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시간 잊게 만드는 할머니 손맛·입담

등록 2017-02-15 19:37수정 2017-02-15 20:43

[ESC] 커버스토리
하화도·우도 마을회관 풍경
봄 마중 섬 여행 취재길에 마을 경로당(마을회관)에 일부러 찾아갔다. 섬의 내력과 숨은 이야기, 주민 살림살이까지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정보의 창고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여수 하화도 경로당 하화도 선착장의 하화리 경로당은 여느 마을과 좀 다른 구석이 있다. 방 한쪽 구석이 여객선 매표소다. 할머니 중 막내가 표를 끊어준다. 재밌는 건 이곳이 식당 구실도 한다는 것이다. 마을의 60~80대 할머니 10여명이 모두 요리사다. 차림표도 가격표도 없지만, 부추·문어·서대·간재미·전복 등 섬에서 나는 제철 먹거리를 재료로 섬 탐방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판다. 이렇다 할 식당 하나 없는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화도에서 먹을 곳이라곤 매점·민박집·식당을 겸하는 ‘와쏘슈퍼’와 경로당 등 세 곳뿐이다. 요즘 하화리 경로당에선 부추전과 문어숙회·간재미회 등을 ‘개도 막걸리’와 함께 맛볼 수 있다.

할머니들은 섬에 얽힌 이야기에도 훤하다. “저 너머의 ‘시짓골’은 무슨 뜻이죠?” 할머니들이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낸다. “시짓골이 아니여. 시집골이랑게. 거서 이쁜 과부가 갯것을 잡는디, 홀아비 어부가 고기 잡음시로 가만히 봉게로 이쁜께, 날을 잡아 보쌈을 해가부렀소. 과부가 시집간 곳인게 시집골이요.” “순넘밭넘은 밭이 그 우그로 넘어다니기 좋은게로 그렇게 부르고.” “저 막산 앞 큰굴은 시집골 쪽허고 마주 뚫렸어. 담배 피면 그 구녁으로 연기가 나간답디여.” 하화도 여행길에 경로당에 들른다면 할머니들 음식 솜씨, 말솜씨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게 분명하다.

지난 9일 오후, 연화도에 딸린 섬 우도의 웃막개(윗마을) 경로당. 할머니들이 모여 정기 진료를 받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연화도에 딸린 섬 우도의 웃막개(윗마을) 경로당. 할머니들이 모여 정기 진료를 받고 있다.
통영 우도 경로당 지난 9일 통영 우도(소섬) 경로당. 윗마을·아랫마을의 할머니들이 굽은 허리로 지팡이 짚고 유모차 밀며 하나둘 모여들었다. 한달에 한번, 이웃 섬 연화도 보건소장이 방문 진료를 하는 날이다. 1년8개월째 연화도에 근무 중인 이유란 보건소장은 할머니들의 증세를 대충 꿰고 있다.

“다 오셨나요.” 우도 최고령자 이임선(94)씨를 포함해 8명의 어르신 모두가 80~90대 할머니다. 할머니들은 차례로 아픈 데를 말하고 처방을 받는다. 젊은 여성 보건소장의 친절하고 상냥한 진료에 어르신들은 어린아이처럼 앞다퉈 아픈 데를 호소한다. “허리께도 쑤시고, 다리 뻬다구도 아프고, 기침도 나고… 안 아픈 데가 없어.” “많이 아프시죠? 할머니, 기침약은 하루 세번 드시고요. 이 뻬다구 아플 때 먹는 약은 하루 한번만 드세요. 아셨죠?”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내도 아픈 데가 많다. 다른 약도 마이 좀 주소.” “할머니, 아픈 데 따라서 약이 다 달라요.” 옆에서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끼어드신다. “약 마이 묵는다꼬 좋은 기 아이다.” “맞다. 저 아래 갸는 남 약도 달라캐가 다 주어묵데.” “그러니, 더 병난다. 갸가 아픈 걸 달고 안 사나.”

보건소장은 할머니들 허리에 파스도 붙여주고, 손도 매만져주며 진료를 마쳤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의 할머니들 어깨에도, 보건소장을 태운 이장님의 어선에도 봄빛이 실렸다.

하화도(여수)·우도(통영)/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