34·어린이집 교사)씨. 7년이 넘는 연애 끝에 올린 이들의 결혼식은 뭔가 달랐다. 식장은 서울 성북동 주택가의 평범한 2층집 앞마당, 고급 호텔이나 판박이 웨딩홀이 아니었다. 활짝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식장 풍경도 이채로웠다. 현란한 조명, 꽃길, 주례가 서는 단상, 양가 부모님이 밝힐 촛대는 보이지 않았다. 신부 신씨는 옥수수 천으로 만든 친환경 드레스를 입었다. 신랑 성씨도 턱시도가 아닌 일상복을 활용했다. 방명록은 보드게임 도구인 ‘젠가’로 대체했고, 예물반지는 목공예점에 체리나무로 주문해 맞췄다.
주차 전쟁도 없었다. 깜짝 추위 탓에 하객들의 옷차림은 옷깃을 꽁꽁 여민 상태였지만,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자가용을 타지 않고 걸어서 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객들을 맞은 건 부부 인디밴드 ‘복태와 한군’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었다. 5년 전 이곳에서 결혼식을 치른 이들은 기꺼이 이날 결혼식 사회자를 자처했다. 복태가 말했다. “식장이 아담하고 좋지요? 정예 멤버만 초대하는 작은 결혼식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축하해주고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에코 웨딩’(Eco Wedding)을 선택한 두 분의 결혼식을 시작합니다!”
‘에코 웨딩’은 말 그대로 ‘친환경 결혼식’을 뜻한다. 결혼식 때문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결혼식에 필요한 소품을 친환경적인 것들로 바꿔 온실가스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시도다.
신부 신씨가 에코 웨딩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북극해의 만년설이 녹아 갈 곳 없이 헤매는 북극곰을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걸 본 뒤로 환경, 난민, 동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결혼식을 작고 소박하게 치르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 에코 웨딩을 알게 됐어요. 결혼식 본래 취지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는 거니까 일석이조잖아요.”
에코 웨딩을 치르려면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걷어내야 했다. 하객을 50명으로 제한하고, 이들에게 대중교통 이용을 당부했다. 식장을 꾸미는 장식품을 없애고, 조명도 최소화했다. 스튜디오 촬영은 물론이고, 신혼여행도 생략했다. 성대하게, 많은 하객을 모시고 싶어 했던 집안 어른들은 예식 전날까지 이런 결혼식을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새 부부와 친구, 친지들이 어우러져 그들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도 흡족해했다.
주례 없이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1시간 남짓의 예식 동안, 시간에 쫓겨 황급히 피로연장에서 밥을 먹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하객들은 신랑과 신부에게만 집중했다. “서로 칭찬에 인색하지 마라”, “싸워도 오래 끌지 말고, 각방은 절대 쓰지 마라”는 덕담을 건넸다.
신랑은 “일주일에 3번 이상 요리를 해주고, 최신 취향의 옷을 골라주겠다”고 약속했다. 신부는 “40살이 되어도 동안을 유지하고, 남편의 축구 사랑에 동참하겠다”고 화답했다. 결혼식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신씨가 말했다. “너무 만족스러워요. 내용, 분위기, 음식 모두 좋았다고 다들 부러워했어요. 친구들도 이렇게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이 정도 반응이면 에코 웨딩도 ‘핫’해지지 않을까요?”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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