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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줄까?

등록 2016-11-17 11:53수정 2016-11-17 14:23

[ESC] 커버스토리
심리학으로 풀어본 우리 안의 ‘미신’ 작동법

수험생에 미역국 대신 엿 주고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건
미신적 사고의 전형이자
불안·무력감 피하려는 시도
이하 작가의 작품 ‘오늘의 풍자일기 2016년 2월10일’. 이하 작가 제공
이하 작가의 작품 ‘오늘의 풍자일기 2016년 2월10일’. 이하 작가 제공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언제나 나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씨(최순실씨의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 문장이 아니었을까. 박 대통령이 최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 육영수씨가 숨진 지 여섯달 뒤인 1975년 2월 그가 보낸 ‘현몽 편지’로 알려져 있다. 그 편지엔 최씨 꿈에 육씨가 나와 ‘내가 죽은 것은 딸을 지도자로 만들려고인데, 이런 뜻을 모르고 슬퍼만 하고 있으니 나를 대신해 이 뜻을 전해달라’는 내용과 함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최씨는 육씨의 표정과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냈고, 그때부터 박 대통령은 최씨를 맹신한 것으로 전해진다.

왜 그랬을까? 서강대 공대를 수석 졸업한 ‘능력자’였던 영애님이, 이공계 교수가 꿈이자 부전공은 물리학이며 평균평점이 4점 만점에 3.82에 달했을 만큼 ‘빼어난 과학도’였던 영애님이 정말로 최씨를 어머니의 현신쯤으로 여겼던 걸까?

박 대통령 본인 말고는 정확한 답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 아스트랄한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있긴 있다. 미신, 좀더 엄밀하게 말해 우리 삶에서 미신적 사고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혼이 비정상인 듯 보이는’ 최태민에 대한 영애의 무한신뢰 이유를 유추해볼 수는 있다.

전통 종교인 무속신앙과 다르게, 미신은 말 그대로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데 잘못된 믿음이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신뢰를 주고, 나아가 확신으로 굳어지는 데는 몇가지 법칙이 작용한다.

먼저 ‘유사법칙’, 즉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믿음이다. 수험생들에게 주는 선물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대 맞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컵밥 미역국’이나 ‘3분 미역국’ 따위를 선물하지는 않는다. 엿이나 떡 같은 선물만 준다. 미끈미끈한 미역은 시험에서의 미끄러짐을, 쫀득쫀득한 음식은 ‘찰싹 붙는 결과’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패러디한 한국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 에스비에스 <러닝맨>, 문화방송 <무한도전>의 장면들(위부터). 각 방송 화면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패러디한 한국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 에스비에스 <러닝맨>, 문화방송 <무한도전>의 장면들(위부터). 각 방송 화면 갈무리
스코틀랜드 문화인류학자인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미신과 주술, 신화를 다룬 저서 <황금가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에이(A)의 사진, 에이와 닮은 인형, 에이의 동상 같은 상징물들이 곧 에이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거나 에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까지 믿는 것은 ‘유사법칙’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겪는 ‘미신적 사고’로, ‘에이처럼 보이는 것’을 ‘에이 자체’로 잘못 인식하는 뇌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프레이저의 관점에서 보면,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서 헤어날 수 없었던 건 전형적인 유사법칙의 사례다. 박근혜를 찍으면 박정희 시대와 같은 ‘좋은 시절’이 올 것으로 믿었던 일부 유권자들의 향수, 광화문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둘러싼 논란 역시 유사법칙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당신만은 예외일 것 같은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유사법칙으로 인한 미신적 사고를 한다. 자, 지금부터 사격게임을 한다고 치자. 과녁에는 당신의 부모나 자녀 사진이 꽂혀 있다. 어떻게 하겠는가? 총을 그냥 내려놓겠는가, 아니면 사진일 뿐이니 열심히 쏘겠는가? 반대로, 싫어하는 직장 상사나 친구의 사진이 붙어 있다면? 부담없이 쏘고, 억눌렸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지 않겠나.

이런 금기라면 또 어떤가. 애인한테는 신발 사주면 안 돼(도망가), 닭 날개도 먹이면 안 돼(바람나), 에어컨·선풍기는 혼수로 하는 게 아니야(바람나), 임신부는 오리고기 먹지 마(아기 손발가락이 붙어), 말띠·호랑이띠·용띠 여자는 곤란해(팔자가 세), 머리가 쌍가마면 쌍가마 타(두 번 결혼해)….

유사법칙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지 않으면 미신적 사고의 예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신적 사고의 법칙을 분석해온 미국 심리학 전문 저널리스트 매슈 허트슨에 따르면 운동선수들의 징크스(착각상관과 확증편향), 유명인사의 애장품을 간직하면 그 사람과 유대감이 생겼다고 착각하는 느낌(접촉 법칙), 유명한 범죄자가 자신과 동명이인이면 개명하고 싶어 하는 심리(이름에 따른 실재), 심지어 ‘똥’을 ‘덩’ 혹은 ‘볼일’이라고 표현하거나 오줌을 ‘쉬’라고 표현하는 것(금기어)까지도 모두 미신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13일의 금요일’이나 숫자 4를 불길하게 여기는 경향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법칙들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핵심은 이렇다. 우주의 물질은 비슷한 것들끼리 서로를 끌어들인다는 것, 한계 없는 정신을 통해 물질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 생각은 곧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소원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시스템을 탓할 필요도, 물리적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긍정적 결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날씬해진 모습을 상상하면 식사량을 줄이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며, 주차공간이 생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자리가 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낙도 어린이 170명을 초청한 어린이날 행사에서 들려주신 “정말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씀, “마음을 집중해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올 신년 인사회 말씀 등 몇몇 어록은 ‘끌어당김의 법칙’에 기댄 미신적 사고의 총체랄 수 있겠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꼭두각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꼭두각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건 당신 자신을 탓해야 한다. 당신은 그만큼 간절하게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의외로 추종세력이 어마어마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처음 주장한 책은 <시크릿>이라는 베스트셀러였는데, 정말이지 ‘전 지구적으로’ 팔려나갔으니 말이다. <시크릿>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별 상관없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끌어당김의 법칙’ 궤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면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 “불가능은 없다”. 이 모든 ‘무한긍정주의’가 우리가 지금껏 믿어온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허트슨은 사람들이 미신적 사고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미신적 사고는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이나 기념품을 지니면서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있고, 행운의 숫자나 자기암시를 통해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착각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무력감을 피하게 해준다.”

‘100만 촛불’을 밝혔지만 아직 최고 권력을 쥐고 버티는 박 대통령 때문에 화가 나는 걸 넘어, ‘뭐 물러나겠어. 이러다 말겠지’라는 무력감이 밀려오는 게 느껴지는 분들, 혹시 있다면. 그까짓 꺼, 우리도 한번 해보자. 누가 또 아는가? 박 대통령 말처럼 ‘화살로 바위를 뚫고’, ‘마음으로 무쇠도 끊을 수’ 있을지. 원래 우리 삶 속엔 알게 모르게 미신적 사고가 녹아 있다고 지금껏 얘기했다. 염력이든 초능력이든 세계평화든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데, 대통령 하야든 뭐든 간절히만 바라면 불가능할 게 없지 않겠나.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참고서적 <황금가지>(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왜 우리는 미신에 빠져드는가>(매슈 허트슨 지음, 소울메이트 펴냄), <시크릿>(론다 번 지음, 살림비즈 펴냄)

박근혜 대통령 어록에서 확인하는 ‘끌어당김의 법칙’

▲“마음이 하나가 되면 무쇠도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2013년 11월25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2015년 4월 브라질 경제인 행사, 5월5일 어린이날 행사)

▲“여기 계시다가 건강하게 다시 나갔다는 거는 다른 환자들도 우리가 정성을 다하면 된다는 얘기죠?”(2015년 6월5일 메르스 치료 현장 국립중앙의료원)

▲“기가 충만하게 쌓이게 되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2015년 8월7일 대한민국 학군단 대표단 행사)

▲“누에가 나비가 되어 힘차게 날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라는 두꺼운 외투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하듯이 각 부처가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2015년 12월23일 2015년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2016년 1월4일 신년 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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