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세상]
요리책인데 ‘요리’가 없다. 200쪽이 훌쩍 넘는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는 까만 글자만 빼곡할 뿐이다.
환경운동가이자 자연주의자였던 헬렌 니어링(1904~1995)은 91살까지 장수했다. 그의 식탁은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남편처럼 100살까지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들 부부는 사는 동안 약국도 병원도 다니지 않았다. 건강한 노년을 지켜낸 비결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알려주는 식탁의 비밀은 ‘모든 것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다. 비결치고는 싱겁기까지 하다. 재료는 제철을 맞아 세상에 나온 ‘간단한 것들’로 골랐고, 요리법은 초보자라도 금세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쉽다. 양은 최소로 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은 잘 살리는 것, 이것이 그의 요리 비결이다. 한마디로 ‘소식식탁’이다. 소식이 장수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알려진 바다.
헬렌 니어링이 특히 사랑한 식재료는 푸른 잎채소다. 양배추나 셀러리도 흰 부분보다는 푸른 쪽을 사용한다. 푸른 부분에 녹아 있는 엽록소 때문이다. 엽록소가 식물에 활력을 주었듯이 그것을 먹은 사람들에게도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말한다.
도대체 두세 줄밖에 안 되는 요리법이 가능할까 의심이 생긴다. ‘레몬당근’은 씻은 당근을 꿀과 기름을 섞고 10분만 조리한다. 그 위에 레몬즙을 뿌리면 끝이다. ‘호박구이’는 오븐에 구운 호박에 꿀과 버터를 바르면 완성이다.
‘대파 수프’는 어떨까? 서양요리사 김신씨의 도움을 받아 도전해봤다. 그의 조언에 따라 전분이 적은 감자를 사용했다. 김씨는 남원에서 생산되는 ‘춘향골감자’를 추천했다. 요리법에 등장하는 간장은 소이소스다. 김신 요리사는 적은 양이라면 우리네 간장을 넣어도 별 차이가 없다고 조언한다.
식탁에 오른 ‘대파 수프’는 청명한 날 호수를 바라보는 맛이다. 천천히 음미할 때마다 입안에 고소한 평화가 솟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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