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 사진에 미신적 사고를 보여주는 박 대통령의 어록 등을 부적 형태로 합성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1인당 국민소득 2만7천달러 시대. 압축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신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샤먼 왕국’으로 조롱받고 있다. ‘청와대 굿판’, ‘접신과 주술’, ‘영세교’ 같은 단어가 공공연히 회자된다. 국가의 재화와 권력의 분배, 문화산업은 물론 외교와 국방, 대통령의 연설문에 이르기까지 사이비교주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의 ‘기운’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들에게 영적으로 의탁한 박근혜 대통령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미신일체’ 사회처럼 보인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어떻게 미신이 판을 칠 수 있느냐”, “어떻게 대통령이 미신 따위에 빠져 나라를 이토록 말아먹을 수 있느냐” 식의 자조까지 나온다.
이렇게 ‘샤머니즘’이 조롱처럼 소비되는 상황이지만, 사실 샤머니즘은 우리의 삶이다. 미신도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태고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샤머니즘과 미신의 자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21세기,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기계 인간’이 현실화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샤머니즘과 미신은 우리의 엄연한 삶이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대한민국 무당의 수는 최소 30만명에서 80만명에 이른다. 누구나 시험을 보기 전에는 미역국을 먹지 않으며, 입시철이 되면 부적을 쓰려는 학부모들로 신당이 붐빈다. 이사할 때면 손 없는 날인 길일을 택하려 애쓰고, 아이의 이름 하나에도 의미와 철학과 기원을 담는다. 기업들이 중대사를 결정할 때나 주요 인사를 채용할 때 점쟁이와 관상가의 자문을 받아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후보자들 역시 선거철이면 무당을 찾아가 치성을 드린다.
기원과 해원, 공동체의 유산인 샤머니즘 또는 미신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샤머니즘을 빙자한 ‘사교’에 기대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과 이권을 나눠 먹고, 사설정부화된 국가를 방조하거나 허용하면서 온갖 악행과 기행을 일삼은 권력자들이다. 그런데 근본도 없고 신내림 받은 적도 없는 최순실이 단지 ‘무당’이라 불린다는 사실 때문에 도맷금으로 취급받는 무당들은 서글프고 억울하다고 말한다.
샤머니즘과 미신의 자장 속에서 살아가는 건 우리나 박근혜 대통령이나 매한가지다. 다만 우리는 누구처럼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게 권한과 책무를 위임하고, 그러면서도 그와 결탁해 재벌의 멱살을 잡고 돈을 뜯거나 재벌들과 음험한 뒷거래를 하지는 않는다. 언론을 쥐락펴락하며 유신의 망령을 불러일으키지도, 한-일 군사정보협정 같은 중대 사안을 막무가내식으로 몰아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 존재만으로도 ‘미신 같은’ 대통령이다. 그의 행적을 매개로 우리의 삶에서 미신적인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봤다. 더불어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무당들의 목소리도 들었다. 영매로, 해원의 중개자로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온 그들의 목소리다.
강나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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