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멜버른 시내 모습.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멜버른.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걷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와인을 즐기다 보면 이곳이 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멜버른은 인구 400만명이 사는 호주 제2의 도시다. 영국풍의 우아한 멋을 간직한 이 도시는 시드니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들을 반긴다. 멜버른은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 시대에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일군 도시여서 도심 곳곳에 여러 문화가 혼합된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거리에는 아직도 목제 전철인 트램이 덜컹거리며 달리고,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고풍스러운 마차도 볼 수도 있다. 멜버른은 호주의 과거와 현재, 온갖 인종이 한데 어울린 가장 ‘호주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다.
맛있는 도시 멜버른
멜버른의 다양한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19세기 중반 유럽과 아시아, 중국 등지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고수하면서 함께 어울리며 독특한 멜버른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실제로 한 테이블 위에 스테이크와 피자, 세비체, 스시, 만두, 비빔밥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멜버른이다.
지난 4월5일 멜버른에서 열린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시상식은 ‘미식 도시’ 멜버른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는 뉴욕의 ‘일레븐 매디슨 파크’가 1위에 올랐는데, 멜버른의 레스토랑 2곳이 이름을 올려 미식 도시의 자존심을 지켰다. ‘아티카’가 32위, ‘브레이’(Brae)가 44위를 차지했다.
아티카는 멜버른의 미식가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곳이다. 2~3주 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 총주방장인 벤 슈리는 레스토랑 뒤의 정원에서 가꾼 채소를 이용해 멋진 요리를 선보인다. 테이스팅 코스를 선택하면 포도주와 함께 모두 16가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8코스까지 손으로 집어 먹는다는 점이 재미있으면서도 이채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다.
유칼립투스 잎사귀를 뒤지며 토마토를 맛보고, 호주산 와규 스테이크를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손으로 집어 먹다 보면 3시간의 테이스팅 코스가 후다닥 지나간다. 디저트는 뒤뜰의 정원에서 서서 먹는다. 갖가지 채소들을 만지고 향을 맡으며 맛보는 디저트는 다른 레스토랑에서 전혀 할 수 없는 경험이다. 멜버른 식재료와 세계 각지의 와인 매칭에서는 호주라는 다문화 사회를 입으로 느낄 수 있다. 메뉴는 미리 알 수 없고,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메뉴를 주는데 이는 음식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셰프의 ‘배려’라고 한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파스투소’(Pastuso)는 페루 음식과 미국 음식을 혼합한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페루의 전통 생선요리인 세비체를 전채로 내고, 메인 코스는 호주 스타일의 스테이크를 내는 등 개성 강한 요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라디’(Gradi)는 2014년 세계피자대회에서 우승한 조니 디 프란체스코가 운영하는 피자집이다. 테이블에는 ‘월드 베스트 피자’라고 써진 메뉴판이 당당하게 놓여 있다. 이 식당은 마르게리타 피자로 피자의 나라에서 온 이탈리아 팀을 누르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내는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방에 자리한 커다란 화덕에서는 피자가 구워지고, 레스토랑 벽에는 세계 각국의 유명한 포도주가 빼곡하다. 피자는 명성 그대로다. 도는 쫄깃하고 그 위에 바른 토마토소스는 신선하다. 입으로 한 조각 가져가는 순간 풍부한 토마토 향이 콧속으로 가득 스며든다. 여기에 호주산 시라즈 와인 한잔을 곁들이면 멜버른이 왜 ‘맛있는 도시’로 꼽히는지 알게 된다.
32위 아티카 3주전 예약해야 자리
변두리 식당 브레이 44위 올라
파스투소는 페루식 혼합 유명세
야라밸리 와이너리 투어도 인기
호주 최고의 포도주를 맛보다
푸른 하늘에 양떼 모양의 흰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언덕 기슭의 색깔은 갑자기 기묘한 색으로 빛나기도 한다. 어디선가 바람은 불어와 깃털처럼 생긴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흔들어댄다. 사람들은 저마다 완벽한 날씨를 즐기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잘 익은 포도주를 마시는 일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호주는 세계 10대 포도주 생산 국가 중 하나이자 세계 4위의 포도주 수출국이다. 포도주 소비량도 1인당 연간 18ℓ가 넘는데, 이는 미국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멜버른이 자리한 빅토리아주 역시 주 전역에 걸쳐 22개가 넘는 와인 특구가 지정되어 있으며 85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자리한다.
질 좋은 호주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야라밸리의 한 와이너리 풍경.
빅토리아주의 많은 와인 특구 가운데 ‘야라밸리’는 호주 최고의 포도주 산지다. 멜버른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쯤 자동차로 달리면 닿는데, 100여개의 크고 작은 와이너리가 있다. ‘도멘 샹동’, ‘예링 스테이션’, ‘드 보톨리’(De Bortoli) 등 대형 와이너리에서부터, 가족 단위로 운영하면서 특유의 개성을 살려 아기자기하고 독창적인 포도주와 레이블을 선보이는 작은 부티크 와이너리까지 크고 작은 와이너리가 각자의 ‘셀러도어’(와인 시음 코너)를 마련해 두고 많은 와인 애호가들을 맞는다.
“야라밸리는 지중해와 기후가 비슷합니다. 강우량이 비교적 적고, 땅은 물이 잘 빠지는 자갈로 이루어져 있죠. 특히 우아하고 섬세한 샤르도네와 시라즈가 일품입니다. 은은한 향이 일품인 피노누아르도 빼놓을 수 없고요.”
소믈리에가 이렇게 말하며 시음용 포도주를 따라준다. 그가 건네준 샤르도네가 담긴 잔을 코끝에 대고 깊은 숨을 들이켠다. 상쾌하면서도 신맛이 있는 향이 파고들어 미간을 살짝 찡그리게 만든다.
“어때요? 농익은 사과 향이 나죠? 이 와인은 아니지만, 양조장에 따라서는 포도를 늦게 수확하기도 하는데 이는 산도를 낮추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죠.”
멜버른 외곽에는 와인 시음장을 갖춘 와이너리가 많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와이너리와 함께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너른 포도밭을 거닐고, 질 좋은 와인을 시음하며 멋진 식사까지 즐길 수 있다. 멜버른 근교 와이너리 투어의 경우, 1박2일 일정으로 와인 테이스팅 3곳과 리조트 숙박, 저녁 식사, 조식, 한국어 가이드 및 차량 이동을 포함해 1인당 약 330호주달러(한국돈 약 30만원) 선에서 해볼 수 있다.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과 함께 밤새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독특한 매력의 뒷골목 탐험
멜버니언(멜버른 사람)들은 하루를 골목에서 시작해 골목에서 마친다. 아침 일찍 출근해 노천카페에 가서 모닝커피와 간단한 아침식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퇴근 뒤에는 골목길의 레스토랑이나 펍 등에서 소박한 메뉴를 앞에 두고 동료들과 수다를 떤다. 중고 서점과 신진 디자이너의 가게, 수제 초콜릿 가게, 유기농 베이커리가 숨어 있는 곳도 바로 골목이다.
카페 즐비한 골목 여행은 멜버른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멜버른을 만끽해 보자.
멜버른에서 가장 이색적인 골목을 꼽으라면 노천카페 골목 디그레이브스 스트리트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에서 시작해 플린더스 레인을 거쳐 다시 콜린스 스트리트까지 약 200m나 이어진다.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은 노천카페들이 들어서 있고, 수제 문구용품점과 액세서리 가게, 컵케이크와 와플 등을 파는 가게도 즐비하다.
호지어 레인은 플린더스 스트리트에서 스완스턴과 러셀 스트리트 사이에 위치한 작은 골목으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촬영지로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위트 넘치는 그라피티(벽화, 벽낙서)로 가득한 이 거리에서는 누구나 아무렇게나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그림이 된다.
호주/글·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멜버른 여행 정보
■ 한국에서 멜버른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싱가포르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등을 이용해 싱가포르와 홍콩 등을 경유해야 한다. 멜버른에서는 무료 교통수단인 ‘트램’과 ‘투어리스트 셔틀버스’만 잘 활용해도 주요 관광명소는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페더레이션 광장 지하에 있는 ‘멜버른 여행객 센터’는 멜버른과 빅토리아주에 대한 방대한 여행자료를 갖추고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나 필립아일랜드 등으로 가는 각종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 호주는 세관 통과가 아주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다. 음식물, 동식물, 의약품 등은 반드시 신고를 해서 반입 가능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는 김, 김치 등은 꼭 시중의 진공포장된 것으로 고르고, 밤은 아예 반입이 불가능한 품목이니 유의해야 한다. 자세한 정보는 호주빅토리아주관광청(02-752-4138, www.visitmelbourne.com/kr)에서 얻을 수 있다.
■ 퀸 빅토리아 마켓은 1878년 개장한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멜버른의 부엌’으로 불리는 곳으로, 8000㎡ 규모에 700개가 넘는 상점들이 입점해 있다. 대부분 빅토리아주에서 직접 재배한 것을 판다.
멜버른에서 가볼만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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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카 ‘2017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32위에 오른 레스토랑. 현재 멜버른에서 미식의 선두를 달리는 레스토랑이다. 대표 메뉴는 ‘익스텐디드 테이스팅 코스’. 직접 재배한 채소와 멜버른 근교의 식재료를 이용한, 셰프 추천 시식 코스다. 채식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74 Glen Eira Road, Ripponlea, Melbourne, VIC/ www.attica.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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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투소 멜버른에서 보기 드물게 남미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 시드니의 ‘모레나’(Morena)로 유명세를 쌓은 페루 출신 알레한드로 사라비아 셰프가 그 여세를 몰아 멜버른에 오픈했다. 대표 메뉴는 술에 달걀흰자 거품과 레몬주스를 넣은 식전 칵테일 ‘피스코 사워’(Pisco sour)와 페루비안 스타일의 세비체, 그리고 프리미엄 아르헨티나 쇠고기 립. 남미와 호주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인다.(19 ACDC Lane, CBD, Melbourne, VIC/ pastuso.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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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디 2014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열린 세계 피자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식당. 나폴리보다 더 맛있는 나폴리 스타일의 피자를 맛볼 수 있다. (99 Lygon Street, East Brunswick, VIC/ www.crownmelbourne.com.au/restaurants/casual/g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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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링 스테이션 야라밸리에 있는 빅토리아주 최초의 와이너리. ‘매츠 바’라고 이름 붙은 셀러도어에서 다양한 포도주를 시음할 수 있다. 서늘한 기후의 야라밸리답게 질 좋은 피노누아르가 압권이다. 은근하면서도 긴 여운이 입안에 내내 맴돈다. 무르베드르와 비오니에, 루산을 블렌딩한 화이트 와인도 일품이다. 상쾌한 멜버른의 날씨와 더없이 어울리는 포도주다.(38 Melba Hwy, Yarra Glen, Vic/ www.yer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