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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싸는 돌’이 끌어올린 달콤함

등록 2017-01-18 19:40수정 2017-01-18 20:55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전남 기점도 고구마묵
고구마묵. 강제윤 제공
고구마묵. 강제윤 제공
전남 신안 기점도의 밭에는 자잘한 돌들이 많지만 주민들은 굳이 돌을 골라내려 하지 않는다. 돌이 많은 밭이 농사가 잘될까? 돌 하나 없이 매끈한 옥토가 농사가 잘될까? 너무 뻔한 질문 같지만 답은 결코 뻔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돌밭이 수확량이 월등이 많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밭에서 큰 돌은 골라내도 자잘한 돌은 그대로 둔다. 어째서 돌밭이 수확량이 많은 걸까? 돌이 오줌을 싸주기 때문이다. 맨흙으로만 이루어진 땅은 햇볕이 강하면 수분이 다 날아가버려 땅이 바짝 마른다. 그러니 농작물의 생장이 더디다. 하지만 돌이 많이 섞인 땅은 이 돌들이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햇볕을 받으면 수분을 뿜어낸다. 자연히 땅이 촉촉해지고 농작물은 빨리 자라고 더 커진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돌이 오줌을 싼다”고 표현한다. 얼마나 멋진 은유인가!

그런데 요즘 많은 밭들, 특히 고구마 농사로 유명한 지역에서는 점차 돌밭이 사라지고 매끈한 땅만 남고 있다. 돌들을 다 골라내버리기 때문이다. 그 지역 주민들도 돌밭의 수확량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적은 수확량을 택하는 것은 순전히 도시 소비자들 취향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매끈한 것만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수확량이 적으면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맛이 더 좋거나 영양가가 더 높은 것도 아닌데 단지 매끈하게 생겼다는 것만으로 더 많은 비용을 치르고 고구마를 사 먹는 심리는 무얼까. 돌을 골라내고 흙만 남으면 비가 왔을 때 흙의 유실도 심할 수밖에 없다. 도시 소비자들의 소비 취향이 생산량도 떨어뜨리고 농토를 망치는 데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기점도는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날마다 볼 수 있는 섬이다. 기적이 일상인 섬. 갯벌 사이에 난 노두길(본래는 갯벌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연결된 신안의 병풍도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등 다섯 개 섬은 하루 두 번 밀물 때면 분리됐다가 하루 두 번 썰물이면 하나가 된다. 썰물 때면 섬들 사이의 왕래를 가로막던 바다가 마술처럼 사라지고 땅이 나타난다. 광대한 갯벌이다.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또 바다가 되는 기적을 목격할 수 있으니 섬에서는 삶이 곧 기적이다. 이 섬들 일대의 갯벌은 람사르 습지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면서 갯벌도립공원이고 습지보호구역이기도 한 최고의 갯벌이다. 바다와 갯벌이 보여주는 마술 같은 기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지만 한 번에 다섯 개나 되는 섬을 모두 가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섬에서는 자연이 연출하는 이 경이로운 기적을, 달과 태양, 지구가 연출하는 과학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기점도에는 아주 특별한 고구마 요리가 있다. 도토리묵, 메밀묵, 청포묵, 우무, 바옷묵, 벌버리묵(박대껍질묵) 등 세상의 많은 묵들을 먹어봤지만 고구마묵은 대기점도에서 처음 맛봤다. 고구마전분과 물의 비율은 1:5. 고구마전분과 물을 잘 섞은 뒤 불에 올리고 눌지 않게 계속 저어주다가 끓기 시작하면 3~5분 정도 더 저어준 뒤 불을 끈다. 눌러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을 끄고서도 한동안 더 저어준다. 다른 그릇에 옮겨붓고 식혀주면 묵이 완성된다. 예외도 있지만 흔히 접하는 일반적인 묵들은 대체로 잘 부서진다. 입안에서 씹는 맛도 별로 없다. 하지만 고구마묵은 다르다. 쫄깃쫄깃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럽다.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맛. 식감도 좋은데다 고구마의 달콤함이 혀끝을 자극해서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기점도에서는 고구마묵은 물론 고구마 수제비나 고구마 팥칼국수를 해 먹기도 한다. 가을에 캐서 저장해둔 고구마는 겨울이 깊어갈수록 맛도 깊어진다. 수분은 날아가고 당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고구마뿐이랴! 쓸쓸하지만 더없이 고적한 겨울 섬은 고구마 맛처럼 저 홀로 깊어간다.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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