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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나무를 지키려는 아이들

등록 2010-09-14 08:43

[건강한 세상]
마을이야기 성미산마을 ③
“어, 스콜라다.”

“스콜라, 요즘 왜 안 나오셨어요?”

“어… 좀 바빴어. 너희들은 개근이냐?”

“뭐… 개근은 아니고, 몇 번 빠졌어요.”

“그래, 기특하네.”

오랜만에 문화제에 나갔더니 예린이와 이레가 타박을 준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이 시작되고부터 밤마다 망원 우체국 앞에서 혹은 ‘성미산 밥상’ 앞에서 작은 문화제를 벌였는데, 이 아이들은 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의 어머니들도 문화제 단골이다. 문화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소녀’의 딸인 진주와 생업을 잠시 접고 산 지킴이로 나선 ‘쟁이’의 딸 미르도 고정 멤버다. 이 아이들이 작은 집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성미산 지키기에 열심을 내는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학부모 중에도 ‘아이들이 무얼 안다고 저렇게까지 하느냐’며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벌목을 하는 사람 중 하나는 ‘어른 일에 아이들을 동원한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사실 나도 멈칫할 때가 있다. 포클레인으로 나무를 쓰러뜨리고, 낫으로 농성 텐트를 찢는 험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몸싸움을 벌이는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른스러운 이런 분별이 그야말로 어른들만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나보다 성미산을 지켜야 할 많은, 강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성미산은 ‘당연히’ 보존되어야 할 숲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성미산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좋은 놀이터였다. 엄마 아빠와 함께 심고 돌본 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자연놀이 시간에 사귄 친구들(꽃들과 나무들과 새들)의 집이기도 하다. 또 엄마 아빠가 온 힘을 다해 지키려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성미산과 아이들이 맺은 관계는 손님처럼 이 학교에 온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아이들은 몇 달 전에 성미산에 있는 나무 하나하나에 리본을 매며 나무를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어제 산에 올라 베여 누워 있는 나무들, 아예 밑둥만 남아 있는 나무들을 보며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학교에서 공부해’라고 말하는 것이 교육적인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일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문화제에 나오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내어 나온다. 무언가를 해야겠기에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거기서 부모와 교사들이 사적인 이익이 아닌 ‘어떤 것’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본다. 이 싸움이 결국 돈과 생명의 싸움이라는 것을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게 된다.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공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학습의 장이 있을까?

마을은 구체적 삶에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고, 작은 참여를 통해 세계를 바꾸는 경험을 하는 곳이다. 어떤 교과서도 이런 것을 가르쳐줄 수 없다.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다. 마을은 학교를 훨씬 넘어선 학교다.

스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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