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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살아있다, 토르가 포효한다

등록 2016-11-10 11:22수정 2016-11-10 11:42

[ESC] 라이프
낯설지만 익숙한 ‘디오라마’의 세계
서울 왕십리 ‘마블 스토어’ 에 전시 중인 디오라마. 이정국 기자
서울 왕십리 ‘마블 스토어’ 에 전시 중인 디오라마. 이정국 기자
“우와!” “진짜 멋있다!”

영화 <어벤저스> 속 영웅 아이언맨과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가 뒤엉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평면인 영화와 달리 입체감 있는 피규어들이, 생생하게 재현된 배경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입에선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이곳은 마블 영웅들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디오라마’가 전시된 서울 왕십리의 마블 스토어. 지난해 팝업 스토어로 열었는데, 워낙 인기가 높아 지난달 공간을 더 확장해 정식 매장을 열었다.

디오라마는 정교하게 제작한 모형과 배경으로 어떤 장면을 재현해놓은 것을 일컫는다. 피규어 수집가 등 마니아 사이에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직 산업적으로는 걸음마 단계다. 마블 스토어의 디오라마도 홍콩의 세계적 피규어 업체인 ‘핫토이스’한테서 컨설팅을 받았다. 하지만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법. 키덜트 문화가 크게 확산되고 즐기는 이들이 늘면서 독학으로 디오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디오라마, 대중 속으로

최근 배우 박해진은 한 티브이 토크쇼에서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디오라마를 만드는 게 취미”라고 밝혔다. 그도 피규어를 수집하는 ‘덕후’로 알려져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건프라, 레고 등으로 디오라마 정보를 교류하는 카페들이 많이 개설돼 있다. “불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면솜을 뭉쳐서 빨강과 노랑 물감을 섞어서 바르세요”라는 깨알팁이 올라온다. 이렇듯 피규어를 모아 오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피규어를 멋지게 포장할 디오라마는 필수 관심사다.

디오라마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서울명동 엘세븐(L7) 호텔의 경우 레고로 만든 디오라마를 올여름 동안 특별 전시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제주 롯데호텔에서 9월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엔 세계 최대 규모(2200㎡)의 디오라마 테마파크 ‘디오라마 월드’가 개장하기도 했다. 이곳은 기차나 자동차 등 현실 세계를 축소한 디오라마를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키덜트페어, ‘아트토이 컬처’ 등 각종 피규어 전시회에서 디오라마가 전시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디오라마가 대중들에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 왕십리 ‘마블 스토어’ 에 전시 중인 디오라마. 이정국 기자
서울 왕십리 ‘마블 스토어’ 에 전시 중인 디오라마. 이정국 기자
용어의 생소함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구나 어릴 때 디오라마를 만든 적이 있다. 탱크나 로봇 같은 각종 프라모델이나 레고, ‘인형의 집’도 일종의 디오라마다. 물론 조립 자체를 디오라마라고 하지는 않는다. 모래 위에 탱크를 올려놓아 사막 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미미인형이 요리하는 것처럼 ‘인형의 집’ 조리대 앞에 세워두거나, 레고로 우주기지·공사현장 등을 재창조하는 행위가 모두 디오라마다.

어쨌든 디오라마는 생동감이 핵심이다.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어릴 때를 떠올려보자. 나름 현실감 있게 보이게 하려고 피규어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거나, 미미가 프라이팬을 뒤집는 것처럼 팔을 들어 올리지 않았던가. 그게 바로 좀더 생생하게 보이게끔 하는 장치다. 마블 스토어 관계자는 “배경뿐만 아니라 조명, 피규어의 동작 등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특히 피규어의 손이나 다리 위치 등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의 손길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모형·배경 정교하게 제작해
영화 속 장면 재현한 ‘예술’
취미로 피규어 수집하다
‘생동감’ 살리려 빠져들기도

재미로 시작해 전문가 수준으로

최근에 와 디오라마는 점점 커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개인 취미를 넘어선 예술의 경지에 이른 작품들도 나온다. 15년차 미술감독인 신언엽(37)씨가 대표적이다. 드라마 <하얀 거탑>, 영화 <엠>(M), <이중간첩> 등의 세트 제작에 참여한 그는 지난 5월 ‘아트토이 컬처’ 전시에도 작품을 낸 디오라마 전문가다.

시작은 피규어였다. 선반 위에 피규어를 올려놓고 바라보기를 3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00개가 넘는 피규어를 쳐다보던 2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재미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서 있는 피규어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피규어를 만들고 싶었다. 미술감독 경험을 살려 피규어를 놓을 배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디오라마는 아직 정식 교육기관이 없다. 순전히 자신의 ‘감’을 믿어야 한다. 낮에 미술감독 일을 마치고 오면 작업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만들고 부수기를 1년 넘게 했다. 그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성취감이 매우 크다. 어찌 보면 정답이 없어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좀더 재밌게 감상하자는 욕망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신나게 해주는 경지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안에 있는 그의 작업실 겸 전시장은 평일 낮 시간임에도 많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보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터뜨릴 정도로 완성도 높은 디오라마 작품들은 신씨의 본업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특히 영화 <다크나이트>의 장면을 구현한 디오라마 앞에선 관람객 대부분이 한동안 뚫어지게 보며 “대박이다”를 외쳤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신언엽씨 제공
<다크나이트 라이즈>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신언엽씨 제공
영화 <다크나이트> 속 배트맨 벙커를 재현한 디오라마. 신언엽씨 제공
영화 <다크나이트> 속 배트맨 벙커를 재현한 디오라마. 신언엽씨 제공
그가 디오라마 제작 단계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기획’이다. 어떻게 하면 장면을 잘 구현할 수 있을까, 재료는 어떤 것을 쓸까 같은 구상 말이다. 기획을 철저하게 해야 비용과 시간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의 작업실 벽은 영화 속 장면 사진들로 가득하다. 장면을 보면서 계속 구상을 한다. 그는 “가장 고통스러운 게 기획 단계”라고 말한다. 막상 조립하고 색칠하는 실제 작업은 “즐거운 과정”이며 별로 힘들지도 않다고 한다.

요즘 그는 피규어조차 출시가 안 된 영화 <매드맥스>의 한 장면을 디오라마로 만들고 있다. 영화 속에서 기타리스트가 매달려 있던 큰 트럭의 바퀴를 보여주며 “바퀴 휠 보이시죠. 이거 반찬 포장하는 용기 뚜껑이에요”라고 말했다. 본인의 손재주만 있으면 재료의 종류는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프린터 카트리지나 전선, 전구 등도 전부 디오라마 배경을 만드는 소재로 사용된다.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도 그는 을지로와 청계천 등지를 밤마다 돌아다니면서 땅에 굴러다니는 아크릴이나 스티로폼 같은 재료들을 주워 온다고 했다.

신언엽씨가 최근 제작 중인 <매드맥스> 디오라마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신언엽씨가 최근 제작 중인 <매드맥스> 디오라마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알리다 보니, ‘나도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의 문의도 종종 받는다. 그는 “돈 벌려고 시작하면 안 된다. 조금 완성도가 좋아지면 ‘팔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렇게 팔기 시작하면 자기 작품도 없어지고, 성취감도 줄어든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취미로 해보고 싶다면? “레고처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들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영화 <다크나이트>의 한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신언엽씨 제공
영화 <다크나이트>의 한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신언엽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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